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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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은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저자 박상훈이 진행한 5차례의 강좌를 묶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반정치주의와 정치에 대한 냉소가 팽배한 현실에서 정치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좋은 정치를 위해 좋은 정치가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서평은 강좌별 논의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으로 서술할 것이다. 

제1강: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

1강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인용하며 인간과 정치의 문제를 살피고 있다. 저자는 인간은 천사가 아니기에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정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는 그를 위한 수단으로 강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한 목적'을 위해 '악마적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 근원적 딜레마를 갖고 있다.

이 딜레마는 결국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이 선하기만 한 존재라면 애초에 정치가 필요 없을 것이다. 어떤 규율이나 강제성 없이도 이상적인 공동체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양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강제력, 즉 권력을 통해서만 더 나은 공동체를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인간의 양면성 때문에 정치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공동체에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정치의 문제는 회피할 수 없는 문제고, 정치가라면 이 딜레마를 깊이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의 길은 쉽지 않다. 저자는 선한 의도를 강변하는 '신념 윤리'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 윤리' 어느 하나만으로는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책임 윤리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은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잠깐 인용해보자. 

이런 세계에서 대의에 대한 헌신 없는 권력 정치가가 표면적으로 아무리 당당한 정치적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 성공에는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워져" 있다. 베버에게 권력정치론은 "인간 행위의 의미에 대한 극도로 빈약하고 얄팍한 오만함의 산물로서, 이런 오만함은 모든 행위 특히 정치적 행위에 내포되어 있는 비극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정치의 발견>, 34p 중에서  

이 대목은 베버가 권력 정치의 옹호자가 아니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책임 윤리'의 한계에 대한 부분은 짧은데다 관념적인 언어로 서술되어 있다. 반대로 질문해보자. 대의에 대한 헌신을 가진 정치가의 성공 역시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가지지 않을까? 정치란 그 한계 위에서 희미한 가능성을 찾는 것이 아닌가? 막스 베버를 잘 모르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더욱 구체적인 언어로 서술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제2강: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

2강은 버락 오바마와 미국의 빈민 지역 운동가였던 사울 알린스키의 사례를 주로 언급하며 정치적 실천론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알린스키의 말 중에 인상적인 말이 많았다. 일례로 "최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바깥으로 걸어나갈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반응들을 마치 관찰자처럼 살펴볼 수 있다"는 알린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라고 감탄하는데, 필자 역시 그 대목에서 감탄했다.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가 길게 인용한 오바마의 2002년 이라크 전쟁 참전 반대 연설은 그만큼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건 필자가 오바마의 정치적 견해에서 느낀 불편함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필자는 불편함을 느꼈다.

