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연쌤의 파란펜 - 세계적 문호들의 문장론 & 이낙연의 글쓰기
박상주 지음 / 예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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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 소통메시지비서관(연설비서관)'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을까. 이 책의 저자 소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대통령 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 님의 글쓰기 책, 그중 <대통령의 글쓰기>가 떠올랐다. 제목에 '낙연쌤',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가리키는 호칭이 쓰였고, 부제도 '이낙연의 글쓰기'라고 되어 있다. 특이하다면 부제에 '세계 문호들의 문장론'이 첨가된 것이랄까. '글을 시작하며' 대목에서, 저자는 이낙연 당시 총리의 별명이 교장쌤이었다고 전한다. 비서관실 연설팀을 상대로 훈화 시간이 있었는데, 연설문 보고 시간에 총리는 '사실'과 '진심'을 강조하는 글쓰기 선생님이었다고. 실제로 그는 기자생활 21년, 정치 입문 후 다섯 차례의 당 대변인을 했던 이력이 있다. 저자는 그의 '글쓰기 훈화'를 책으로 엮기 위해 동서양 문호들의 문장론을 읽는 가운데 낙연쌤의 '훈화'를 발견한다. 이 책의 구성은 문호들의 문장론과 낙연쌤의 글쓰기 강론의 융합이다. 실제 연설문도 책에 실려 있다. 정말 읽고 싶게 만든 구성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라는 타이틀과 무관하게, 낙연쌤의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어진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국내외 문호들의 글쓰기에 관한 인용이 꽤 많다는 것이고, 발췌된 연설문의 경우 연설팀의 초안과 낙연쌤의 수정본을 비교하도록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생각날 만큼, 글쓰기와 관련한 보석 같은 말들을 각 장의 주제에 따라 잘 배치하고, 궁극적으로 낙연쌤의 글쓰기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 정리해준다. 연설문의 초안과 수정본만 예시문으로 달아놓은 정도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왜 수정되었는지 조목조목 덧붙이고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개별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말이 곧 글인 셈이니까. 이 책을 통해, 원활한 소통을 위한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섬세한 뉘앙스의 차이를 담아내는 글쓰기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제10회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 축사'의 연설팀 초안을 본 후, 낙연쌤은 "병아리 모이 뿌리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죽 늘어놓기만 했을 뿐 그 의미를 받쳐주지 못했어요. 그저 아는 체하려고 한 정도입니다."(53쪽)라고 말했다. 수정본에서는 전문가들 앞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토로하면서 동시에 겸손하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는 뉘앙스의 문장들로 바뀐다. '제89주년 학생독립운동 기념식 기념사'의 초안을 본 반응은 어땠을까. "밋밋해요. 남의 이야기하듯 건성으로 쓴 글입니다."(85쪽) 기승전결도 뚜렷하지 않고 반전도 없으며 내용의 결함까지 있는 글이라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낙연쌤이 초안에 대해 어떻게 지적하는지 그 첫마디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 예를 더 들어보면, "글이 너무 가볍습니다. 흥분을 해서 균형을 잃었어요."(105쪽), "이건 죽도 밥도 아닙니다."(126쪽), "부처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자료에 함몰되지 마세요."(145쪽) 등이 있다.


이 책은 글의 마음, 뼈대, 꾸밈, 그리고 글과 삶으로 크게 나누어 해당 주제에 따른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백색의 글쓰기'와 'SNS 소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내용이다. 먼저 '백색의 글쓰기'를 살펴보자. 이 표현은 바르트의 제안인데 어떤 질서에도 예속하지 않은 중립적이고 냉정한 글쓰기를 창조하자는 것이다. 바르트는 직설법적인 글쓰기나 신문기자의 글쓰기를 그런 사례로 든다. 저자는 사실과 논평을 마구 뒤섞는 요즘 신문을 비판하고, 슬픈 감정조차 수식어나 관념어보다 사건과 사실로 잘 드러낼 수 있다는 낙연쌤의 '백색의 글쓰기'를 모범 사례로 든다. 또한 저자는 SNS 글쓰기란 나를 확장하는 일이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이기에, 중요한 것으로 공감, 타이밍, 쌍방향, 사실 확인을 언급한다.


이 책에 인용된 문호들의 말 중에서 "삶과 문학은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 "글은 나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작가 카프카의 말을 떠올려본다. 잘 쓰기 위해 잘 살아야겠고,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쓰며 버틴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러 문호들과 낙연쌤의 말들이 내 안에서 꿰어진 구슬이 될 때, 실제 글쓰기에서 이전과 달라진 결과물, 어설픈 초안에서 탈바꿈된 그럴듯한 수정본이 나오게 될 터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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