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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생 -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
앤드루 H. 밀러 지음, 방진이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8월
평점 :
"그때 다른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이 책의 소개글 가운데 위의 문구만으로 내용이 궁금해졌다. 요즘 부쩍, 지나간 기억 속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후회나 아쉬움, 안타까움이 동반되기도 하고, 슬쩍 웃음짓게 되기도 한다.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 반영된 표현에, 당연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이 책 <우연한 생>은 영문학자가 쓴 에세이로, '살지 않은 삶'을 주제로 다룬다. 어찌 보면 지극히 감상적이고 광범위한 주제로, 문학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텍스트를 인용하면서 글이 전개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살지 않은 삶'에 관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대부분 특정한 패턴과 모티프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살지 않은 삶'을 다룬 대표적인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고, 대표적인 단편소설은 헨리 제임스의 <밝은 모퉁이 집>이다. 이 책에서 집중 분석하는 작품은 칼 데니스의 시 <당신을 사랑하는 신>,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 <멋진 인생>, 이언 매튜언의 소설 <속죄>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여러 작가, 철학자, 심리학자 등의 말, 텍스트를 담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이 책은 몇 가지 개념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한다. 먼저 내가 다른 사람과 분리됐음을 느끼는 '단독성'은, 행복감을 주지만 동시에 고통도 안겨준다. 이런 '단독성'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요소로, 작품 속에서 여러 욕구로 발산된다. 나는 나로 있고 싶지만 지금의 나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싶다, 나는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나인 동시에 다른 사람이고 싶다 등.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자기 애착을 탐색하고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현실에서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문학에서는 과거가 정말로 과거인지 묻는다. 과거의 의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반추하게 만드는 극적 장치가 있다는 의미일까. '살지 않은 삶'을 다루는 소설과 영화에서 두드러진 플롯의 요소는, '배타성'과 '불가역성'이다. 직업과 결혼뿐 아니라 가족의 속성은,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 형식에 잘 어울린다. 가족 관계는 '단독성'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저자는 결혼보다는 가족, 특히 자녀로 인해 '살지 않은 삶'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저자가 유산된 아이를 다룬 시들을 언급한 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저자에 따르면 언어, 특히 시어는 우리의 정체성 혼돈의 경험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 문득, 종종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는 이유는 뭘까. 나는 나지만 다른 나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마음. 더 이상 다른 나로 살아볼 기회, 인생의 시간이 길지 않다는 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다른 나를 향한 꿈. 여러 생각을 펼쳐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문학작품들과 공유해보고, 그로 인해 나의 현재를 더욱 아끼며 문학이 주는 힘과 위안을 느껴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