"남북전쟁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 가운데 하나였지만, 무력으로 인한 시련과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 이 나라를 완성했고 이 땅에서 노예제도라는 사회적 악을 철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링컨은 신문기자 호러스 그릴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분쟁에서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연방을 보존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도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대로 노예를 해방시켜야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노예해방은 남북전쟁의 목표가 아니라 부산물에 불과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이 이뤄진 후에도 흑인들의 삶은 힘겨웠다. 남부에서 KKK단을 필두로 한 백인우월주의 단체가 나타나 흑인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백인이 흑인을 살해하고 가정집과 교회, 학교에 불을 질렀다. 미국의 진보사학자 하워드 진에 따르면 1867년~1871년 사이에 켄터키 주에서만 이러한 인종적 폭력이 116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흑인들을 보호하는 데 소홀했고, 이후 남부에 주둔하던 연방 군대를 철수하면서 남부 흑인들에 대한 마지막 군사적 보호마저 사라졌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의도야 어쨌든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도라는 사회적 악을 철폐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노예해방이 차별과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같이 언급하는 것이 공정하리라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 역시 필자를 불편하게 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진주만이 습격당한 다음 날 입대해 패튼 장군의 군단에서 싸웠다. 할아버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악과 대항하여 승리하도록 해주는 힘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할아버지의 생각을 빌리고 있지만, 특별한 가치판단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오바마 자신의 생각이라 봐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2차 세계대전이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하워드 진의 말을 들어보자.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고, 독일이 훗날 홀로코스트(Holocaust)라 불리는 끔찍한 대학살(유대인 600만 명과 수백만 명의 소수 민족과 반체제 인사들)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프랭클린 D.루스벨트는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그 문제를 국무부에 떠넘겼고, 국무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205p 중에서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2차 세계대전은 과연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선한 국가들과 파시즘을 지향하는 악한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었을까? 오히려 하워드 진이 공군에서 만난 한 친구의 말처럼 제국주의 간의 전쟁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오바마의 연설에 감탄만 하기에는 개운치 않았다. "우리가 기꺼이 가담할 전투는 바로 이것이다. 무지와 편협, 부패와 탐욕, 빈곤과 절망과의 전쟁 말이다."라는 연설의 마무리는 꽤 감동적이었지만, 위에서 말한 부분들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하워드 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워드 진을 비롯한 진보파의 목소리에 대해 저자가 언급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바마의 다른 연설을 인용하며 저자는 오바마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오바마의 책 한 부분을 같이 인용하고 있다. 그처럼 오바마보다 왼쪽에 있을 독자들을 위해 이 연설에서도 오바마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뭔가를 말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하워드 진을 인용하며 이야기했던 것들에 대해 박상훈 정도의 인물이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 그랬다. 그리고 <정치의 발견>이 주로 진보파를 위한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바마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는 필자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뭔가 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설득이 됐든 비판이 됐든 간에.

3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

3강에서는 민주주의의 기원,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 민주주의의 차이, 촛불집회를 이해하는 방법 등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몇 가지 생각해볼 대목을 지적하고 촛불집회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짧게 서술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전략)…정당정치가 유럽에 비해 덜 발달했다는 미국에서조차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사람들이 식사 약속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심리학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 사람이란 그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보는 지표인데,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일이 편할 리 없기 때문이다.…(후략) - <정치의 발견>, 102p~103P 중에서 

저자가 민주정치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을 고려하면 저자는 이와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 최소한 부정적이지는 않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게 꼭 긍정적일까?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끼리, 공화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지지자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부의 결속력은 강해지겠지만,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는 오히려 벽을 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이 지금보다 더 사회생활로 들어와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는 동의하지만, 이런 방식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전략)…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했듯, 민주주의는 혁명의 가장 강력한 안티테제다.…(후략) - <정치의 발견>, 117p 중에서 

필자는 책을 읽다 이 구절을 여러 번 곱씹었다. 아마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최장집이나 저자와 의견을 달리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라 생각한다. 고종석이 어느 글에서 지적했듯이 좌파-어쩌면 필자도-는 가슴 깊은 곳에 혁명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이 혁명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있을까? 좌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정교한, 굉장한 설득력을 가진 논리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을 잠깐 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논쟁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기에 필자의 생각을 가능한 짧게 적어보겠다. 저자의 말처럼 촛불집회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고,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샤츠슈나이더의 말처럼 정당정치의 역할이 사회 갈등을 폭 넓게 조직하고 동원하는 데 있다면, 사회 갈등이야말로 정당정치의 기반이다. 그리고 운동은 사회 갈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운동이 곧 시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운동은 시민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며 따라서 운동은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이 정치체제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체제 또한 운동을 대신할 수는 없다. 열정의 소모를 두려워해 열정의 제도화를 위한 수단으로 정당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열정이 가능한 많이 표출될 때 제도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운동과 함께일 때 더 나은 정치 공동체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4강: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들

