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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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대강의 줄거리만 아는 정도의 이야기, 언젠가 제대로 읽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현대지성의 최근작 <프랑켄슈타인> 출간 소식이 반가웠다. 이 책은 1818년 초판본을 옮긴 것이고, 역자는 <프랑켄슈타인>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영문학 전공자다. 이 책에 실린 역자의 해제는, <프랑켄슈타인>의 문학적 위상과 영향, 작품 해설을 통해 독자들이 이 작품을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은 몇 편의 편지글로 시작된다. 북극 탐사를 위한 꿈을 안고 항해 중인 로버트 월턴이, 누나 마거릿에게 보내는 편지다. 네 번째 편지에 이르러, 월턴은 누나에게 이방인의 존재를 알린다. 그는 썰매를 타다가 얼음 파편에 의지해 월턴이 탄 배에 표류했는데, 두 눈은 광기 같은 기운을 내뿜고 대체로 침울하고 절망스러워 보였다. 월턴은 그의 정체 모를 슬픔에 동정과 연민이 차오른데다 망망대해에서 드디어 형제 삼을 만한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기록을 적어나가는데, 이방인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고 말하면서 본격적인 소설이 전개된다. 그 이방인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1인칭 화자로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부모님, 고모가 돌아가시고 고모부가 재혼하면서 함께 지내게 된 엘리자베스,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렸던 친구 클레르발이 소개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는 "불행한 운명을 장악한 정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우연히 보게 된 신비학자이자 연금술사의 책에 불필요한 열정을 쏟게 된 이후, 프랑켄슈타인은 불멸의 묘약이나 유령을 불러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대학에서는 자연철학 이론과 실험에 통달한다. 또한 생명의 기원을 파헤치기 위해 죽음을 연구하기로 하는데, 부패와 변질을 관찰하기 위해 지하 납골당이나 시체안치소에서 며칠간 보내기도 한다. 결국 "저항할 수 없는 광기 어린 열망"에 사로잡혀 부패한 육신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허황된 일념 끝에, 2년 만에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 눈앞의 형상은 "참혹한 괴물"이다. 경악하며 그에게서 달아나고 만다.

 

창조자에게조차 외면받은 피조물은 흉측한 외모 때문에 인간들에게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되고, 선한 기운을 모조리 악의 그것으로 바꾸며 창조자의 가족들을 희생양 삼기 시작한다. 그 후 프랑켄슈타인과 대면하고 "세상의 한 점 얼룩, 그저 비참하고 불행한 괴물"로 살아온 심정을 토로하는데, 원래 어질고 선했지만 불행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면서 창조자로서 자신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자신만큼 추악한 여자 피조물을 만들어주면 만족하겠노라고.

 

프랑켄슈타인은 흉측한 피조물에 대한 측은함과 책임감이 뒤섞여 그의 요청을 수락하지만, 괴물 여자를 만들어낸 이후 벌어질 더 큰 화와 저주가 두려워져서 약속을 파기하고 만다. 프랑켄슈타인의 결혼식날 찾아가겠다는 협박을 남긴 채 사라진 괴물. 이후 또다른 희생자들이 생기게 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필사적으로 추적하는데...

 

고전의 힘일까. 줄거리와 세부 묘사만으로 흡인력이 있으면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와 다양한 해석의 창을 열어놓고 있다. 과학문명과 생명윤리, 괴물의 상징성,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이 펼쳐낼 미래전망,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강박적 야심과 헛된 열심 등. 이 책에서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대사와 표현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본다.

 

"인간이 나를 경멸하는데 왜 나는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거요? (중략) 내가 받은 상처를 복수할 셈이오. 애정이 아니라면 두려움을 일으킬 거요. 특히 나를 창조한 최고 원수인 당신에게 꺼뜨릴 수 없는 증오를 맹세하는 바요. 조심하시오. 내가 당신을 파멸시키고 말 테니."(186쪽)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에게 하는 항변이자 협박이다. 경멸을 받았으니 복수를 하고, 애정을 받지 못했으니 증오로 되갚겠다는 것인데, 괴물 스스로도 깨달은 바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고 자신을 혐오하는 상태에 빠졌을 뿐이다. 억울하고 부당하지만, 그것을 괴물처럼 표출하지 않는 선에서 멈춘다는 것은 과연 단순히 법과 제도, 윤리의 문제일까.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고 야심을 피하십시오. 과학과 발견으로 명망을 얻으려는, 무모해 보이는 야심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284쪽)

 

프랑켄슈타인이 월턴에게 한 말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다. 월턴은 이상적인 생명체를 만들어낼 열망으로 가족과의 만남이나 삶의 휴식도 뒤로한 채 연구에 매진했다. 모든 평온함을 잃어버린 후에는 악몽의 시간과 결과물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생계를 위한 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다 보면,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이것까지만 이루고 나서"라는 단서로 보류되는 대상은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이 아니던가. "모두 가족을 위해서야"라는 명분, 그 이면에는 변명일 뿐인, 균형 잃은 '꿈과 현실'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사랑과 우정을 갈구했지만, 계속 거절당했소. 그런데도 여기에 불의가 없단 말입니까? 인류전체가 내게 죄를 지었는데, 유일한 범죄자라는 굴레는 왜 나만 써야 하는 겁니까? (중략) 비참하게 버려진 나는 추한 괴물이니 면박당하고 발길에 차이고 짓밟히는 게 마땅하겠지요. 지금까지도 이러한 불의를 떠올리면 피가 끓습니다. 하지만 내가 쓰레기라는 건 사실입니다. 사랑스럽고 힘없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으니까요."(289-290쪽)

 

괴물이 월턴에게 한 말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괴물의 말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흉악 범죄자들의 변명처럼 들려서다. 어릴 때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어른이 없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모두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등등. 살인자에게는 어떤 서사를 만들어줄 필요도, 동정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범죄자들을 만들어내는 사회, 소위 '괴물'이라 통칭되는 소외된 타자, 나와 다른 부류에 대한 배척, 혐오에 대한 문제는 분명히 심각하게 숙고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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