벽을 오르는 사람들 사람들 시리즈 1
장다영 지음, 최지규 외 그림 / 탐구인간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흑백의 대조성이 강하게 다가오는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담>(글로리아 J. 에반즈 지음)이라는 책과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 떠올랐다. 영화의 경우는 대강의 줄거리만 알 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벽'의 상징성이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담>은 기독교 서적이기는 하나 신앙의 연관성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든 '벽'을 숙고해볼 만한 그림과 글로 이루어진 책이다. <벽을 오르는 사람들>에서 말하는 '벽'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머리말을 보면, 저자는 계층을 나누는 경계를 '벽'이라고 전제하고 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의 축소판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 계층 사회를 단순화한 모형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떤 그림이 형상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사람들 눈앞에 존재했던 벽. 사람들은 벽 너머가 궁금했고, 소문이 돌았다. 벽 바깥 세상보다 풍부한 자원이 있다고.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붙든 채 사람들은 벽을 타고 올라간다. 오르다가 떨어지거나 심하게 다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원 고갈로 굶주리는 것보다 위험을 무릅쓰는 게 낫다며, 사람들은 계속 벽을 타고 올라간다.

저자는 왜 벽이 생겼는지, 그 유래를 설명해준다. 세상이 처음 있던 때는 없었던 벽이 생성된 이유는, 결국 힘의 논리에 따른 계층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들과 합심해서 맞섰을 때는 하나가 되었던 사람들이 원하던 평화를 찾게 되자, 내부의 적을 만들고 편가르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간을 내몬 동물들이 그랬듯이. 악한 본성대로 놓아둘 수 없기에,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일 텐데, 문제는 그런 법망에서 벗어나는 특권층이 존재한다는 게 현실 아닌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갈등 대목도 인상적이다. 지금보다 벽이 낮았을 때 왜 넘지 못했냐고 항변하는 자녀와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은 너의 노력 부족이라고 대응하는 부모. 소위 부모 찬스 여부에 따른 차별이 생겨나고 벽을 오르는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만 간다. 우여곡절 끝에 벽을 넘어간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은 또 다른 벽. 여러 겹의 벽이 존재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사람들이 꼬리칸에서 점점 앞쪽칸으로 이동하듯이, 그렇게 사람들은 자꾸만 벽 안쪽, 더 안쪽으로 향하게 된다.

벽과 벽 사이, 사람들 간에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고 가장 안쪽 사람들은 벽을 더 공고하게 쌓아간다. 벽과 벽 사이, 사람들은 바깥에서 안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자원과 기술력을 동원해서 새로운 벽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벽을 오르는 새로운 방법이 강구되었다. 그러나 벽 안쪽 사람들의 자원도 점점 고갈되어 가는 상황에서, 안쪽에서 오히려 바깥으로 나오려는 무리도 있었다. 벽에서 멀리 떨어진 세상을 가보려는 모험인데, 그 길은 위험과 행운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 무리가 닿은 곳에는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벽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남기는 결말이다.

자원은 한정되고 점점 소멸된다. 또한 계층 간의 갈등과 배타성은 심화된다. 이 책을 통해, 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위해서라기보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제일 안쪽을 향해 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가장 안쪽에 있던 사람이 바깥으로 나오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지, 또한 실제로 바깥으로 나오는 과정이 책에서 묘사된 대로 쉬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저 멀리 바깥 세상에 많은 자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해도, 벽 바깥으로 계속 나가는 행보란, 오히려 안쪽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바깥 사람들의 위협을 받는 일이기도 할 터이니.

계층 사회에 대한 사유와 질문을 던져보는 책이다. 페이지마다 벽과 사람들의 그림을 보면서, 길지 않은 분량의 글이지만 숙고해볼 만한 문장들과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벽이 아닌 미끌미끌한 벽, 기존의 방법으로는 오를 길이 없는 벽이 생겨났을 때, 더 이상 벽을 오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주목해본다. 지금 있는 곳의 자원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가지는 자기 합리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벽을 오르기 위해 시간 낭비를 하며 벽 오르는 방법을 모색해서 기어이 올라가려고 할까. 아니면 실패의 굴욕감을 숨긴 채 자족하는 모습으로 살아갈까. 주변 상황을 초월해 진심으로 만족하는 삶이란 불가능할까. 그런 삶은 도전하지 않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까. 여러 의문이 솟구치는 대목이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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