4강은 민주주의 초기 단계에서 진보파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이번 강의를 통틀어 저자는 '마르크스주의가 민주정치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157p)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 견해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대목이 있었다. '혁명론은 무엇보다도 종말론적 사고를 강화하기 쉽고, 실제 혁명에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갖는 반정치적인 사고 경향 때문에 혁명 이후를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기 쉽다'(140p)란 대목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견해처럼 혁명 이후의 사회는 주로 전체주의 사회였던가?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시민 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이후의 사회를 전체주의 사회라 볼 수 있는가? 필자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이런 혁명이 있은 후 전체주의 사회가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 혁명은 마르크스주의적 혁명과는 다른 자유주의적인 혁명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 혁명에서도 분명히 혁명론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시민 혁명, 영국 명예혁명에서는 혁명론이 이후의 사회를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지 않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혁명론이 달랐다면 어떻게 달랐는지, 그것이 혁명의 과정과 결과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논증해야 하지 않을까. 

'마르크스주의가 민주정치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저자의 말대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 권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논리가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과 관련해서 소련의 언론관에 주목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나 소련의 언론관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소비에트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언론은 국가나 공산당 노동자계급 기관들의 엄격한 지도와 통제하에 있어야 하며,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 조직이나 구상에 대해 언론은 이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주 깔끔하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필자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자본주의 사상은 용납될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다소 부정적인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소위 좌파들-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좌파로 분류될 여지가 크지만- 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수구꼴통이나 현실과 타협하는 개량주의자로 낙인찍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수파인 지금도 그러한데, 이들이 권력을 장악한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자는 과연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주제넘지만,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민주정치의 관계를 바라보면 위의 명제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5강: 이런 정치를 원한다

5강은 마지막이니만큼 이제까지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요약‧정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저자가 말하고 싶던 핵심이라 생각한다.

요컨대 정치적 이성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후략) - <정치의 발견> 173p 중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스웨덴 사민당의 이론가였던 비그포르스의 말을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구상은 끝없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향해 그저 조금씩 접근해갈 수 있는 종착점에 대한,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바뀔 필요 없는 구상이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미래에 대한 구상은 길을 인도해주는 별과 같은 것, 당면한 어려움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최선의 출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 Ernst Wigforss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정치를 필요로 한다. 인간이 천사나 신이라면 애초에 정치는 필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기에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한다. 선한 의도가 때론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사 발전의 필연성'을 신봉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와 이성에 대한 회의를 기반으로 우리는 어떤 정치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의 발견'이다.


물론 <정치의 발견>이 정치와 민주주의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저자가 말하듯 인간과 정치를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의견 내지 주장'이다. 모두가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사상의 좌우를 떠나 누구든 한 번쯤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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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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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사상의 은사' 리영희가 세상을 떠났다.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10여 년 투병생활의 끝이었다. 고인은 평소의 바람대로 망월동 국립518묘지에 안장됐다. 떠나간 이를 생각하며 오늘날 리영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기 위해 <리영희 프리즘>을 집어들었다. 70년대 학번부터 2000년대 학번까지, 세대를 넘어선 지식인들의 눈에 비춰진 리영희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잊혀진 '사상의 은사'

 

시인 고은은 '70년대 대학생에게는 리영희가 아버지였다'고 노래했지만, 2010년의 한국 대학생들에게 리영희는 낯선 이름이다. 한윤형은 '2000년 이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청년들에겐 아마도 강준만이나 진중권, 박노자 정도가 자신의 지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이제 대학 사회에서도 매우 한정된 영역의 일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물며 리영희야 말해 무엇 하랴.

 

천정환이 '오늘날 리영희라는 필독서를 아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고 말했듯 12월 5일에야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대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 리영희의 저작 중 <대화>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만을 읽어봤을 뿐이다.

 

사실 리영희 자신도 더 이상 자신의 책이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고인도 원하지 않았는데 이미 잊혀진 이름을 다시 호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부족하나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리영희, 그 논쟁적인 이름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리영희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리영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리영희는 언론인이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의 저작은 극우·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여러 차례 해직과 투옥을 반복하는 등 개인적인 고초를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펜 끝은 항상 권력의 심장부를 노리고 있었다.

