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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로 죽을 수도 있을까 - 심장외과의가 알려주는 심장의 모든 것
니키 스탬프 지음, 김소정 옮김 / 해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제목만 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마음의 상처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런 답변이 너무 쉽게 나오기에. 감정 조절이나 내면 심리에 관한 책인가 싶었다. 부제 '심장외과의가 알려주는 심장의 모든 것'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심장을 다룬다. 원제는 'Can you die of a broken heart?'인데, 본문에 '부서진 심장 때문에 죽을 수 있을까'라는 소제목도 있다.
'마음의 상처'보다 '부서진 심장'이라고 했을 때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무의식중에 마음의 상처는 언젠가 치유된다고 믿어온 탓일까. 그런데 부서진 심장이 곧 마음의 상처를 의미한다면, 지금까지 간과해온 마음의 상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심장에 무관심한 나를, 아니 심장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특별한 책을 만난 기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심장의 특징과 심장을 아름답고, 특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모든 방법을 소개한다고 밝힌다. 내용 중에 '아름답다'는 표현이 꽤 자주 나오는데, 저자는 심장에 매혹된 사람으로서 독자들도 심장의 경이로움에 빠져들기를 바란다. 심장 건강을 위한 실용서가 아니라 에세이 느낌이 강한 글이다. 의사로서 전문 지식을 알려주지만, 필요한 내용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자의 개인 경험담, 저자가 만난 환자들 이야기도 함께 풀어간다. "너무 화가 나고 슬프다", "끔찍하게 슬픈 측면이 있다" 등 저자의 직설적인 감정 표현도 드러난다.
부서진 심장의 의학 용어는 타코츠보 심근증 혹은 스트레스성 심근증이다. 타코츠보는 일본 어부들이 문어나 낙지를 잡을 때 사용하는 항아리로, 고장 난 심장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상심증후군'이라 불리는 이 질병의 사례로, 1990년대 초반 매사추세츠의 한 병원을 찾은 여성이 심장마비로 진단할 만한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막힌 혈관은 없었지만 그녀의 십대 아들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스트레스성 심근증에 대한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고, 여러 세포 과정, 인체 신호 물질, 호르몬, 몸이 지방산이나 포도당을 처리하는 방법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에스트로겐은 심장을 보호하는데, 갱년기에 그 분비량이 줄면 심장은 취약해진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취약하지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로 발병하는지는 알 수 없다. 스트레스성 심근증의 치료 방법이란 '증상 완화' 치료일 뿐이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줄면 심장도 회복되지만 치유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죽는 사람도 있다.
소중한 사람과 사별했을 때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데 70세 이상이 더 취약하고 사별 후 30일 이내 위험성이 크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다음날 심장마비가 올 확률은 평소보다 16배까지 높다. 심장세동(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 질환)으로 인한 다른 심장 문제, 뇌졸중을 일으키기도 한다. 저자는 비통함에 반응하는 몸의 작용을 서술한 후, 스트레스 작동 방식부터 완화법을 소개한다.
스트레스에 대한 상세한 내용 외에도, 이 책은 심장이식 과정과 인공심장의 현재, 최근에 이루어지는 여성의 심장과 심장 질환 연구, 사랑할 때 생성되는 호르몬과 심장 건강, 심장에 좋은 영양분, 운동, 심장에 좋은 것들로 자주 언급되는 레드 와인, 다크 초콜릿, 커피와 차, 슈퍼푸드 등에 대한 입장, 심장 질환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우울증, 심장을 보호하는 숙면, 유전자가 관여하는 심장 질환, 심장 건강진단과 예방, 심장 수술 및 치료의 역사와 미래 등을 다룬다. 심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여성의 심장에 대한 내용, 심장에 좋은 영양분과 운동, 여러 음식에 대한 글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용 자체는 우려스럽거나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심장마비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오지만 여성에게 오는 심장마비가 더 치명적이다. 그로 인한 사망률도 높고 심부전 등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도 여성이 더 많다. 여성의 심장이 남성의 심장보다 작고 조금 빨리 뛰는데, 그보다 중요한 차이는 작동 방식이다. 여자에게 오는 심장마비는 살면서 느끼는 단순한 등의 통증인지 심각한 증상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당사자뿐 아니라 의사도 증상을 놓칠 때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작동 방식의 차이 때문에, 심장의 치료 방법도 남녀가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임상 실험의 자원자는 주로 남성이었고 의약품과 수술 방법도 대부분 남성을 대상으로 했고, 이를 여성에게 맞게 개선해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게 현실이다. 여성 환자에게 맞는 약과 수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심장 검사 방법부터 모색 중이다.
심장마비 대목을 읽다 보니,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떠올랐다. 전 직장의 남자 상사분, 교회 여자 집사님의 소식 모두 갑작스러웠다. 당시 50대 후반의 연세셨다. 스트레스 대목에서는 회사 업무 스트레스로 심장 통증이 생겨 심장내과를 다니고 있는 가족 걱정을 하면서 읽었다. 사실 그 가족을 위해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자고 일어나면 심장이 조이거나 아픈 느낌이 있다. 이런저런 걱정 근심을 껴안고 잠이 들었을 때 그렇다. 그냥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구나 싶다.
이 책에 나온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내 심장, 가족들의 심장 건강을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심오하지만 취약한 심장을 일부러 놀라게 하거나 무리하게 하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