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으로 말해요 우리 아이 속마음
신유진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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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본인과 달라도 너무 다른 자신의 아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당연하지 않았고, 말로 행동으로 설명하고 다그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와 아이의 마음이 동시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저자는 백방으로 정보를 찾고 모으고 혼자서 또 모임 안에서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러다 에니어그램이라는 도구를 알았다. 신묘하게도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아이와 함께 대화 나누며 저자가 진정 알게 된 것은 이것이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때 아이의 개성은 재능이 되고, 상처는 힘이 된다."

"아이가 바라는 사랑을, 아이가 바라는 만큼 줘야되는 거였구나."





이 책은 내용상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1. 에니어그램을 알기 전 저자가 겪은 우여곡절과 에니어그램을 알고 활용하며 생긴 변화

2. 에니어그램에 대한 설명과 유형별 체크리스트

3. 에니어그램이 아이와 양육자에게 발휘할 긍정적인 효과

나는 이중 2번 파트의 내용을 끌어와 아이들이 직접 체크할 체크리스트와 유형 설명 pt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열심히 준비한 체크리스트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9개 유형을 설명해 아이들이 스스로는 물론 옆 친구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

예상했던 시간보다 긴 시간을 자신과 서로를 이해하느라 쓴 아이들. 덕분에 밖에 나가 놀지도 못했지만 재미있었다고, mbti나 다른 활동도 하면 안 되냐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아이들이 대신 해줄 때의 그 기쁨이란!

여하튼 이렇게 한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아이의 성향을 이해하고 아이를 위한 사랑을 주기 위해 활용한 에니어그램을 네 명의 아이들이 자신과 서로를 이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재구성해 진행해보았다. 아이들에게는 일회성 이벤트여도 족하지만 앞으로 반 년 이상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있을 내겐 이제 시작인 느낌이다. 에니어그램이건 뭐건 아이들 개개인의 시선과 소리와 행위와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어른으로서 적절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나는 계속 노력할 거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빛나지만 어른의 빛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스스로를 갈고 닦는 데서 나온다 생각하니까.

아이들을 알기 위해 시작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생각하고 돌아보게 만든 책 『에니어그램으로 말해요 우리 아이 속마음』 그리고 에니어그램이었다. *



※ 본 포스팅은 도서를 증정 받아 쓰였으나

가감 없는 개인적 경험 및 감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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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미래 교육 대전환 - 입시교육의 붕괴와 고교학점제, 특별한 교육만 살아남는다
김보배 지음 / 길벗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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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지 않은 2025년은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이며 코로나19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리잡은 온라인 교육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더욱 커질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2025는 상징수일 뿐,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미래 교육'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교육은 무엇을 재고하고 비판하며 어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내 이야기다. '운좋게' 학교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해오며 크고작은 성취의 경험을 쌓았지만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게 돼버렸다. 이제는 그 울타리에서 나갈 때가 되었는데. 도전, 항해, 죽을 힘을 다해 얻어낸 실패ㅡ 그런 것들이 나와는 멀리 있는 것만 같다. 더 이상 날 앉혀 놓고 이게 맞다 저게 맞다 할 사람이 없으니 갓난쟁이 걸음 떼듯 비틀비틀 혼자 해보는 수밖에.


 이러한 절망을 느낀 게 나뿐만은 아닌 듯 교육은 더 이상 '경기장 위 말 달리기'를 시키지 않겠다고 한다. 자기만의 개성과 강점을 가진 아이들이 고루한 교과목의 경계를 넘어선 개별적 맞춤형 교육을 받으며 강점을 강화할 수 있게 돕겠다 한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 한들 여전히 중등학교 교육의 목적이 대입이라면, 다양성을 중시한다면서 (그동안처럼) 각 분야의 '탁월한' 아이들을 선별, 배치하는 데 열을 올린다면, 자유로움과 자율성을 모토로 한 '더욱 섬세한 통제'가 이뤄진다면... 본인이 교육 비관론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상당히 긍정적·낙관적으로 미래 교육을 전망했기에 외려 그 이면을 생각하다 이리 되었다.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으리라. 누군가에겐 이런 것이 다른 이에겐 저럴 수도 있고.


