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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의 혼잣말 - 일러스트레이터의 섬세한 시선으로 찾아낸 일상의 예쁨들, 그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이야기
조선진 지음 / 니들북 / 2021년 8월
평점 :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미 두 권의 에세이를 낸 작가의 글을 처음 마주했다. 그림 에세이를 읽는 게 즐거운 이유는 단순하다. 일상을 담아낸 편안한 문장들 속에 잠시 지친 마음을 기대볼까, 함께 실린 그림으로 작은 위안을 받아볼까 하는 것이다. 글과 그림, 분명히 다른 표현 도구인데 이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한 권의 책 속에서 조화를 만드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림 에세이를 펼치는 게 설렌다. 이 책도 그랬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삶 속에서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던 "일상의 소소한 예쁨들"을 말한다. 그것은 숨겨진 그림들, 숨은 그림의 한 조각이다. 이 책을 통해 각자 삶의 다정하고 조그마한 그림들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 그림들의 혼잣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은, 여유와 휴식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위로가 될 때.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저자가 길가의 작은 꽃,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아파트 외벽에 길게 드리운 오렌지색 노을의 위로를 받았듯이, 나는 유난히 맑은 아침에 창가로 들어온 햇볕이 만든 그림자, 비가 온 후 아파트 사이를 가로지르듯 뻗은 무지개를 잠시 바라본 적이 있다. 작은 평안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할지 모른다. 저자처럼 섬세한 시선으로 스치는 일상 속 예쁨을 놓치지 않으려면.
저자의 글 속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아끼고 뿌듯해 하는 마음이 많이 느껴진다. 반 고흐 미술관의 해바라기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노랑, 그 그림이 저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고, 어느 골목 작은 갤러리 안, 무제라 이름 붙은 외로운 그림들, 이름 모를 그림 한 장이 건네는 위로도 있다. 저자에게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그림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의미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는 갤러리의 그림을 통해 각자 보고 싶은 걸 보면 될 일이고 감정에는 정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젠, 좋아하는 걸 참지 않기로 했다."(63쪽)
"그리다, 라는 말이 좋다."(71쪽)
이처럼 읽다가 멈추게 되는 문장들을 만나기도 한다. 저자는 여행지의 추억, 가족 에피소드, 일상 속 소소한 발견 등을 아기자기한 그림과 공감 가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여행지나 카페에서 커피 주문시 나오는 설탕봉지를 모은다는 저자. 모양과 색이 제각각인 설탕 포장지를 보면서 기억을 더듬고 추억을 떠올린다고. 설탕을 흰 눈처럼 표현한 일러스트가 참 예쁘다.
이 책 속에는 사소한 것들 속에서 새로운 그림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형상화하며, 그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저자의 모습이 나와 있다. 제목에 사용된 '혼잣말'의 어감이 좀 외롭다. 아마 동일하게 주어진 일상 가운데 각자 발견하는 숨은 그림은 다를 터이고, 실제로 보물찾기처럼 어떤 의미 있는 그림을 찾아내는 것도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에 붙여진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림들과의 대화는 이후 각자가 풀어낼 작품, 오늘보다 조금 나은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