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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평점 :
참 재미있는 제목이다. 책표지에는 벌레 '충'(蟲) 한자가 있고, 거기에 여러 곤충이 매달린 모습이다. 먼저 차례 구성을 보면서 여러 벌레의 생태를 자세히 보여주는 책이구나 싶었다. 올컬러 사진이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면, 아이와 함께 봐도 좋을 책이 되리라 기대했다. 실제 펼쳐본 결과, 그림이라면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작게 그려진 흑백 그림자 혹은 아이콘 정도다. 이 책은 각 벌레의 생태뿐 아니라 저자의 추억, 우리의 일상,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배울 점을 담았다.
저자가 선별한 생물체 스물한 종의 공통점은 한자 이름에 벌레 '충' 자가 들어간 것
이다. 그는 직접 중국 도시 '곤명'의 자원곤충연구소에 전화해서 동양 철학과 곤충에 대한 해석론을 전파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전하고 직접 그곳에 가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곤충의 '곤'(昆)과 곤명의 '곤'(昆), 우연의 일치처럼 발견했지만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꼭 자문을 중국에 가서 구할 필요가 있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서양학자의 자연과학적 관찰과 구별되는 동양인의 관찰과 표현, 그 속에 숨어 있는 은유와 해학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저자의 직업이 곤충학자거나 그동안 공부하거나 해왔던 일이 그와 연관되는 줄 알았다.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곤충과 벌레로부터 배우고 깨우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어쩌면 자연과학적 묘사나 지식적인 접근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많다. 이 책은 충선생의 지혜를 모은 것으로 특별하게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잠자리, 곧 청정(蜻蜓)을 살펴보자. 연약한 잠자리에게는 눈과 날개에서 오는 강인함이 있다. 잠자리의 비행 속도와 순발력은 포착한 먹이의 95퍼센트를 잡을 정도다. 잠자리를 통해 배운다. 결정하기 전에는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같은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우리 주변에서 외모나 행동이 얌전하고 온유해 보이지만 냉철한 판단과 뚝심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잠자리처럼 반전의 매력을 가졌다. 잠자리의 날개는 얇고 연약한데 까만색의 가는 시맥(翅脈)이 흐른다. 이곳을 따뜻하게 데워야 활동 에너지가 나오기에, 시맥이 상한 잠자리는 이내 죽고 만다. 우리에게도 각자 예민한 시맥이 흐른다. 나의 것, 타인의 것을 늘 살피고 보호해야 한다. 이 외에도 잠자리와 관련된 청점, 청령의 개념을 풀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대상 하나에 대한 고찰이 다방면으로 이루어져서, 읽을거리가 많고 여러 생각을 해볼 여지를 준다. 사실 잠자리로 부르기 때문에 '청정'이나 '청렴'으로 부르는 게 낯설다. 그런데 한자 의미를 풀어봤을 때, 잠자리를 둘러싼 다른 맥락을 살펴볼 수 있어서 새롭다. '청점'은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거나, 일을 겉치레로 하고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라는데, 이 단어도 처음 접했다. 저자는 인생이 항상 진지하고 묵직하면 고되기에 생산적인 '청점'은 괜찮다고 보는 입장인데,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오히려 반대의 생각을 하게 됐다. 한때의 방황이 삶을 어그러뜨릴 수 있기에 가급적 '청점'은 경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방황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
이 책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매미, 꿀벌, 나비, 귀뚜라미, 반딧불, 쇠똥구리, 사마귀, 땅강아지, 방아깨비, 개미, 거미, 지네뿐 아니라, 해충으로 알려진 모기, 파리, 바퀴, 메뚜기, 그리고 곤충은 아니지만 한자 '충'이 들어간 개구리, 두꺼비, 지렁이, 뱀을 다루고 있다. 제목만큼 내용도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식견, 풍부한 상식도 만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작은 생명체들에 대한 저자의 배움과 존중의 자세를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파헤치고 분석하는 연구 대상인 '충'이 아니라, 고단한 삶 가운데 벗이자 스승 삼을 '충'에 대한 고찰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맺음말에는 저자가 얼마나 많은 관찰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독일 동물원, 아프리카 오지, 아라비아 사막, 나이아가라 공원, 중국 박물관 및 생태연구소 등이 언급된다. 저자는 본문에 빠진 충선생인 하루살이의 메시지를 대신 전해주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각자 하루살이에게 받은 메시지는 다른 내용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인간은 '바쁘다, 한가하다, 빠르다, 느리다'라고 늘 '시간'을 가지고 말한다.
하루를 사는 우리 하루살이들(생물학적으로는 며칠까지도 살지만)에게
하루의 시간은 일생이다. 인간은 그 '일생'을 수만 번을 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 쫓기고 사는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누리면서 사시라.
그러면 모든 것이 편하고 아름다울 것이다.(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