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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브라운
너새니얼 호손 지음 / 내로라 / 2021년 6월
평점 :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은 <주홍글씨>만 읽었던 터라, 단편 소설인 이 작품을 반가운 마음으로 펼쳐보았다. 처음에 읽어가면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연상시켰던 이유는, 주인공 이름이 '굿맨'(선한 사람)이고 아내는 '신념'으로 불린다는 것, 굿맨 브라운이 어딘가 계속 길을 가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그는 왜, 신념이 가지 말라고 말리는 길을 나서게 되었을까. 소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신념이 볼 때는 '당신의 길'(your journey)이고 그에게는 '자신의 길'(my journey)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념과의 (일시적이든 아니든) 단절을 의미하고 독립 의지를 보인 게 아닌가 싶다.
새카만 어둠의 길에 들어선 후, 굿맨 브라운은 풍기는 분위기가 자신과 비슷하지만 연배는 아버지뻘 되는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가 쥐고 있는 지팡이는 착시효과 때문인지 꿈틀거리는 검은 뱀 같았다. 굿맨 브라운은 남자에게서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선하고 순결한 기독교인들이라고 믿었던 조부, 부친의 '사악함'에 대한 것이다.
직접 보고 들은 혼란도 있다. 자신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쳐준 신실하고 모범적인 교회 권사, 자신이 영적 지도자로 여기는 목사, 장로가 악마를 추종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신념마저 사라지고 만다. 이에 굿맨 브라운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앞서 남자가 주고 떠난 지팡이를 흔들어대고, 큰소리로 신성을 모독하며, 악마 같은 웃음소리를 낸다.
사악한 어둠의 숲에서 세일럼 마을의 교인들을 만나고, 그곳에는 모든 악마들의 왕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검은 형상은 악마를 숭배하기 위해 모인 '개종자들'에게 악의 세례를 내리려고 하고, 그곳에서 신념과 마주한 굿맨 브라운은 "신념!"을 부르며 사악한 악마에 맞서 싸우자고 외치는데...
이 책은 종교적 맥락을 배제한 채, 자신이 지켜온 신념에 배반당하고 그것을 의심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굿맨 브라운이 경험한 혼란, 배반과 의심을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물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은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기존에 알던 사실이 거짓으로 판명되고 신뢰했던 사람에게서 불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굿맨 브라운처럼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마을로 돌아온 이후 굿맨 브라운의 변모된 모습, (어쩌면 이미 내재했던 모습일지도 모를) 그의 여생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종교 소설로 읽었다. 악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은 악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것이다. 악의 길 한복판에서 내 믿음이 얼마나 센지 증명하는 게 아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믿음을 헛된 것으로 단정짓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은 자포자기일 뿐이다. 굿맨 브라운은 어둠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 길에 들어섰다. 돌이킬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끝내 악마를 숭배하는 모임 현장까지 이른다.
굿맨 브라운의 믿음(faith. 여기서는 '신념'으로 번역됨)은 어디에 기초했던가. 주변의 신실한 어른들의 모습, 그들이 겉으로 보여준 언행이 아니었나. 신실한 사람들처럼 보였던 이들의 죄악이 곧 기독교 진리의 무익함이나 신의 부재를 증거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만든 소설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선악의 구분, 특히 마녀, 마법사, 주술사 등이 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 해설을 참고로, 소설 속의 지명 '세일럼'을 살필 수 있다. 그곳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당시 독실한 청교도 마을이었다.
1692년 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200명 넘는 사람들이 마녀 혐의를 받았고, 그중 25명이 교수형을 당했으며, 그중 한 명은 압사형을 당했다. 일명 '세일럼 마녀사냥' 사건이 있던 곳이다. 종교, 신, 선의 이름으로 행한 악행이 아닌가. 인간이 자기 유익, 나아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만들고 규정한 선악 때문에, 분쟁과 다툼, 전쟁,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짧은 소설이지만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영문 병기가 되어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굿맨 브라운과 만나 이야기를 들려준 남자를 보면서, 악마의 속삭임을 주된 내용으로 다룬 작품인,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떠올랐다. 굿맨 브라운이 신념마저 잃자 광기를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절망의 끝에서 신애가 신을 조롱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밀양>이 겹쳐졌다. 사유와 감상의 폭을 넓혀준 고전, <굿맨 브라운>을 만나본 시간이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