 

리영희는 오랜 세월 논쟁적인 이름이었다. 그의 글은 많은 이들에게 '몽롱한 의식에 끼얹는 찬물 한 바가지'였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한편에서는 그를 '사상의 은사'라 불렀고, 반대편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 불렀다. 수많은 시국 사건의 뒤에 그가 있었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 주범인 문부식, 김은숙 두 사람의 재판에도 나는 증인으로 불려 나갔어요. 내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들이 진술했으니까."

 

그래서 강맑실은 리영희를 "시대의 흐름을 이끈 1970~80년대 학번들의 이념적·사상적 출발점"이라 평가한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 역시 리영희의 영향력을 인정한다. 윤평중은 그가 남긴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를 시장맹(盲)·북한맹(盲)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면서도, 2007년 경향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리영희를 꼽았다. 그러면서 리영희를 이렇게 평했다.

 

"리영희 선생은 민주화 운동 시기의 젊은 세대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시대적 패러다임을 형성했고 그 여파는 87년 체제 이후에도 지속됨으로써 현대사의 한 축을 형성했다. 보수 진영이나 우파에서는 그 특유의 이론적 빈곤이나 도덕적 결함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에 대응할 만한 인물이 전혀 부재하다."

 

그를 둘러싼 양쪽의 평가에서 드러나듯, 어떤 의미에서든 리영희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항상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가장 뜨거운 이름이었다.

 

우상파괴자 리영희

 

그러나 가장 논쟁적인 이름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리영희를 호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한윤형이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70년대의 리영희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듯 지금에 와서 보면 리영희의 오류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다시 리영희인가. 그가 저지른 오류에도 불구하고 리영희가 아직 잊혀져서는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리영희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우상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하던 자세, 그것이 리영희의 유산이다.

 

리영희가 평생 싸워온 적의 이름은 우상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반공주의, 미국중심적 우상과 싸워왔다. 우상에 맞서기 위해 그가 선택한 무기는 '글쓰기'였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곳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 <우상과 이성> 머리말 중에서

 

동시에 그는 자신 역시 어떠한 우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경계하고 성찰했다. 1991년 리영희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이란 강연에서 현실사회주의의 패배를 인정했다. 수많은 리영희의 제자들이 배신감을 토로했지만 그는 '주관적 오류나 지적 한계가 객관적 검증으로 밝혀질 때, 부정된 부분을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고수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어떠한 우상이나 도그마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했다. 그래서 강준만은 리영희를 '성찰의 대부'라 평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후배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하게 될 것을 저어했다. 김현진은 리영희와의 인터뷰에서 청년 실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충고의 말을 부탁한다. 그는 괴테를 인용하며 '내 충고에 따르지 않겠다는 조건하에서만 충고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렇듯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우상을 거부했다. 리영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허위의식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항상 자기 머리로 생각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서서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이들의 모범이 됐다.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 <리영희 프리즘> 16p 중에서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이라던 평소의 지론처럼 리영희는 권력의 억압은 물론이고 사상적 일관성이나 진영 논리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있었다면 단 하나, 진실이었다.

 

이쯤에서 우리는 현실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안수찬은 '단독자 기자는 사라지고, 부속품 기자만 넘쳐난다'고 한탄하고, 이대근은 '지식인들이 새로운 권력이라는 시장에서 자기 지식을 거래하는 상인이 된 듯하다'고 비판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를 둘러싼 허위의식과 우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 혹독하던 시대의 리영희보다 민주화된 시대의 우리는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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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김민아 지음 / 끌레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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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청소년은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아이어린이학생, 1318세대 등그리고 그중에는 '주변인'이라는 이름도 있다아이도 아니고어른도 아닌 둘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존재라는 의미다.