 어쨌거나 내가 이 책을 읽고 내린 나름의 결론은  국가 교육과정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현 시대가 맞닥뜨린 과제를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끈질기게 정당화하)며, 탁월함이든 주체성이든 민주시민소양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이건 꼭 필요하다 여기는 것들을 가르치려 애쓴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든 그르다 생각하든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텍스트를 하나하나의 현상으로 구성해내는 건 교육자들의 몫이다. 국가는 허구의 개념이지만 한 명 한 명의 교육 전문가와 교육자, 학생 들은 실존하므로 


 개인적으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겪어온 온라인상에서의 정보와 관계에 관련해 몇 배는 더 깊은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가슴 아팠다. 교사로서든 부모로서든 아이가 자라나며 겪어야 할 건강한 고통을 스스로 맞닥뜨리며 성장하되 '겪지 않아도 될' 시련들은 비껴갈 수 있게 돕는 사람이고 싶다. 꼭 나보다 어린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게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 여러모로 생각이 많다. 우선 내가 나를 잘 챙겨야겠지. 불안과 혼란보다 도전과 몰입, 안정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

* * *


 교육이 사람이라면 다른 누구보다 장수할 거다. 사회의 어떤 문제건 간에 그 원인과 방책을 떠올리다 보면 교육의 문제에 방점이 찍히곤 하니까. 나도 교육을 많이 욕했고 원망했고 한탄했다. 비판의 탈을 씌웠지만 속내는 사실 진한 감정이었다. 그렇지만 그 감정에는 기대와 소망, 희망도 늘 섞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육을 공부했고 교사가 되고자 했으며 교사가 아니더라도 아무튼 교육에 관여, 아니 일조(야망!)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래서였고, 

 여전히 미래 교육이란 키워드는 다소 우람하게 느껴지지만 그 우람함이 허울이 아닌 실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되도록 교육 받았고 교육하는 사람들이 '잘' 노력했음 좋겠다.  그 오늘들이 모여 우리의 교육이 삶에 유익한 것들로 가득 옹골진 교육이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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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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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경이로움을 새삼스레 자각하는 순간처럼 불안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그럴 때면 이전에 몇 번이고 불안에 잠식돼 봤음에도 바보가 된 것처럼 패닉에 빠져 아래로 아래로 꺼져갈 따름이다. 그때만큼 나 자신이 초라하고 작아 보일 때가 없다. 그래서 나는 종종 불안하지 않을 때에도 불안을 상상하고, 불안에 완전히 통제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 마련한 나만의 장치들을 손본다.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구미가 당기는 책이나 기사를 골라 읽고, 밤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등 소소한 행위지만 머그컵 속 작은 소용돌이 같은 불안이 나를 집어삼키는 파도처럼 불어나지 않게 하는 데엔 꽤 도움이 된다.

하고 많은 책들 중 이 책을 원했던 것도 그때문이다. 책과 심리학은 처리할 방도를 몰라 방치해두었던 내 마음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이미 큰 도움을 준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책과 심리학의 하모니라니!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에 질식되는 것만 같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책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러웠다. 대학생 때 나는 교양이지만 심리학 수업을 두 개 듣고 교직이수 과정에서 교육심리를 공부하며 심리학 이론을 나름 요모조모 빠삭하게 공부했어서 기대 수준이 높은 편이었음에도 재밌고 유익했다. 홍보 문구에 나온 것과 같이 이 책은 '심리 처방전'의 역할을 잘 해냈다. 요새 불안을 비롯한 마음의 어려움을 크게 겪고 있지 않음에도 그랬다.


