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공간을 찾아서 - 우리가 잊지 않고 꿈꾸는 것에 대하여
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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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연구사 안정희 님의 <기억 공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보면서, 최근에 읽은 소설이 생각났다. 김숨의 중편소설 <듣기 시간>에서 화자 '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 증언을 책으로 엮기 위해 피해자 중 한 분의 증언 작업을 맡는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트라우마이자 고통인 기억을 굳이 되살려야 할까에 대한 질문이다. 기억하지 않아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고 기억하지 않아서 살 수 있었다는 표현도 나온다. 그런데 역사는 누군가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이어지는 것일 테고, 기억과 기록이 없다면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듯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그래도 개인이 기억을 떠올리기 괴롭다면 그것을 억지로 끄집어내게 만들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 책의 '여는 말'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문화적 행위는 간절히 기억하려 하거나 혹은 통렬히 잊고자 함이다."(5쪽)라는 표현을 보면서, 어쩌면 기억하기 위해 혹은 잊기 위해 애쓰는 것 모두 과거를 붙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일 수 있겠구나 싶다.

기록연구사라는 직업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기에, 이 책의 저자 소개만 보고 읽고 싶었다. 더구나 '기억'이라는 개인적, 역사적 의미망을 떠올릴 때 생각할 여지가 많을 듯했고, 기념관이나 박물관, 문학관 등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해서 관심이 생긴 책이기도 하다. 다소 딱딱한 서술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 열린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감성적이고 유려한 문체 덕분에 저자가 찾아나선 기억 공간들에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책은 크게 독일, 일본, 한국의 기억 공간을 담고 있다. 그런데 실상 각 장마다 한국인의 흔적이 스며 있다.

'독일 브레멘 항구의 이민 박물관'의 경우, 수많은 독일인이 신세계를 향해 고국을 떠날 시기에 한국의 간호사와 광부, 조선기술자들이 독일로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독일 뮌헨의 이미륵 묘'를 찾아가는 대목에서, 저자는 이미륵의 삶을 소개하고 그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 깔린 디아스포라의 슬픔을 체감한다.

'독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박물관' 편에서, 저자는 그곳에 한국관이 개설되어 있고 이는 조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발견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그것이 여전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상기해본다.

일본의 기억 공간으로 저자는 오키나와를 찾는데, 먼저 '슈리성'은 일본 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반환받은 20주년 기념으로 복원된 곳이다. 저자는 한국인 관람객으로서 그곳의 "사회적 맥락 안으로" 들어가본 셈인데, 시대적 의미 부여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 부분은 반면교사 삼으면 되지 않을까. 다음의 행보는 '아리랑 위령탑'이다.

그곳에는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밝힌 배봉기(최봉기. 오키나와에서 사망) 할머니를 기리는 아리랑 위령비, 오키나와 사람들의 집단 자결지 탑이 있다. "어른들이여 아낙네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원한의 품속에서 태어났노라"(105쪽)의 아리랑 비문을 뒤로한 채, 저자는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으로 향한다. 그곳 평화비에는 강제 연행돼 전쟁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 조선인 441명의 이름이 새겨졌다고 하나 이름칸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비석들이 수천 개 있었다.

한국의 기억 공간으로, 이 책은 '전라북도 진안의 사진문화관'을 담아낸다. 그곳은 1995년부터 용담댐이 준공된 2001년 10월까지 댐 아래 살던 사람들의 댐 건설 반대 투쟁, 이주, 철거 등을 촬영한 사진, 문서, 생활용품을 보유하고 전시한다. 저자는 '서울 종로구의 윤동주 문학관'이 2007년 생기게 된 배경을 서술하고, '제주 서귀포시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사연을 전한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개발로 사라져가는 제주 풍광을 사진 속에 담아내려고 애썼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인데, 그는 제주도 폐교를 임대해 그 이름으로 갤러리를 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인천 강화도의 심도직물 굴뚝'을 찾아, 강화직물의 역사는 도드라지지만 정작 "직물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역사"는 기념되지 않는 쓸쓸함을 느낀다.

저자에게 기록여행은 "기꺼이 연대하는 수천만 명의 동시대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217쪽)이고, 나에게 이 책의 여행은 기억 공간이 얼마나 많은 역사와 사유를 담고 있는지 새삼 일깨워주는 일이었다.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을 꿈꾸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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