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 따르면,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가 길어질수록 모든 노동 계급은 압박과 빚, 초과근무, 사회적 불안정성, 무엇보다 분노 때문에 생기는 희생양 만들기식 혐오, 연대의식이 사라진 세상에 만연한 폭력 분출 등의 '병적 증상'에 허우적댈 것이다. 평등주의적인 재분배와 비위계적인 인정을 합친 '진보적 포퓰리즘'만이, 현재 유일한 헤게모니 선택지다.
진보적 포퓰리즘 블록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기반을 위해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자본주의의 대대적인 구조 변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경제와 정치, 생산과 재생산,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을 관계 짓는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기존의 인정 정치와도 결별해야 하는데, 배제적인 종족 민족주의, 자유주의적이고 능력주의적인 개인주의도 청산 요소다.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의 측면에서 일련의 미국 정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기존 헤게모니의 붕괴 현상이 있었다는 저자의 식견은, 거시적인 통찰과 합리적인 조망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미국 정치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저자의 통찰력과 정치 전망을 보면서, 한국 정치에 적용될 측면은 없을지 궁금했다. 가령 이명박 집권의 배경에는 "(선거유세용 수사에 불과했던) 경제 대통령 뽑아서 내 집값 좀 올려보자"는 말들도 있지 않았던가.
이 책은 낸시 프레이저의 논의에 뒤이어,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 발행인과의 대담을 실었다. 여기서 눈에 띈 대목은, 저자가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세계관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정 프로젝트들까지 포함하는 서로 다른, 심지어 서로 경쟁하는 인정 프로젝트들과 조응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경제 프로젝트"로 명명한 부분이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의 '해방'에 대한 능력주의적, 유리천장 깨기식 관점이 자유시장의 집단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통찰도 와닿았다. 진보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 모두 개인주의적 극복을 말한다는 것이다.
번역본 말미에 실린 '해제'에서는 저자의 논의를 요약해주면서, 저자의 낙관론이 가진 맹점을 지적한다. 그중 "그동안 소외되어온 노동계급이 경제적 포퓰리즘보다 초반동적 인정 정치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대목은, 맥락상 수긍이 가는 반론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트럼프식 반동적 인정 정치 의제에 기회를 줄 여지가 많지 않을까 하는 어두운 전망도 귀기울여볼 만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분배와 인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재고해봄으로써, 보수냐 진보냐의 단순 이분법적 논의를 넘어서서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조망하는 책들도 많이 나와주기를 기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