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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별곡 - 정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설화 채록집
손진익 엮음, 한용욱 그림 / 북산 / 2021년 4월
평점 :
표지부터 옛이야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은, 정선 지방에서 전승되거나 전해지는 이야기를 채집해서 각색한 것이다. 저자는 오래전 정선에 정착해서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는 '정선 할아버지'다. 정선의 옛 지명은 '도원'으로 '복숭아 꽃 피는 아름다운 곳'을 이르는 말이다. 책 속에는 이곳과 관련된 열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도담삼봉과 아우라지 등 여러 지명에 얽힌 역사와 유래가 담겨 있다. 몇년 전 여름 휴가를 강원도 쪽으로 가면서 가족들과 정선을 둘러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친근한 마음으로 설화를 한 편씩 펼쳐보게 되었다.
마을 수호신이었던 정선의 삼봉산은 어느 날 홍수로 인해 사라져버린다. 삼봉산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마을 사람들은 단양에 이르러 세 봉우리를 발견하고 당장 옮겨오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 그들은 단양 사람들에게 수십년간 삼봉산의 산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는 나루'라는 뜻으로, 정선 아우라지를 배경으로 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정선아리랑의 여러 설화 중 가장 유명하다. 정선아리랑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인데, 세월에 따른 전승으로 수백 가지의 가사가 있으며 잔잔하면서도 소박한 가사와 서글픈 가락이 특징이다. 책 속에는 그중 한 가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정암사가 생겨난 배경, 자장율사가 아상(我相. 우월감과 교만) 때문에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던 일화, 가리왕산 이름이 나온 여러 설, 아름다운 절경을 품은 신비한 계곡인 광대곡 이야기, 새골마을의 변천사, 불효자의 인과응보 결말, 도적을 새사람으로 바꾼 전생원의 도량 등을 담고 있다.
특정 지역을 둘러볼 때, 지명에 얽힌 사연을 알고 보면 왠지 그곳이 특별해 보인다. 언젠가 다시 정선을 여행하게 될 때, 이 책에 나온 여러 지명과 절경을 마주하게 되면 이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하다. 여기에 수록된 설화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 세월의 무상함, 인덕과 지혜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아우라지 이야기와 신성시된 광대곡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이 책에 수록하지 못한 설화는 저자의 다음 책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이후 이야기를 기다려볼 밖에. 그전에 다른 지역의 설화 채록집도 속속 나와준다면 반갑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