▼ 특히 공감됐거나 실제로 도움이 된 글귀 ▼




처음 내가 이 책의 서평단 모집글에 신청글을 적으며 원했던 것이 모두 이루어졌다. 재밌었고, 유익했으며, 든든해졌다. 그리고 내가 한 뼘만큼 더 좋아졌다. 타인과 나를 비교해 나를 갉아먹기 일쑤였던 내가, 불안이 들이닥치면 그저 가라앉아 불안해했을 뿐인 내가 이렇게나 나를 생각하고 위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니. 요즘 나는 세상 누구와 나를 비교할 새도 없이 내가 나인 것에 만족한다. 이따금 질투는 한대도 그것보다 더 장대하고 경이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짜릿해한다. 그대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 그대가 그대인 것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하고 경이롭고 멋진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가 가장 먼저 알아주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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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생을 위한 프로젝트 - 책과 함께 성장한 우리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백란현 지음 / 더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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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2년 3월의 마지막날,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이게 맞나?' 하는 마음으로 임용고시 공부에 일단 발을 담궜으나 고등학교 선생님의 취직 제안을 받자마자 맞지 않는 옷 같았던 임고생 신분을 던져버렸다. '일이랑 공부? 까짓것 병행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이었으나 정작 해보니 이거 정말 만만치가 않다(먼저 이 길을 가봤던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만류했듯...). 나름 성실하고 부지런한 편이라 자부했는데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잡아채려 하다 보니 무엇도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해 나날이 지쳐갔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솔직히 이 책조차 나는 1년간 일할 직장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신청했다. 짧게나마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떠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고작 1년, 머잖아 잊힐 나의 이름 석 자 대신 책을 읽어봤고 좋아해봤던 찰나의 순간, 몇 번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서. 그런데 희한하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이들보다 나를 훨씬 많이 생각했다. 내 마음 주머니 속 어찌할 나위 없이 담겨 있던 허전함, 헛헛함, 외로움을 발견했고 그것들을 달래어 보낼 수 있었던 과거 나의 '책 읽고 쓰는 습관'이 그리웠다. 다시 그 습관을 갖고 싶었다. 나도 읽고 쓰는 삶,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졌다.


저자 백란현 선생님은 '선생님'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막막하고 막대한 도서관 업무를 맡게 된다. 교직에 있어 본 적도 없고 저자가 지난 과거를 묘사한 글을 읽었을 뿐인데도 눈앞이 아득했다. 얼마나 막막하고 버거웠을까. 오죽했으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가 나서 몸이 아프지 않는 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라는 표현을 썼을까. 나의 어머니께서도 몸이 열 개라도 바빴을 시절 '지나가는 차에 몸을 던지면 일은 안 해도 될 텐데.'라고 생각하셨다고 하신 적 있어 그 고됨이 더 와닿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 업무를 시작으로 저자는 독서와 독서교육에 대해 관심, 책임감, 보람, 목표의식 등을 갖게 되었고 그 일을 비롯, 고되고 외로웠던 모든 경험은 손수 일궈낸 소중한 자산이 되어 저자를 보다 단단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왠지 모를 위로, 아니 위안이 됐다. 뿌리가 땅에 자리잡기 전 무엇을 위해 자라는지도 모르고 그저 뻗어나가기 위해 애썼던 새싹이 조금씩 자라나 어느새 다른 작은 새싹들을 보듬고 지키는 든든한 나무가 되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달까. 나도 지난한 오늘들을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그런 나무가 되어 있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어쨌든, 저자는 생의 고됨을 책을 읽으며 승화시켰고 나 또한 감사하게도 그와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 게다가 세부 분야는 다르지만 어쨌든 나도 교육자로서 누군가들과 함께하길 꿈꾸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저자의 경험담과 조언이 내게 그닥 신선하고 새롭지는 않았지만 머리로 알고만 있던 것을 몸으로 실천하게끔 슬슬 떠밀어주는 듯해 고마웠다. 실제로 이 책을 완독하고 난 다음날, 그러니까 오늘 새벽 나는 겨우 생긴 동기가 사라질 새라 '하루 10분 독서'를 기록하고 인증할 모임을 '후다닥!' 만들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간 서점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도서관서 빌려 읽는 것보다 슥슥 밑줄 긋고 메모하며 읽고 싶다.'라는 충동으로 샀지만 액자처럼 방구석에 진열돼 있던 책을 가방에 넣어 직장에 왔다.

