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로소 나를 만나다 - 나와 함께, 나답게, 나를 위해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21년 6월
평점 :
나다움이 무엇일까. 육아를 하면서 부쩍, 어쩌면 처음으로 깊이 해본 생각이다. 이전의 내가 낯설고 현재의 나는 더 낯설며 미래의 나는 얼마나 더 낯설까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면서 밀려드는 혼란스러움. 도대체 나다운 게 뭐였지?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구체적인 문제들에 직면했다기보다 스스로 '탈피'의 때를 맞은 느낌이다. 그래서 저자 나이와 무관하게, 나다움을 주제로 다룬 책이면 그 내용이 궁금해서 펼쳐보게 된다.
특히 이 책의 차례 가운데 '오후 세 시에 나를 만나다'라는 장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에세이를 엮는다면 '오후 세 시'를 넣고 싶었는데 저자가 선점해버린 셈이다. 내가 그려보고 싶었던 막연한 그 시간을, 저자는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초록 바탕에 씩씩한 발걸음이 인상적인 표지, 초록 느낌의 2도 내지가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기분이다.
2019년 가을, 저자는 "처음으로, 온전히 나 혼자만의 의지로, 혼자 떠나서, 하루 묵는 여행"을 떠난다. 일부러 의미 부여할 수 있는 날 11월 11일에 제주도로. 저자 나이 55세 때다. 다음 문구가 많이 공감되었다.
"쉬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혼자 떠나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15쪽)
"일상이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은 것인지, 내가 일상을 쥐고 달렸는지는 알 수 없다."(23쪽)
저자는 문화센터에서 어른을 대상으로 그림책 강의를 하던 중 <나로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인생명함을 만들도록 했다. 저자의 인생명함은 삶의 이정표로서 자신의 가치와 방향이 담겨 있다. '눈이 부시게'라는 이름표를 단 저자의 인생명함에는 "나와 함께, 나답게, 나를 위해", "감동과 즐거움으로 나를 채우고 그 가치를 세상에 알린다", "느리게, 풍요롭게" 등이 새겨져 있다.
예전에 교회 소모임에서 각자의 '사명선언문'을 작성해본 적이 있다. 저자의 인생명함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다. 그럴듯한 문장과 표현으로 채워진, 명함보다 조금 컸던 종이를 한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되새겨보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종이를, 아니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렸던 것인가.
이 책은 저자가 혼자 제주도에 머물렀던 때, 코로나19 이후 동네 뒷산에 오르며 산책하는 시간, <오후 세 시의 나를 기록하다>라는 주제로 날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된 이야기, 자신의 건강을 돌보며 몸을 아껴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저자는 앞서 '책 사랑꾼'이 들어간 제목의 책을 두 권 출간한 바 있는데, 이 책 안에도 그림책을 비롯해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자신의 일상과 책, 거기서 받은 느낌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편안한 문장들로 스며든 느낌이다. 이 책은 후반 인생을 맞거나 이미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다운 후반 인생이 얼마나 멋지게 펼쳐질 수 있는지 저자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는 도전, 주변의 자연을 만끽하는 여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시간의 의미, 그리고 나이 들면서 약해지는 몸을 인정하면서 잘 돌보는 지혜 등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말을 "우리가 늙어가는 것은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로 바꾸기를 원한다. 젊음도 늙음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늙어가면서 익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숲도, 몸도, 오후 세 시도 결국은 문장이었습니다. 제가 읽어내고 해독해야 할 문장들 말입니다."(278쪽)
'책 사랑꾼'다운 이 표현도 인상에 남았다. 누군가 "일상 속 작은 것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