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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ㅣ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평점 :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만으로, 무겁고 어두운 소설을 기피하는 개인 성향과 상관없이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자의 말에서 언급되는데 '체르노보'는 체르노빌 지역의 알레고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해가 2011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도 넘었다. 그전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1986년에 일어났으니, 30년도 훨씬 넘은 그 사고 현장을 소설 무대로 끄집어내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작가는 러시아계 독일 작가로 알려져 있다.
울타리에서 떨어진 수탉 콘스탄틴을 능숙하게 잡는 '나'의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 소설은 80대 할머니 바바 두냐의 관점으로 전개된다. 당시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보호복으로 무장한 방사능 해체 작업자들이 체르노보에 왔고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은 졸지에 피난민이 되었고 서둘러 집을 떠나야 했다. 그 이유는 "원전 사고가 바로 어제 일어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지만, 결국 작가는 "아무도 제때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 소설은 당시 사고 현장과 실태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지 않았다. 그때는 50대였던 바바 두냐가 다시 체르노보로, 자신의 낡은 집으로 돌아온 이후 시점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녀는 왜, 굳이 폐허의 마을로 돌아왔을까.
"엄마, 방사능이 뭔지 엄마도 잘 알잖아요. 모든 게 방사능에 오염되었어요."
"난 늙었어. 나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 혹시 그렇다 해도 세상이 망하지는 않아."(22쪽)
딸 이리나가 울면서 말려도 소용없었다. 바바 두냐는 시골에 사는 것을 좋아해서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곳 동물은 비록 방사능에 오염되어 기형이 되었을지언정 도시의 동물처럼 머리가 병들지는 않았다. 도시의 소음과 비좁음은 고양이와 개를 미치게 한다."(21쪽) 이 표현은 고양이를 대변한 듯하지만 실상 자신의 심정 토로처럼 보인다. 마을에는 두 손으로 세면 충분할 정도의 사람들이 산다. 작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약간 미친 모양으로 그물을 잣지만 도무지 없앨 수 없는 거미들"(27쪽)에 빗대기도 한다. 원전 사고 이후 새들이 줄어서 곤충과 거미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 돌아온 사람은 남과 어울려 살고 싶지 않거나 돈이 궁해서다. 온몸에 암이 퍼져 평온하게 죽고 싶어 이곳에 온 사람도 있다.
바바 두냐는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 땅과 그 땅의 모든 산물처럼 자신도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생물학자가 그녀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방사능 물질이 뼈 안에 침투해서 주변으로 방사능을 방출하는 까닭에 그녀의 몸 자체가 작은 원자로와 같다는 것이다. 외부인들에게 그곳의 음식은 실험용이지 시식용이 아니다. 그녀는 그 땅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그곳에 살지 않아 다행이라 여긴다. 어쩌면 그녀는 온몸으로 그곳을 껴안고 있는 느낌이다. 설령 자신의 생명에 해로움을 준다 해도, 자신이 살던 집이 있고 이웃들과의 소소한 일상이 있으며 여전히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에... 어리석고 무모해 보이고 걱정스러운 모습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삶은 편안하고 당당해 보인다.
바바 두냐의 눈에는 죽은 예고르뿐 아니라 여러 망자들이 보인다. 남편과는 대화를 나누고 다른 망자들에게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다. 그녀는 원전 사고 당시 간호조무사로 일했는데, 그 직업적 특성인 돌봄과 배려가 몸에 젖어든 탓인지 마을 사람들의 병세와 심리를 잘 파악하고 대처해주기도 한다. 스스로 '대장질'을 한 적은 없으나 모두의 대장 같다. 손녀딸 라우라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그런 대로 평화롭게 지내던 그녀의 일상이, 한 사내가 딸과 함께 방문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소설에서 결혼 당시를 떠올리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결혼 후 바바 두냐는 집 안뜰에서 구두를 벗고 춤을 추었다. 주변의 남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남편 예고르가 구석으로 몰고 가더니 신발을 신고 있으라고 윽박지른다.
"예고르에게 화가 났던 게 아니다. 당시 남자들은 대부분 다 그랬다. 내 실수는 남편을 잘못 구한 게 아니었다. 실수는 결혼을 했다는 것 그 자체였다."(53쪽)
그녀가 딸과 손녀를 생각할 때면 떠올리는 생각도 마음에 남았다. 라우라가 방황하는 가운데도 자기 엄마 대신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어보이는 듯 보였는데, 그 이유를 조금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너는 여전히 어린아이다."라는 부분에 공감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젊다는 것처럼 지독히 끔찍한 건 없다. (중략) 결혼 후에는 정말로 힘들어진다. 갑자기 너는 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갈수록 점점 더 휘어지는 네 등에 올라타려 한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너는 이미 언제나 아이였고 아직 한참이나 아이로 머문다. 운이 좋으면 네가 늙었을 때 반쯤 성인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너는 젊은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 전에는 왜 젊은것들은 늘 여전하냐며 시샘한다."(108-109쪽)
바바 두냐의 시선을 따라 흡인력 있는 문장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초반의 평화를 되찾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안도감을 가지게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체르노보'로 대변되는 원전 사고를 상기하며, 개발 논리로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 현대사회의 이면들을 생각해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제품, 특히 먹거리와 화장품 등에 대한 불안, 경계 분위기가 잠시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공항에서 일하던 친구 말에 따르면 일본 여행을 오가는 사람들 수는 줄지 않았다고 했다. 외부인들에게 '체르노보'는 두려움, 기피의 장소인데, 실상 우리가 머무는 곳은 정말 안전한가.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 거대한 '체르노보'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맥락에서 말하자면,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망가뜨린 결과 스스로 안식처를 '체르노보'로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폐허와 절망의 시간 혹은 공간에서 삶을 꾸려나가야 할 때, 이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동력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