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로지 - 히어로 만화에서 인문학을 배우다
김세리 지음 / 하이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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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마블 세계관에서 배우는 인문학이라니! 마블 영화를 즐겨 보면서 언젠가 만화 원작을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마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에 나오는 짤막한 영상을 호기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던 때가 엊그제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쿠키 영상의 인상 깊은 장면을 놓치지 않고, 마블의 주인공들을 학문의 대상으로 다루어보겠다는 발상으로 이어간다. 마블의 영문 표기 'Marvel' 뒤에 학문이나 담론을 칭하는 'logy'를 붙인 마블로지(Marvelogy), 곧 마블학을 만든다.

 

1부에서는 마블 이전에 미국 만화계를 평정했던 DC, 후발주자인 마블에 대한 탄생 배경과 성장사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마블의 스토리 담당인 스탠 리의 문학적 지식과 감수성이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마블의 영웅들은 토르를 제외하고 대부분 예기치 않게 히어로가 되어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부분, 마블은 DC와 달리 과학적 사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는 차별성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2부에서는 그래픽 노블의 부상을 마블학이 생겨난 주요 배경으로 다룬다. 21세기 만화는 19세기 소설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용어가 상용화된 계기를 만든 세 작품 가운데, 두 편이 슈퍼 히어로물이다. <왓치맨>과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참고로, 나머지 한 작품은 <쥐>다.) 이 책은 두 작품 분석과 의의를 풀어내기 전에, 슈퍼 히어로의 윤리를 언급하면서 플라톤의 <국가> 내용을 소개하고, 히어로 가면의 원조 격인 '쾌걸 조로'와 DC의 배트맨을 비교한다.

 

3부에서는 이 책의 재미를 담당하는 내용이라 할, 마블과 신화와의 연관성을 상세히 담아낸다. 마블의 히어로 캐릭터들은 신화 속 영웅들의 현대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가령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방패를 든 영웅 페르세우스, 강인한 면모의 헤라클레스다. 이처럼 저자는 어벤져스의 구성원들을 하나씩 신화적 기원의 영웅과 연결시킨다. 또한 만화 원작에는 어벤져스 일원인데 영화에서는 빠진 히어로들도 따로 묶어 신화적 기원과의 연관성을 정리해준다.

 

4부에서는 마블의 철학적 기반이 무엇인지 탐색해보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만화 <시빌 워>의 주요 쟁점들과 각 히어로의 입장, 공리주의와 원칙주의, 나아가 정의의 문제를 파고든다. 히어로들의 대립이 가져온 핵심은 초인 등록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모든 히어로들의 신분과 정보는 미국 정부에 귀속되고, 그들은 정부의 통제하에 정부의 요구와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히어로들의 익명성과 활동상의 자유 의지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 책은 히어로들 간의 의견 대립, 곧 초인 등록법의 찬반 입장, 윤리적 의미 등을 조목조목 다룬다.

 

이 책을 통해 마블학, 곧 "일종의 신화학이자 정의의 윤리학"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마블의 히어로들이 신화 속 영웅들과 연결된다는 것은, 우리 시대가 그만큼 신화적 상상력이 절실하다는 반증도 될 터이다. 또한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삶에 철학, 윤리학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마블학의 완성이 아니라 기반이 된다는 의의를 가진다. 마블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변모, 확장될 터이기에...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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