얼레, "조금 다른 인생을 위한 프로젝트" 어렵지 않네.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것 같은 기분, 생각보다 쉽게 내 거할 수 있네.

내 독서 습관을 만드는 방법과 아이들의 독서 근육을 길러주는 원리가 별반 다른 것도 아니었다. 모두 읽기, 날마다 읽기, 좋아하는 책을 읽기, 그냥 읽기만 하기. 특히 중요한 건 '날마다 읽기.' 교사가 아닌 복지사로서 직장에 있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기획하고 진행했던 정도의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실시하긴 어렵겠지만 위 원칙을 비롯, 저자가 독서교육에 대해 여러모로 가르쳐준 꿀팁들을 활용해 아이들과 책을 매개로 즐거운 대화를 꼭 해보리라.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다 조금 지쳤을 뿐 아이들 앞에 옆에 선생님으로서 서는 것에 나는 전혀 자신 없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못하지 않으니까. 😎
***

사람도 책도 인생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근래에는 모든 걸 겪어보고 싶은 마음에 떠밀리고 지쳐 정작 무엇도 해보지 않고 늘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았고, 이 책을 계기(기회)로 나는 나를 다시금 걷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내 눈과 손에 책을,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갖가지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쥐어줄 요량이다. 몸과 마음의 근육을 골고루 길러 혼자서도 함께도 잘 걷고 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자의 말대로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스펀지 같은 아이들은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나를 보고 따라하고 배울지도 모른다. 수채화 물감의 번짐처럼, 스며듦처럼.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데 적어도 살아 있을 땐 내 이름 대신 다른 걸, 그것보다 조금 더 나은 ( )를 남겨주는 사람이고 싶다. 저자 백란현 선생님은 그 자리에 '읽고 쓰는 삶'을 써넣으셨고, 그 쪽지를 받은 나는 아직 고민 중이다. 더 많이 겪어내고 살아내며 나도 내 답을 써낼 것이다. 읽고 쓰는 삶을 살고 계시며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 그리고 나를 비롯한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 쓰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는 백작(白作) 백란현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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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
유디트 타슐러 지음, 홍순란 옮김, 임홍배 감수 / 창심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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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책을 증정 받아 쓰였으나 가감 없는 개인적 감상임을 밝힙니다.


얼마 전 블로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두 편에 대한 글을 썼다. 이후 다른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일상을 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임용고시 관련 정보를 찾아보던 중 그 글에 댓글이 달렸단 알림이 떴다. 의아하게도 "국어교사"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바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출판사 측에서 『국어교사』라는 책을 읽고 글을 써주겠냐 제안하신 거였다. 친구들과 함께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그 책에서 주인공을 끊임없이 보물로 이끄는 "표지"들이 떠올랐다.