 

아이와 어른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그들의 위치는 항상 모호하다이제 아이가 아니니 어른답게 행동하라고 하다가도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고 타이르기 일쑤다청소년들은 어른으로서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받지만정작 그에 따른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인권은 대학가서 누리라고요?>는 바로 그 모호한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의 인권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사랑하면 때려도 되나요?

 

어른들은 흔히 '다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야'라는 말로 체벌을 정당화한다하지만 이런 발언의 밑바닥에는 청소년과 성인은 동등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략)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체벌은 교육의 한 방편이라고도 말한다.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매'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 입장에서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저희도 부모님과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러니 저희도 간혹 어른한테 사랑의 매를 들어도 될까요?"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62p 중에서


청소년들도 똑같이 어른들을 사랑하는데 그들은 '사랑의 매'를 들 수 없다면그건 청소년은 어른보다 열등한 존재고 따라서 어른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은 아닌가결국 체벌을 정당화하는 '어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른과 청소년은 대등한 존재가 아니고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며경우에 따라서는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어른을 때리면 안 되듯어른들도 청소년을 때려선 안 된다. '사랑의 매'도 매다. '사랑의 매'를 드는 교사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사랑을 꼭 매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혹자는 한국 교육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하지만 지금 당장 현실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적어도 폭력을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또다른 예를 통해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살펴보자.

 

명분과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체벌은 폭력의 일종이다당장 학교 밖에만 나가면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지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회사에서 부장이 "내가 평소 김 과장을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데 업무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니요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리겠군요엎드리세요"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63p 중에서


청소년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그 사랑을 체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라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청소년이 배제된 교육

 

이 책에 나온 사례 중 하나다현재 모든 초··고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를 운영하는데이 프로그램에는 자녀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학부모 서비스코너가 있다고등학생 형진이(가명)는 이 안에 담긴 자신의 출결 정보를 보려고 했다하지만 선생님은 학생에게는 NEIS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선생님도형진이의 부모님도 NEIS 정보를 볼 수 있지만당사자인 형진이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규정상 형진이는 NEIS 정보를 볼 수 있다. '교육정보 시스템의 운영 등에 관한 규칙' 9조 1항은 '정보 시스템을 활용하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또는 학생의 부모 등 법정대리인은 정보 시스템에 접속하여 당해 학생의 전산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규정과 달리 재학 중인 학생이 NEIS에 있는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학부모는 인증서를 발급받아 자녀의 정보를 볼 수 있지만학생은 이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학생들만 자신의 정보를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교과부는 NEIS의 학부모 서비스는 학교와 학부모가 소통할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학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이 배제된 소통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여기서 청소년들이 성인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청소년들은 교육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소통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학부모는 소통의 대상이지만청소년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다청소년들은 학교와 학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고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매'를 맞아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청소년에게도 평등한 권리를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는 위에서 말한 문제들 외에도 청소년 인권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그 모든 문제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코드 가운데 하나는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관리의 효율성 앞에서 그들의 권리는 너무도 쉽게 무시된다하지만 나이가 많든 적든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인권이라면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 아닐까?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나이가 어려도, 공부를 못해도, 대학에 가지 않아도' 그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청소년들이 꿈꾸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들으며이 서평을 마무리한다.

 

(전략)우리 청소년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그들은 쉬고 싶을 때는 공부나 성적 걱정을 잊고 마음 편히 쉬고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놀고좋아하는 취미활동에 몰두하고하루 한 끼 정도는 사랑하는 가족과 식탁에 둘러 앉아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다그것들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이다이제껏 입시경쟁이나 미래의 성공을 위해 곧잘 무시되고유예되었던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존중받을 때 우리 사회의 그물코도 온전한 모양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7p~8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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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동맹 - 한미관계 60년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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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주말이다. 개강하고 나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다. 오랜만의 휴식을 집에서만 보내기엔 아깝다. 뭘 할까 고민하다 얼마 전에 오픈한 후마니타스 책다방에 가기로 했다. 합정역 6번 출구에서 30여 분을 헤매다 마침내 찾은 책다방.

