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감정 - 민망함과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은 삶에 어떤 의미인가
멜리사 달 지음, 강아름 옮김, 박진영 감수 / 생각이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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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고자 저자 소개부터 살폈다. 심리학자가 썼겠거니 짐작을 해봤지만 의외로 저자는 뉴욕 매거진 <더 컷>의 수석 편집자다. 부제 '민망함과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은 삶에 어떤 의미인가'로 책 내용을 대강 짐작해보고, 감수자 박진영의 이름을 보고 신뢰감을 가져본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책을 의미 있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저자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일기를 읽는다. 출연자들이 십대 시절 일기를 낭독하는 라이브쇼 <모티파이드>(Mortified: 창피, 굴욕을 당하다)의 프로듀서들 앞에서. 저자가 스스로 어색함과 민망함을 자초한 이유는 그에 대한 연구 목적 때문이다. 일단, 이 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에게 어색함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커질 때 자신의 행동이나 모습을 의식하는 행위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경보 시스템이다. 저자에 따르면, 어색함이 경보음을 내면 민망함이 시작된다. 민망함은 어색한 순간이 만들어낸 강렬한 본능적 반응이자 불쑥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면서 나타나는 불쾌한 자기 인식이다. 그런데 저자는 타인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고 창피함을 느낀다고 해서, 이를 외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기 내면의 이상적인 자아의 모습을 원한다면 반드시 바라봐야 한다.

저자가 연구하는 어색함은 내성적, 수줍음, 부정적 정서를 느끼는 신경증과는 구별되고 거의 누구나 민망함을 느끼는 특정 상황,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간성에 주목하는 듯하다. 저자는, '너무 어색해'라는 말을 매일의 사회생활이 실제로 얼마나 혼란스럽고 헷갈릴 수 있는지 감지한다는 뜻과 연관시킨다.

"혹시 여러분이 좋은 인상을 남기려 할 때 긴장감이 치솟는다면 여러분이 어색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어쩌면 그건 여러분이 그 상황의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다."(50쪽)

저자도 예를 든 부분이지만 나는 누군가의 장례식에 갈 때마다 어색함이랄까 긴장감을 느끼곤 했다. 아버지를 여읜 친구,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생을 잃은 회사동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책의 방향성과 무관하게, 나의 경우는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을 인정했다. 그런 자리에서 결국 마음속에 품은 말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멀찌감치 무리 속에 섞여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스스로 '그게 최선이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돌아봤을 때는 '그게 맞았구나' 싶기도 했다.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보면, 어색한 순간은 내가 몰랐던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숨겨진 자신의 편견(오해와 착오를 포함)과 맞서기란 힘들고 지치고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전제한다. 가령 인종문제와 관련해 백인들이 긴장하면서 '어색하다'라는 단어를 자주 찾는 맥락과 관련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타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보는 관점이 굳이 필요할까 하는 반문을 해봤다. 오히려 소음이 많은 시대에 자기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의 견해가 나온다. 저자는 '자기 무관심'에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편안함을 의미한다. 여기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자존감 운동에 깊이 빠져 있던 유년기에 대한 반작용 측면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탁월한지, 얼마나 특별한지 하는 말들보다 '겸손'과 동의어 격인 '자기 무관심' 곧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기를 강조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상대를 대할 때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일상생활에서 어색함을 줄이는 비결은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언행을 하도록 자신을 감시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내부에 집중하는 대신, 밖으로 관심을 돌리고 타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저건 진짜 내가 아니야, 난 저런 사람이 아니야. 자신을 그런 식으로 조각내는 것은 상처다. 차라리 나는 그 어색한 부분을 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방법을 찾겠다. (중략) 어딘가로 밀어뒀던 내 마음의 조각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장담하건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스울 것이다. (중략) 어색함으로 우리가 고립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가 함께 민망해지는 일이다."(340,342쪽)

이 책에는 어색함과 민망함에 대한 여러 사례들이 실려 있다. 학술논문이 아닌 개인적인 연구 목적을 담은 책이기도 하고, 미국 정치와 문화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인지, 그 예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반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예들 가운데 어색함, 간극을 느낀 순간 나에게 겸손이 요청되는 시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국인 저자 버전의 <웅크린 감정>도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무관심의 개념, 타인을 바라봄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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