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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무슨 일이? - 2021 볼로냐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 ㅣ 올리 그림책 1
카테리나 고렐리크 지음, 김여진 옮김 / 올리 / 2021년 3월
평점 :
아이가 샤를 페로의 <빨간 망토>를 꼭 읽어야 할까.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 정도면 괜찮을까. 유명한 동화 선집을 구매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다. 잔인한 늑대 이야기는 줄거리만 떠올려도 끔찍하다. 아무리 화려한 일러스트와 특이한 기법으로 장식한 그림책으로 나오더라도, 그런 줄거리는 아이와 함께 보기가 꺼려진다. 실제로 늑대가 위험한 동물인 게 맞고, 늑대를 못된 인간의 상징으로 본다고 해도, 지금은 아이에게 현실 그대로의 모습보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뭔가 다른 늑대 캐릭터를 예감하게 만드는 이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야!
책장을 넘기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해 봐.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뒤표지의 문구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적어도 무서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반전의 재미도 선사한다면 정말 기분까지 좋아지겠지. 책표지의 창문으로 언뜻 보이는 늑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늑대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일까. 더구나 '2021 볼로냐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이라는 은빛 마크가 궁금증과 기대감을 더한다.
글, 그림작가는 러시아 사람으로 일러스트레이터 겸 변호사다. 그림체가 간결하고 시원스러운 느낌이다. 빨강과 검정을 주로 사용하면서 두 색의 농도 조절로 변화를 주고, 간간이 사용된 녹색이 색조의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최소한의 색감 사용과 변주로, 각 그림에 해당하는 짧은 글이 자연스럽게 그림 속에 스며든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열세 편의 장면을 펼치기 전에 매번 책표지에 나온 창문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전체 그림의 일부만 창문을 통해 엿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막상 펼쳐보니, 늑대가 주인공으로서 전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고, 할머니와 아이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도 선보인다. 뒤표지에 나온 문구처럼, 이 책을 넘겨가면서 창문을 만날 때는 곧장 전체 그림을 보지 말고 반드시 상상해봐야 한다. 그러면 이 책의 재미와 의미가 더 배가될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슬며시, "나 쟤 잘 알아", "나 저 사람 잘 알지"라는 말이 얼마나 경솔한 것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타인이 내게 그렇듯이, 나 또한 타인의 일면만 보고서 전체를 단정해버리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