 

생각보다 넓고 깔끔한 실내 한쪽에는 다양한 책들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편집부와 영업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책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문사회과학서적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목표한 바가 있기에 과감히 다른 책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갈등하는 동맹>이 전하는 한·미관계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갈등하는 동맹>(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저, 역사비평사 펴냄)은 이승만-아이젠하워 정부에서 노무현-부시 정권까지 60년의 한·미관계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을 넘어서 객관적인 시각에서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친미주의자들에게 일갈 "진보정권이 한미동맹을 망쳤다고?"

 

보수주의자들은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이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한·미관계는 높은 수준의 동맹과 높은 수준의 갈등이 함께 진행되는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이 책의 제목이 <갈등하는 동맹>인 이유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한·미관계가 순탄했던 기간은 길지 않다. 이승만 정권은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한 상비계획(Ever-ready Plan)을 입안했을 정도로 미국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

 

박정희 정권 역시 존슨 행정부와의 짧은 밀월을 제외하면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끊임없이 갈등했고, 민주화 이후의 김영삼 정권도 대북정책과 관련해 클린턴 행정부와 갈등을 겪었다. 전두환 정권을 제외하면 소위 보수정권이 진보정권보다 미국과 더 사이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를 두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미관계의 성공요인은 긴장과 갈등이었는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가장 친미적이었던 장면과 전두환 정권은 미국의 도움이 가장 절실할 때 미국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지난 60년간의 한·미관계사는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 관점에서 볼 때도 중동·동남아·라틴아메리카의 친미 일변 독재국가들은 대부분 정치·경제적으로 실패했다. 친미와 독재 중 어느 쪽이 주요인인지는 더 연구해야 할 문제지만, 친미 성향이 이들의 실패에 한 원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친미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미관계가 항상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미국과의 갈등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미주의자들에게 일갈 "미국은 악의 축이 아니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한국에서는 반미감정이 고조됐다. 이는 미국이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방조 혹은 지원 없이는 군사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반미감정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주요 사건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발전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0·26 사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많은 한국인들과 일부 미국인들까지 박 대통령의 죽음에 미국이 연루된 것으로 생각했다. 가장 보편적인 생각은 박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비판이 그의 몰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과격한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체제그룹과 종교계 인사들 및 학생 등 박 대통령을 반대하던 여러 사람들이 미국이 김재규와 범행을 모의했다고 믿은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10·26 사태와 광주항쟁의 배후에 모두 미국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의 운명은 미국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말로 미국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가? 분단과 전쟁, 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에 미국이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라크 전쟁만 해도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수렁에 빠지지 않았는가. 미군 4천여 명의 희생과 약 1조 달러의 전쟁 비용이라는 손실을 치렀지만 미국이 애초에 내건 명분들은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고, 미국인들은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의도가 언제나 관철되지는 않는다. 일례로 미국이 이승만 제거 계획을 몇 번이나 세우고도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은 이승만을 대체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 역시 우리의 국내정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우리 자신이다

 

한·미동맹을 신줏단지처럼 생각하는 친미주의자와 미국을 '악의 축'이라고 보는 반미주의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미국을 결정적인 요소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미국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요소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항상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6월항쟁 국면에서 전두환 정부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군의 정치개입을 차단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군부가 다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정치의 민간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시위대 진압을 위해 군부대의 이동명령을 내릴 기미가 보이자, 미국 정부는 군의 서울 진입을 막도록 조치했다.…(후략)…

-<갈등하는 동맹>, 120p 중에서

 

전두환 정권은 미국과 매우 순조로운 관계를 유지했지만, 우리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뜨거워지자 미국은 전두환 정권이 아닌 민중의 편을 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영향력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어디까지나 한국인 스스로가 자기 나라의 갈 길을 결정해야 하는 '한국의 일'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역할은 지원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자문해주는 것이지, 진행과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다. 미국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거나 만악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미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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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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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겨레 21>의 사회부 기자 네 명이 직접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해서 한 달 동안 노동하고, 취재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것은 통계나 정책과 같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노동문제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이들의 취재는 '노동 OTL'이란 이름으로 기사화됐고,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일단은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고, 결과물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4천원 인생>(임지선 외 3명 저, 한겨레출판사 펴냄)에는 기자들이 경험한 노동의 신산함과 그들이 만난 노동자들의 생이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권일이 추천사에 쓴 표현처럼 감히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 할만하다.

