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가 들려주는 중세와 프리드리히(상)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 - 중세의‘화려한 반역아’,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빠져드는 흡인력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유년기, 세 살에 아버지를, 네 살에 어머니를 여읜 그의 후견인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다. 그는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온 인물로, 중세 세계의 권위와 권력을 유감없이 행사했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거기에 순응하거나 휩쓸리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걷는 듯한데, 이 책에서는 황제와 교황과의 대결 혹은 갈등 양상, 수습 과정을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겹쳐 보는데, 두 사람은 혼혈인 공통점 외에도 중세를 살며 중세의 고정관념을 깬 르네상스 선구자라는 교집합이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 프란체스코의 구체적인 행보와 그 의의가 정리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책으로 중세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질서를 알게 된다. 두 명의 최고 지도자는 교권이 부여된 로마 교황과 속권이 부여된 신성로마제국 황제다. 둘 다 세습이 아닌 선출직이다. 프리드리히가 시칠리아 왕이 된 것은 왕권의 세습이 가능해서였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것은 독일의 유력 제후들이 그를 선출해서다. 그런데 그 자리는 스스로 노력해야만 공고해지는 것이었다. 또한 로마 교황이 그 적격 여부를 결정하기에, 교황 초청 하에 로마에서의 대관식이 중요했다.

스무살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는 든든한 자기 편이 둘 있었는데, 튜턴 기사단단장 헤르만과 팔레르모 대주교 베라르도였다. 저자는 이들이 황제에게 헌신한 이유를 이상의 공유와 함께, 철저하게 믿고 맡기는 황제의 인재 활용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이 책은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 왕국을 중앙집권제의 근대 군주국으로 만드는 과정, 오늘날의 나폴리대학을 설립해 성직자가 아닌 세속의 학자가 가르치고 교회법이 아닌 로마법(당시 시민법)을 주요 과목으로 두는 등 여러모로 유럽 최초의 사례를 만든 것, 십자군 원정을 전투가 아닌 평화로운 외교로 이행한 것, 법치국가 체제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 무엇보다 여러 교황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영리하거나 대범한 행보 등을 서술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해 보이는 정교분리, 힘의 논리가 아닌 평화 지향, 법을 근거로 다스리는 국가 등이, 중세 사회에서는 교황권 혹은 기존 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황제 파문으로 이어질 사안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런 시대 상황을 감안할 때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룬 업적과 성취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겠다. 또한 신의 이름으로 유혈의 십자군 원정을 감행하고 이단을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드는 당시 교계 모습은 분노를 부른다. 종교인이 아닌 정치인과 다름없던 교황과 마찬가지로, 결국 권력의 남용일 뿐이 아닌가.

상권에 이어 하권에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