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오랜만에 접해보는 간증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소감은, 기존에 자신의 신앙체험을 열거한 간증서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글이구나 하는 것이다. 캐나다 이민 1.5세로서, 목사인 남편과 함께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헌신했고, 현재 선교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는 약력만 보면, 낯선 곳에 정착하면서 겪은 일화, 교회 개척 선교사로서 경험한 일련의 일들, 교수로서의 일상이 그려지겠구나 짐작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낮춘다. 오직 선교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사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간증일 테지만.
이 책의 구성은 '하나님의 은혜' 찬양의 각 구절을 하나씩 풀어주는 방식이다. 가령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구절 혹은 1장은 창조주 하나님, 저자가 만난 조물주의 사랑을 말한다. 이렇게 8장까지 각 주제에 맞게 하나님을 전한 후, 저자는 각 장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핵심 질문들을 던진다. 그 내용도 본문만큼 풍성하고 깊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1970년부터 2020년에 이르는 여정을 개간되지 않은 땅, 경작된 땅, 기름진 땅으로 구분하고 세부적으로는 온실 속의 흙부터 결실의 흙까지 구분한다. 이 대목을 보면서, 자칫 세상적으로 화려하고 돋보인 시절만 간증 시기로 삼는 게 아니라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내 삶에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조차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그런 삶의 시간들이 결국 옥토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지나온 삶의 어느 한 지점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때가 없다는 고백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 내용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비유는 '화살통'과 '돌베개'다.
저자는 인간적인 준비됨이 하나님의 때라는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오히려 스스로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 와닿는다. 나아가 화살통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