 

임지선 기자는 서울의 갈비집과 인천의 감자탕집에서 '식당 아줌마'로 일한 경험을 풀어놓는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감자탕집의 직원들이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3개월간 하루도 못 쉬고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그래서 그녀가 사장에게 하루의 휴식을 허락받았을 때, 같이 일하는 언니는 "하루는 푹 자도 되니 정말 좋겠다"며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 노동자들과 다를바 없는 현 시대의 노동환경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였다.

 

삼동친목회에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들은 한 달에 이틀을 쉬었다고 한다.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따지면 물론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더 열악했겠지만, 휴일만 놓고 보면 인천의 감자탕집 노동자들이 1970년 평화시장 노동자들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정말로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임 기자는 그 외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요구되는 남자 손님들의 추근거림과 사장의 횡포 등등.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일이 끝나고 가정으로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08 여성가족패널조사'에 따르면 기존 취업 여성의 경우, 평일에 184분 가사노동을 한다. 그야말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이다.

 

그녀는 취재 후기에서 "나를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냐"는 독자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 가서 아줌마를 막 시킬 수 있었는데 기사를 읽고 나니 물조차 갖다달라고 하기 미안하다"고 하는 독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읽으면서 약간은 불편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진실은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이기고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문제를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은 환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웬만하면 앞으로는 식당아줌마에게 이것저것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나의 그런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치'에 눈 돌린 고단한 노동자들...이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안수찬 기자는 서울 강북의 대형마트에서 '노동'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일했던 코너가 달랐기 때문에 다른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읽으며 A 대형마트에서 일했던 경험이 자꾸 떠올랐다. 안수찬 기자는 '직원들은 매대에 기대는 것도 쭈그려 앉는 것도 금지된다'고 했는데, 원칙적으론 그렇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담당이나 선임 안 볼 때 다 했던 거라 '내가 좀 편하게 일했구나'란 생각이 약간 들었다.

 

안 기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마트 노동자는 대부분 마트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업체에 고용된다. 이들에게는 몇 년을 일하든 승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월급이 오르는 일도 없다.

 

내가 A 대형마트에서 일했을 때를 생각해봐도, 확실히 그랬다. 나는 어쩌다 보니 마트에 직접 고용이 됐지만, 내가 일했던 완구·문구 코너에서 담당과 선임을 제외하면 직영은 두 명뿐이었다. 음반·서적, 애완동물 사료, 수족관, 문구 외부업체, 완구 외부업체 등 대다수가 외부업체 직원이었다. 이들은 연장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이 나오지 않고, 식사도 자기 돈으로 사먹어야 했고, 몇 년을 일해도 담당이나 선임이 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등 분명히 차별이 있었다.

 

나는 어차피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거라 별로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4천원 인생>을 읽으면서 '거의 6개월이나 일하면서도 그런 생각도 안 해봤다니 참 무디구나'하는 자괴감을 약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잠깐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통로라고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 좋은데 민주노총은 꺼림칙하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영철이 말했다.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흔들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4천원 인생>, 133p 중에서

 

정치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없기에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이것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제까지 잘못해왔다고 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소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이 거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전종휘 기자는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 달을 보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첫째, 단속이다.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는 단속이 두려워 15년 동안 한 번도 남양주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피우롱 역시 단속이 두려워 마음껏 쇼핑하러 가지도 못한다.

