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와드 - 고도 3954
장마르크 로셰트.올리비에 보케 지음, 조안나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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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그래픽 노블을 만나본다. 봉준호 감독이 동명의 만화를 본 후 만들었다는 영화 <설국열차>. 그 만화를 그린 이가, 이 책의 그림을 맡은 장마르크 로셰트다. 표지에서 짐작하듯이, 이 책은 산악인의 여정을 담고 있는데 학창 시절 장마르크 로셰트의 산악 입문기라 할 수 있다. 1956년생인 그는 산악 활동에 매진하던 중 1976년 큰 사고를 당한다. 그 후 만화작가가 된다. 그의 자전적 성장기를 다룬 작품 속으로 들어가본다.


운명처럼 산과 사랑에 빠진 이후, 장마르크는 프랑스 산악회 회원인 친구 상페를 따라 첫 등반에 나선다. 필수 장비들은 모두 빌린 채로. '치즈강판'이라는 루트로 절벽 끝까지 올랐고 내려올 때는 로프로 하강했다. 그때의 뿌듯함과 짜릿했던 기분을 엄마에게 말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소적인 반응뿐이다. (이 책에서는 엄마의 입장에서 읽게 되는 대목들도 많았다. 아들과의 소원한 관계, 끝내 단절된 관계는 안타까웠다.) 독어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 받으면 등반 장비를 사준다는 조건에, 장마르크는 해당 점수를 받고 원하는 장비도 얻는다.


그가 두 번째로 상페와 등반길에 나설 때, 저만치 엘프와드 북벽이 보인다. 그곳의 가장 멋진 루트는 드비-제르바수티 길로, "알프스에서 손꼽히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루트"로 유명하다. 해발 3300미터 높이의 템플고개, 그곳의 암벽을 오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언젠가 엘프와드를 같이 오르기로 약속한다. 규율과 규칙만 얘기하는 어른들이 갑갑했던 장마르크에게, 산은 탈출구와도 같았다.


이 책에서는 첫 고산 등반부터, 엄마가 따라나선 등반, 계속된 등반길, 다른 산악인들과의 동행이 그려진다.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서 독립한 후에도, 장마르크의 등반 여정은 계속된다. 산악 동료 자르타의 죽음과 공식적인 만화가 등단, 그렇게 슬픔과 기대가 겹쳐오기도 하는 가운데, 장마르크는 좋아하는 화가 수틴의 묘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말이 상징적이다.


"젊은이는 이거 아는가? 'SOUTINE'(수틴)의 철자를 바꾸면 'SOUTIEN'(응원)이 된다는 걸."(187쪽)


이후 장마르크의 등반행은 지속된다. 위험천만한 낙석 사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 참여, <돼지 에드몽> 출간과 다시 시작된 등반, 그리고 만화가로 새롭게 열리는 길... 이 모든 과정은 장마르크가 20대 초반에 겪은 일들이다. 그에게 산과 그림은 매순간 삶의 버팀목 같아 보였다. 에필로그에서, 40년간 등반을 하지 않던 그가 최근 에크랑 산군의 힘든 등반을 하고 난 후, 함께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살아 있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걸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 정말 멋진 건,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는 거야. 마치 어제 일처럼!"(295쪽)


이 책을 통해, 알피니스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험한 곳을 오르는 투지와 집념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동료를 잃기도 하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기도 한다. 어려운 루트를 통과했거나 새로운 루트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명예롭게 거론되고, 전문 산악인이나 가이드를 꿈꾸거나, 장마르크처럼 마음속에 늘 산을 품고 산다.


이 책은 알피니즘을 담은 내용일 뿐 아니라, 가슴 두근거리는 자신의 꿈을 찾아 방황하고 때로는 좌절하다가 끝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는 청년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현재 60대인 장마르크가 여전히 산과 그림을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 것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나를 설레게 하고 버티게 해주는 그 무언가는 늘 필요할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떠올리게 만드는 그래픽 노블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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