'표지인가, 정말로 국어교사가 될 거라는 표지인가, 자신감을 갖고 이대로 가 보라는 하늘 또는 신 또는 운명의 계시인가' 하는 생각이 짜릿하게 스쳐갔다. 그래서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추리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였대도 관심이 갔을 테지만 국어교사인 작가가 국어교사인 주인공을 내세워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또는 해결할지)가 궁금했다.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표지는... 감각적이면서도 섬찟했다. 특히 "국어교사인 여자가 풀어내는 어린아이를 납치해 감금한 뒤 사육하는 이야기"라는 문장이 그랬다. 그러나 띠지에 쓰여 있는 어느 교수의 평은 이 책이 마냥 잔인한 이야기가 아님을 어필(?)하려 하는 듯했다. 그래서 국어교사이자 주인공일 것으로 추정되는 일러스트 속 여성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자고 생각하며 책의 첫 장을 펼쳤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독특했다. 당연히 줄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냅다 누군가의 이메일 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엉, 뭐지? 무슨 상황인 거지? 이 이메일들을 주고 받는 이들은 누구지? 호기심이 더 강해졌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설명하자면, 의문의 메일을 주고 받았던 마틸다와 크사버는 과거 연인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헤어진 후 각자 살다가 16년만에 국어교사와 학교를 방문할 작가의 신분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둘의 태도와 기류는 묘하다. 미련 없는 이들이 오래 전 자신들의 청춘을 회고할 때 그러하듯 담담하지도 않고, 서로를 서로에게 상처를 준 이로 여겨 마냥 가시 돋친 태도(혹은 지극히 사회적인 태도)로 일관하지도 않는다. 30여 년 전 일을 얘기하는데도 둘은 무언가 들떠 있다. 그 들뜸에는 설렘, 분노, 혼란, 씁쓸함 등 다양한 감정이 배어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과거 둘의 만남과 대화와 사랑, 그리고 함께 겪었으나 다르게 느끼고 기억하는 여러 사건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특이한 점은 이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될 뿐만 아니라 16년만에 만난 두 인물이 서로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된다는 것이다. 크사버는 마틸다에게 자신의 할아버지를 주인공 삼아 쓴 소설을 들려주고, 마틸다는 크사버에게 '크사버 아들 납치 사건(실제 사건)'에 대한 자신의 추리ㅡ그리고 자신이 그의 아들을 납치해 감금한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의할 것은 국어교사와 작가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일 뿐 그것이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왜 그 이야기를 지어 서로에게 들려주는지, 그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추리하며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진짜 재미가 시작되는 포인트이자 핵심이다. 그것을 주절주절 나열하는 건 크나큰 스포일러가 될 것이니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내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틸다와 크사버 둘 다에 대해 애정과 연민의 마음이 들었는데, 책을 읽는 과정에는 마틸다에게 각별히 마음이 갔다. 그의 삶의 궤적은 나와는 전혀 닮아 있지 않지만 어쩐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머니에 의해, 연인에 의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교사로서 학생 개개인을 정성으로 돌보고 가르치는 마틸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따분하다 일갈하는 삶이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해 획득한 반복성과 안정성이기에 그는 언제까지고 '국어교사'로 불리고 싶어한다. 느리지만 꾸준히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거북이 같은 그가 지독히 안쓰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조만간 내 마음을 담아 그를 그려 볼까도 생각 중이다.

읽어 본 추리소설이 몇 편 없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감상을 비교해보려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가면산장 살인사건』, 『용의자 X의 헌신』)은 흥미진진했지만 독자로 하여금 사건과 추리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범인들의 몽타주처럼 모노톤으로 그려졌다. 당연히 그들에 대한 어떠한 애착도 없었다. 그런데 『국어교사』는 달랐다. 표면적 형식은 추리소설이지만 사실 이 소설을 어떤 장르적 규범 안에 한정시키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어교사』를 읽으면서도 추리를 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보단 인물들의 성격, 가치관, 강도 깊게 남은 경험, 대화, 분위기 등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데 더 주의를 기울였으며(그래야 '추리'를 할 수 있기도 함) 그래서 그들이 맞닥뜨린 여러 가지 사건 또한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작가의 목적과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적으로 소개, 설명할 때 '감성 힙합' 같은 용어를 따 '감성 추리'라고 말할까 한다. 다른 장르의 소설은 읽어봤지만 추리소설은 별로 읽어보지 않은 분, 추리소설을 좋아하면서 신박한 형식이나 입체적인 인물, 그들 간 서사와 감정선 등을 읽어내는 것에도 흥미와 감동을 느끼시는 분께 강력 추천한다.

국어교사를 희망하는 내게 운명처럼 찾아온 운명적 감성 추리물, 『국어교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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