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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자 ㅣ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 작가정신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조관우의 노래 <늪>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엠마누엘 베른하임의 세 번째 소설<그의 여자>에서 여자는 유부남인 - 아니 유부남이라고 자신을 밝힌 토마스 코바크를 사랑한다. 그가 비록 유부남이라고 했지만, 아니 오히려 유부남이기 때문에 그녀는 그 남자에 대해 상상할 꺼리가 훨씬 많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는 오로지 그녀에게 1시간 15분의 시간을 할애할 뿐이기 때문에 그 나머지의 시간은 그녀에게 온전한 사랑인 상상속의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녀는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의 흔적을 하나씩 모아서 책상 서랍에 간직한다. 그가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관계를 원했을 때 그녀가 반대한 유일한 이유는 콘돔마저 사용하지 않았을 때 그가 남기는 흔적이 전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상상속의 아름다운 사랑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잔소리도 없는 그녀에게 그는 결국 밝힌다. 사실 자신은 아이도 없고, 아내도 없다고.
여자는 이제 안심한다. 더 이상 그의 아내와 그가 같이 있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가 그의 아내가 될 테니까. 그가 설계한 원룸 형식으로 주방을 개조한 그 집에서 그녀는 그와 함께 살게될 것이다.
행복한 그녀에게 새로운 환자가 생겼다. 나이가 토마스와 비슷한 그 환자에게는 진짜로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의 직업은 토마스가 한 때 거짓말로 존재한다고 했던 토마스의 아내의 직업인 건축 설계사이다.
그 환자는 그녀를 보고 미소짓는다. 그는 치료비를 계산하다가 어떤 물건을 떨어뜨리고 간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간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떨어뜨린 물건을 줍는다. 그것은 성냥갑.
이제 그녀는 미소지으면서 지금까지 토마스의 흔적을 담아두었던 서랍을 열고 토마스의 흔적을 버린다. 이제 그 물건들은 소용이 없다. 같이 살게 될 것이므로. 그녀는 텅 비어버린 그 서랍속에 방금 그 환자가 떨어뜨린 성냥갑을 넣고 열쇠로 잠근다.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엠마누엘 베른하임의 소설은 놀라울 정도로 여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읽는 내가 속을 들켜버린 것처럼 느낄 정도로 적나라하게 내가 숨겨놓았던 나의 내면을 알고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순간보다 그 남자를 만나지 않은 시간동안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랑을 생각하고 그래서 남자에게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해 줄것을 바라는 마음.
아무튼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