 

전 기자의 옆방에 살던 몽골 친구는 미등록 신분의 부인을 항상 방 안에 가둔 채, 방문을 바깥에서 잠그고 출근했다. 단속이 나와도 쉽게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에, '불법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등록 노동자이고 이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만은 않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법대로'만을 외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 이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차별이다.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특히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한국인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비슷한 경력의 한국인은 그들보다 최소한 20만~100만 원 이상 본봉이 많다. 야근수당 단가도 본봉에 비례하므로 총액으로 따지면 차이는 훨씬 벌어진다. 같은 일을 14년째 하고 있는 마리아 누나의 본봉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신참인 나와 똑같은 130만 원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장일을 시작한 지 1년 된 민성이도 본봉이 140만 원이다.

-<4천원 인생>, 164p 중에서

 

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런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노래방 이야기였다. 공장 회식 때, 고깃집에서 맛있게 고기를 먹고 고깃집 한쪽에 마련된 노래방 시설에서 화기애애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외국인 동료들은 본국 노래가 없으니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 후에 노래방까지 간 것이었다. 자기들만 즐기는 것 같은 느낌에 불편함을 느낀 전 기자는 그 자리에서 팝송을 불렀고,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가 함께 그 노래를 불렀다. 이 또한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부터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배려가 공존의 시작일 것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배려와 공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이들을 잊지않고 끊임없이 부를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

 

임인택 기자는 경기 안산의 가전제품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회고한다. '인간'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라인'의 속도. 그 단순한 무한 반복 작업 속에서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일의 보람이나 자존심 따위는 느낄 수 없다.

 

1936년에 나온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절로 생각났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이윤 논리 앞에서 인간성이 무시당하는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고통은 '옆의 동료를 미워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있다. 호흡이 맞지 않아서, 작업을 방해받아서, 나보다 쉬운 일을 하면서 같은 시급을 받아서 동료를 미워하게 된다. 월터 윙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히 '사탄의 체제'라 할만하다.

 

물론 노동자들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사회적 멸시'와 '부당'을 내면화할지언정 모르진 않는다. 안산·시흥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64.9%가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너무 적다", 39.8%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다", 39.1%가 "복지후생이 빈약해 불만이다", 15.4%가 "관리·감독자가 인격적 대우를 하지 않는다"며 노동조건상 애로사항을 토로했다.('위 실태조사')

-<4천원 인생>, 247p 중에서

 

그러나 그들은 임인택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섬 같은 이들'이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고, 서로의 고통도 기쁨도 나누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그리하여 그는 쉽게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노해의 <오늘은 다르게>에 그런 말이 있다. 자신의 희망 찾기는 사실은 희망 버리기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짜 희망과 타협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쉽게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 복잡한 시스템의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만일지 모른다. 안수찬 기자도 그런 말을 한다.

 

"대안을 보고 싶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교육·빈곤 대물림·일자리·실업복지·주택·육아·의료·노조 등을 한 두름에 꿰뚫을 수 있는 간단하고 강력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매우 공감한다. '노동OTL'이, 그리고 <4천원 인생>이 목표했던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냉정한 분석 위에서 대안의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시도는 어리석거나 무모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더 많은 담론이 필요하다.

 

네 기자의 '노동OTL' 기사 뒤에는 네 명의 기자와 최고라·유재영 독자편집위원과의 좌담이 실려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내용. 최고라 독자편집위원이 "늘 주변에 있는데 우리 눈에서 자꾸 사라지는 사람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다시 불러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자, 임인택 기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차피 또 금방 잊혀질 거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을 불러내야 한다. 이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끊임없는 호명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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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검 2014-07-2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썼던 글을 하나씩 알라딘 서재에 옮길 계획입니다. 이런 조그만 서재에 관심 갖는 사람은 어차피 별로 없겠지만, 혹시라도 다른 사람 글을 왜 맘대로 서재에 올리냐고 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