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틀리에 - 나를 열고 들어가는 열쇠
천지수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글을 잘 쓰는 화가도 있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일러두기'에도 나와 있듯이, 저자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일간지와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보완해서 엮은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읽은 53권의 책 이야기와 거기서 얻은 영감으로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다. 모두 책과 연관된 그림이라니 신기했고, 글 속에서 화가의 상상력이 그림으로 발현된 지점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화가로서의 이력과 개인사가 압축된 머리말의 다음 표현도 너무 좋다. 


"이 책을 엮는 이유 중 하나는 창조적 영감이 사라진 존재에게 나만의 말을 건네기 위함이다. 창조적 상상이 필요한 세상 사람들에게, 책과 독서로부터 영감을 얻는, 중요한 단서를 알려주고 싶었다. 화가로서 내가 읽은 책은 배움의 대상에 그치지 않았다. 책을 보고, 씹고, 재구성해서 나만의 날개를 만들었다. 책에서 받은 창조적 영감은 나의 붓이 더 멋지게 춤출 수 있도록 안내했다."(10쪽)


책을 차례대로 읽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자유롭게 읽어도 좋겠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거기에 해당하는 책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글을 먼저 읽고 자신의 감상과 비교해보면서 그림까지 얹어볼 수도 있다. 그림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책 이야기와 상관없이 그림 자체로 떠오르는 감상을 적어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림과 함께하는 독서 리뷰, 책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림 모음집이다. 글 속에는 화가의 일상과 아홉 살 아들의 에피소드도 있고, 화가로서의 고민과 그림 형상화 과정, 깊이 있는 삶의 성찰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혜석 관련 책을 읽고 그려낸 '붉은 정글' 이미지가 강렬했고, 노년의 독서에 대한 글과 연관된 '자유의 세계'를 그려내는 과정은 마치 꿈을 현실로 재현하는 듯했다. 호스피스 환자들을 돕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올린 '심장의 기억'은 심장 속 춤추는 사람들의 그림만으로 지금 이 순간의 생동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펀치의 운동성을 담기 위해 유화 대신 목화를 택하고, 일상의 조각들이 삶의 직물을 짠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의료용 거즈를 끈처럼 엮기도 한다. 무엇인가 화폭에 담는 한, 자유롭고 거침 없이 아이디어가 솟구치는 모습이다. 


"이리 재고 저리 생각하는 계산보다는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23쪽), "어른은 더 성장해서 결국은 인간이 돼야 하지 않을까"(28쪽), "아름다움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분명한 가치다"(54쪽),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내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90쪽), "내가 부여하는 의미가 진정한 시작이다"(128쪽) 등 저자가 책을 읽고 펼쳐낸 감상의 일부만 봐도 자신만의 아포리즘을 담고 있다. 화가로서 저자는 떠오르는 영감을 화폭에 담기 위해, 부드러운 듯하나 꽤 집요하게 책을 파고드는 느낌이다. '글 다듬기'에 관한 책을 보면서 '그림 다듬는 법'으로 고스란히 적용하여 '문장그림'이라는 작품을 완성할 정도다. 


저자가 이 책으로 삶의 시야를 넓히고 화폭에 상상과 성찰을 덧입혔다면, 나는 저자가 담아낸 글과 공들인 그림으로 책 여행과 그림 감상을 했다. 나다움, 용기, 열정, 기쁨의 스펙트럼이 한 뼘 커졌다면, 이 책의 밑줄 긋고 싶은 글귀와 빤히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 덕분이다. 책을 읽고 쓰는 것, 그림을 그리고 보는 것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나는 왜 책을 읽고 부단히 생각과 감상 쓰기를 반복하고 있는가. 이제는 내가 저자의 '그림 고민'을 온전히 나만의 '글 고민'으로 적용해볼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