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y 얼굴을 잃어버린 소년 현북스 청소년소설 6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현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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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를 만났다. 거슬러 작가의 전작을 찾아보고 싶고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일까. R.J.팔라시오의 <아름다운 아이> 표지를 연상케 해서, 장애를 가진 아이인가 하는 추측도 해보고, 슬픈 이야기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미리 해보면서 책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얼굴을 잃어버린 소년> 데이비드를 만나 신나게 웃었다. 유쾌한 이야기다.

 

소설의 시작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십대 소년들이 홀로 사는 할머니 집을 찾아가 할머니가 가진 지팡이를 훔쳐오는 에피소드다. 소년들은 베이필드 할머니를 엿보면서 못생겼다느니 돼지 냄새가 난다느니 함부로 말하며 웃어댄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웃는 데이비드. 할머니한테서 중국차 냄새가 나고 그게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스콧에게 지질하다고 구박받을까 봐 그렇다. 랜디가 흔들의자를 뒤로 잡아당기고 스콧이 지팡이를 낚아챈다. 로저가 주전자에 든 레모네이드를 뒤로 벌렁 넘어진 상태의 할머니 얼굴에 붓는다. 같이 간 아이들이 이런 못된 짓을 하고 달아나는 와중에, 데이비드는 할머니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다. 할머니가 외치는 저주를 듣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는 오랜 단짝친구였던 스콧을 따라, 그 아이가 어울리는 소년들 무리에 끼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이구나 싶었다.

 

이후 데이비드의 머릿속에서는 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괴롭힌 할머니가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다. 저주를 믿지 않았지만 정말 자신이 저주받은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외친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곱씹고,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고 애쓰지만 소용없다. 당장 용서를 구하러 할머니를 찾아가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없다. 데이비드는 우연의 일치처럼 자신과 소년들이 벌인 말썽 장면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모습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왜 자신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저 가운뎃손가락 올린 게 뭐가 대수라고. 그런데 점차 알게 된다. 상대방이 설사 그 뜻을 모른다고 해도, 모욕의 의미로 공인된 표시를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어느 순간 자신은 저주받은 게 맞다는 굳은 확신으로 조마조마해진다. 좋아하는 토리 앞에서 멀쩡하던 바지가 흘러내리는 결정적 사건으로 인해, 데이비드는 할머니께 용서를 구하고 저주를 풀고자 하는데... 과연 데이비드는 소년들이 '마녀'라고 부르던 할머니 앞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늦었지만 용서를 구하는 데이비드를 다시 보게 됐다. 스콧 일행이 비꼬아 부르는 '찌질이'나 '샌님'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허세로 꽉 차 있는, 비겁한 찌질이다. 할머니의 지팡이를 되찾아 돌려드리기 위해,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 로저와 일대일로 맞서는 장면에서는 "한 방 날려라!" 하고 응원을 하게 될 정도다. 밝혀지는 할머니의 정체, 소설의 끝부분 에피소드가 '150년 후'라는 참신한 발상까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드는 전개 과정과 의미 있는 마무리가 좋았다. '얼굴'의 상징성은 여운으로 남는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읽었지만, 책 속의 문제의식마저 가벼웠던 것은 아니다. 사실 또래 문화에서 뭔가 낙인찍힌다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운 일이 될 테니까. 데이비드는 소년들의 행동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더구나 한때 단짝친구였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비난하는 데 앞장선 스콧은,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친구다. 그런 아이가 대놓고 자신과 함께 다니기 창피하다느니, 더 멋져질 수 없냐는 둥 하는 이야기를 한다면, 마지못해 그래볼까 싶다가 서서히 자기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새로 사귄 친구 래리의 지적이 옳다.

 

"넌 방금 네 얼굴을 잃어버렸어. (중략) 방금 걔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을 때, 우리도 걔들만큼이나 이 길을 걸을 권리가 있었어. 근데 넌 비켜섰잖아. 그러니까 얼굴을 잃은 거지. (중략) 걔들이 너를 무시하는데 네가 아무것도 안 할 때마다 너는 얼굴을 조금씩 잃어."(164-165쪽)

 

살짝 거짓말을 얹어서 말하곤 하지만 핵심을 말해준 래리, 항상 당당해서 멋진데 남자 같다는 말에 주눅이 드는 모, 데이비드와 친해지고 싶어 먼저 다가서는 토리, 그리고 잠시 형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하게 된 데이비드의 동생 리키까지, 모두 데이비드 편이다. 굳이 얼굴을 잃으면서까지, 자기다움을 버리면서까지 유지할 친구 관계란 이 세상에 없지 않나. 또래 문화와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베이필드 할머니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드에게 했던 말은, 내가 처음에 몰라봤던 데이비드의 매력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게 얼굴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남을 배려하고, 생각이 깊고, 사려 깊은 사람이란다. 우리가 사는 이 냉정한 세계에서는 그게 저주일 수도 있지. 너는 시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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