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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전행선 옮김 / 리프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핀란드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라 관심이 생겼고 "독버섯에 중독된 버섯 회사 CEO" 이야기라는 소개글에 솔깃해졌다. 표지 그림이나 제목은 핵심 줄거리의 무거움에 비추어 가볍고 유쾌하게 느껴져서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다. 사실 그런 부조화가 궁금했고, 내심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를 기대했다. "블랙 코미디의 범죄 소설" 장르를 표방하기에, 읽는 내내 긴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송이버섯 수출업체 대표인 서른일곱 살 야코는, 위경련과 어지럼증을 동반한 독감 증세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체내에 하마도 쓰러트릴 정도의 독소가 축적되었고, 치료 방법은 없으며, 살 날이 길어야 몇 주 정도 남았을 뿐이라고. 그는 충격을 그대로 안고 돌아온 집에서 또 다른 충격과 마주한다. 아내 타이나와 회사 직원 페트리의 불륜 현장.
두 사람이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 것일까. 무작정 경찰서로 들어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그는 세 가지 맛의 스쿱으로 30센티미터 높이까지 올린 콘을 사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음미한다. 심각한 상황 가운데 아이스크림으로 기분을 달래는 그를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고 해야 할지...
앞으로 야코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정말 죽게 되는 것일까. 그에게 독을 먹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유력한 용의자는 타이나와 페트리, 그리고 6개월 전 갑자기 등장한 버섯 회사 경쟁업체 '하미나 머시룸 컴퍼니' 3인으로 좁혀진다. 특히 경쟁업체 세 명은 야코를 계속 압박하고 위협하며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들이다. 실종, 살인사건과 관련해 야코를 의심하는 티카넨 형사의 심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위기의 상황에서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증류물"(49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실제로 야코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실감이 아니라면 실행하지 못할 일들을 벌여간다.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준다고 말하거나 경쟁업체를 염탐하도록 하는 일, 자신의 몸을 날려 소나무 가지 하나로 노련한 칼잡이에게 맞선 일까지...
미각적 소설이라 해야 할까. 단맛과 쓴맛의 대조도 보인다. 야코는 타이나가 차려주는 성찬, 맛있지만 열량 높은 음식들로 인해, 적어도 7년 만에 몸무게가 24킬로그램이나 불었다. 그는 뱃살을 빼기로 하고 단식을 감행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달달한 도넛과 아이스크림, 비스킷을 좋아한다.
소설 후반부에는 그가 중독된 자초지종이 밝혀지는데, 결과적으로 겉은 달콤하지만 실상 독을 품은 음식 때문이었다. 음식이든, 사람이든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 일이다. 또한 경쟁업체 대표 아스코는 속임수로 버섯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개간지에서 화학비료로 키우는 송이버섯을 자연산 유기농으로 둔갑시킨 채. 야코는 그런 기만과 사기에 같은 직종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야코는 아내를 비롯해, 여러 직원들, 경쟁업체 사람들, 형사, 일본인 고객, 의사 등과 이야기를 엮어가기 바쁜 와중에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그로 인해 새롭게 삶을 바라본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시각각 짧아지는 지금 이 시간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광휘를 내뿜으며 얼핏 비치는 햇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 죽음 이후의 시간을 생각하니 뜻밖에도 기운이 솟는다. 세상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96, 248쪽)
야코를 보니까, 정말 아무거나 덥석 먹으면 안 되겠다. 유쾌하지만 살벌한 장면도 있고, 즐겁게 읽으면서도 잠시 곱씹어볼 문장들을 대면해본 시간이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