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발견 -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
존 마우체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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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에 끌렸던 책이다. 연주자가 쓴 책 <새로운 세대를 위한 베토벤>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지휘자가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니 기대감이 들었다. 저자 존 마우체리는 반세기 넘게 지휘를 해온 70대의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음악 교육자다.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궁금증과 함께 <클래식의 발견>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언제 클래식을 발견했더라?' 하는 생각을 해보며 잠시 고전음악에 얽힌 추억에도 젖어본다.


용어부터 정리하는 도입 부분이 유익하다. 저자는 '서양음악' 곧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 서술해낸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의 기원부터, 음악학자와 대중이 달리 이해하는 '고전음악'이란 무엇인지 서술한다. 고전음악의 독특한 요소는, 핵심 레퍼토리가 25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전음악의 황금기는 바흐와 헨델로 시작하고 이를 하이든이 이어받는다. 고전음악이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문화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이 지점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고전음악의 핵심에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려는 소통의 욕망이 있다고 봤다.


음악회에 가게 되면 악기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져보라는 제안이 재미있다. 음악과 연주자가 아닌 악기 자체. 가령 플루트와 하프가 현대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발달해온 과정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관악기, 타악기, 건반악기, 현악기 등 기술, 문화사의 기적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 악기로 온 지구가 노래하고, 음악은 인간 존재의 일부가 된다. 연주하는 악기, 화성, 템포, 선율의 요소가 결합된 소리가 음악이고, 그 속에는 봄을 비롯해 죽음, 신념, 기쁨, 사랑, 후회, 외로움, 두려움, 냉소, 어리석음 등의 은유 목록이 들어 있다. 이 책에서 음악을 경험하는 것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음악을 들을 때, 전공자는 예외일 수 있겠지만 공부하듯 애써 분석해서 듣는 게 아니라 귀로 듣고서 마음에 담는 것일 테니.


저자에 따르면, '시간과 기억의 예술'인 음악은 우리의 시간 감각을 통제하고 끝날 때까지 놔두지 않는다. 고전음악은 당대 시공을 담고 있고 그보다 앞선 시간과 문명도 소환한다. 음악은 기억을 추려 엮어주는데, 처음 들었던 인상 깊은 음악은 이후 듣게 될 때 지나간 시간까지 떠올리게 하지 않나. 저자는 음악과 관련한 추억, 에피소드를 구체적인 작품 설명과 함께 풀어간다.


"이미 알고 있던 음악을 매번 새롭게 경험하는 일은 여러분 삶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경험은 여러분의 이야기, 여러분의 역사에 더해진다."(103쪽)


뭔가 음악으로 삶이 확장되는 느낌의 표현이다. 같은 음악도 나이에 따라 달리 들리기도 하고, 음악으로 쌓인 일상이 나만의 이야기, 내 인생의 특별한 의미를 더할 것이다. 작정하고 독자들에게 '청취의 기술'을 가르친다는 어조로 쓰여져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저자의 문체에 스며든다. 저자가 공유하는 질문들을 따라가본다.


"소리에서 구조란 무엇일까?" 저자는 음악 구조를 건축 설계에 비유하며 서술해간다. "고전음악이란 과연 본질적으로 유익한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고전음악이란 궁극적으로 선한 힘이라고 말한다. "음악 작품과의 첫 만남을 준비하는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음악 작품에 얽힌 역사를 이해하고 작곡가의 다른 작품들을 미리 알아둘 것을 제안한다. 항상 작곡가와 연주자를 좋게 해석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질 것도 당부한다. 음악이 만들어진 사연을 알아보거나,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다.


저자는 고전음악이 연주되는 음악회로, 독주 리사이틀, 실내악 연주회, 합창 연주회, 교향악 연주회, 발레, 오페라 등을 소개하는데, 특히 오페라에 대한 내용 가운데, 오페라 가수의 생명력이 짧기에 그들의 공연을 실황으로 접한다는 것은 큰 특권이라고 덧붙인다. 또한 저자는 작곡가나 연주자의 의향과 무관하게, 음악을 해석하는 사람은 우리 각자라고 말한다. 저자(작곡가)-번역자(연주자)-수용자(청자)의 세 차원이 시간을 가로질러 진행되고, 음악은 판단도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마치 '고전음악'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전음악은 여러분이 나이를 먹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마음을 터놓는다."(197쪽), "고전음악은 항상 여러분을 기다리고, (중략)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한다."(214쪽) 같은 구절 때문이었을까. 책 말미에 이르면 "고전음악도 사람이다."(291쪽)라는 표현이 나온다. 저자에게 고전음악이란 상징적이고 세월을 뛰어넘는 사람, 항상 동시대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대상,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고전음악을 들을 때 음악이 마음을 터놓는다는 것이란 어떤 의미일까. 독서할 때 책이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 그런 것과 비슷할까. 고전음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문장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다. 책 내용 중에 언급된 음악들을 찾아 하나씩 들어봐야겠다. 음악과 나, 저자의 감상 포인트와 나만의 해석이 어우러지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익숙하든 그렇지 않든, 한 번 듣고서 내 취향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던 음악도 다시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음악을 새롭게 듣는 시간은 당연히 할애할 터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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