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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드라큘라 - 황홀경과 광기를 동반한 드라큘라의 키스
브램 스토커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책이든 영화든 공포, 스릴러를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는다. 너무 강렬한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아서. 그런데 가끔씩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길 때 보게 된다. 몇년 전 천만 관객을 넘은 좀비 영화의 경우가 그랬고, 최근의 <드라큘라>도 마찬가지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오늘날 새로운 이야기들은 오래전 원형의 끊임없는 변이 형태가 아닌가. 고대 흡혈귀 미신 사상을 기원 삼고 현재 뮤지컬로 상영 중인 '드라큘라' 이야기를 소설로 제대로 만나보고 싶었다. 브램 스토커가 1897년 발표했던 <드라큘라>는 음산한 분위기의 표지, 575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12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내게 왔다.
영국인 조나단 하커의 일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외국인의 런던 토지 매입을 설명하기 위해 파견된 변호사 서기"로서, 조나단은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을 찾아간다.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 눈에 띄게 새빨간 입술, 끝이 매우 뾰족한 귀, 대단히 창백한 피부색 등 백작이 풍기는 외모도 기이했지만,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성 안에는 종이나 거울이 없었고, 하인도 없었으며, 늑대 울음소리만 근처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어느 날 조나단이 자신의 휴대용 거울로 면도를 하는데 갑자기 백작이 나타나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분명히 가까이에 있는 백작 모습이 거울 속에 보이지 않는다. 면도하다가 베인 턱 끝에 핏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순간, 백작이 분노하며 조나단의 목을 움켜쥐다가 십자가 달린 묵주에 손이 닿자 이내 분노가 사라진다. 이후 조나단은 점점 조여오는 공포로, 감옥 같은 성에서 당장 탈출하기로 결심하는데...
조나단은 백작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드라큘라 부족에 관한 이야기는 꽤 상세하다. 백작은 자기 종족이 모든 종족을 정복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전쟁의 나날은 끝났습니다. 요즘처럼 불명예스러운 평화의 시기에도 피란 이렇게 값진 것이기도 합니다.”(50쪽)라는 표현에서는 전쟁광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전쟁이란 타인의 피, 곧 생명을 빼앗는 일이 아닌가. 백작은 런던으로 이주하여 “피에 대한 갈증”을 마음껏 채우고 무고한 사람들을 “피에 굶주린 흡혈귀”로 만들어낼 요량이다.
조나단의 관점으로 서술되던 이야기는, 그의 여자친구인 미나 머레이가 친구 루시 웨스텐라와 주고받는 편지글,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수어드 박사의 일기, 미나의 일기, 루시의 남자친구 아서가 수어드와 주고받는 편지글, 수어드의 스승인 반 헬싱 교수가 미나와 주고받는 편지글 등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이 교차되어 진행된다. 얼핏 복잡하고 산만해 보일 수 있는데,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 보는 기분이 들었다.
숨은 단서 찾기처럼, 여러 관점을 종합하면서 사건 전개를 파악해갈 수 있다. 각 인물의 개별적인 듯 보였던 관심사들이 하나로 귀결되는 방식이다. 미나는 조나단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한편 루시의 몽유병을 걱정한다. 수어드는 정신병동에서 “미치광이 렌필드”를 예의 주시한다.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루시, 렌필드의 공통점은 흡혈귀인 백작이 그들에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소설은 가엾은 루시의 영혼이 다시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서 무사히 탈출한 조나단과 결혼하게 된 미나를 통해, 앞선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고 기존의 단서들이 종합된다. 불행하게도 흡혈귀 왕인 드라큘라와 피를 공유하게 된 미나가, 오히려 그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소설 후반부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퇴마사 교주 캐릭터 같은 반 헬싱 교수 일행은 과연, 오랜 세월 악의 힘을 키워온 드라큘라를 온전히 제거할 수 있을까. 미나는 끝까지 무사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드라큘라의 과거 현신이었다. 터키족을 상대로 무훈을 세워 이름을 얻은 드라큘라 백작은, 위대하고 고결한 가문의 자손이었는데 어느 순간 악마와 거래한 조상의 후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 여럿 중 이런 내용도 있었다.
“신의 섭리 속에서 늘 그랬듯이, 사악한 행위를 하는 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가장 애지중지하던 것이 결국 그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게 되는 법입니다.”(519쪽)
악은 치밀하고 견고하다는 말이 있던가. 그렇다 해도 악이 무너지는 것은 결국 자기 내부 분열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악에 대응하는 고결한 가치를 미나의 심성과 인격으로 대변하는 듯 보인다. 생명을 상징하는 피, 타인의 피를 탐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악의 존재, 그에 맞서는 사랑, 지혜, 용기 등의 진부해 보이나 불변하는 가치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고전 작품이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