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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아빠 오늘도 근무 중 - 불은 잘 못 끄지만 전화는 잘 받는 아빠와 세 아들 이야기
김종하 지음 / 호밀밭 / 2020년 12월
평점 :
이 책의 부제 중 "불은 잘 못 끄지만 전화는 잘 받는"이라는 표현을 보고, 처음에는 '불을 잘 못 끄는 소방관이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표지 그림에서도 짐작이 되고, 책 소개에도 저자가 최근 3년간 본부 상황실에서 119 신고 전화를 받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소방관의 업무도 여러 분야일 텐데, 딱 한 가지 이미지만 떠올렸던 듯하다. 그만큼 나와 다른 직업군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다. 그런 사람들이 가족이나 지인 중에 있다면 그나마 이해의 폭을 넓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고정된 이미지나 편견으로 해당 직업군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잘 모르는 직업군에 대한 궁금증으로, 40대 소방관의 일과 가정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책을 펼쳤다.
저자는 15년차 소방관이자 맞벌이 부부로, 아내, 세 아들과 살고 있다.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아이 교장 선생님과의 상담, 녹색 어머니회(현재는 녹색 부모회로 바뀌었음) 참석, 학교 공개수업이나 방과 후 활동수업 참여 등은 주로 아빠인 저자의 몫이다.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 행사에 항상 엄마들이 따라다니는 분위기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 중 누구라도, 조부모 등 다른 양육자라도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 아니면 가족이 참여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아이가 괜히 주눅들거나 외로워할 필요가 없는 문화가 조성되면 안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소방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책 속에서 여러 번, 다른 직업으로 바꿀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현장, 예방, 대응 부서에서 일해왔고 지금도 성실히 일하는 중이다. 어느 직업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채 매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저자처럼 하루하루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 순간 15년차에 이르고 선배와 후배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간부급이 되고, 그에 따라 이전과 다른 무게의 낯설음과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식이 아니겠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저자의 아버지가 생전에 소방관이셨음이 드러난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저자가 이 직업군을 선택한 배경에 아버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저자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아버지를 이어 후원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아버님이 굉장히 중요한 유산을 저자에게 물려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왠지 아버님처럼 저자 역시 세 아들에게 닮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고 있지 않을까.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조금 깊이 풀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마흔을 맞는 심정 등 여러 소회를 드문드문 내보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아쉬웠다.
저자는 2018년 인문학 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서 직업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불평, 불만이 사라지고 전화 응대도 더 전문적으로 해내는 모습으로. 그래서일까. 이 책 전반에 걸쳐 명언, 시 구절, 다른 책들의 인용 등이 섞여 있다. 신고 전화를 받는 업무 중의 일화, 서로 다른 성향의 아내와 맞춰가는 모습, 세 아이들과의 에피소드가 일기식 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상 이야기는 잔잔히 읽어갈 수 있지만, 이 책에 나온 '119신고시 팁'은 꼭 알아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고속도로에서 신고할 때, 문자로 신고하는 방법, 전봇대 번호나 엘리베이터 번호 알려주기, 청각장애우의 신고 방법 등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점점 세상의 폭이 줄어든다고 한다. 자기 기준에 비추어 다른 세상의 사람과 소통하는 일도 점차 줄어들게 되고, 코로나 같은 상황에 처하면 더욱 그렇다. 다른 직업군, 다른 성별, 그리고 다른 환경의 사람들 이야기에 잠깐 동안이나마 귀기울여보는 시간은, 결국 내게 주어진 삶을 돌아보고 더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