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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ㅣ 걷는사람 시인선 39
윤석정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1월
평점 :
📚 등(p.39)
등이 가려웠다.
등이 가려울 때마다 아프지 않게 등을 쓸어내렸던 손길이 그리웠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거기쯤 당신이 고요히 앉아있다.
나무는 새가
새는 바람이
바람은 구름이
구름은 비가
비는 꽃이
꽃은 물이
그리울 때마다 등이 가려웠고 등에서 등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날 당신은 등을 두드렸고 등을 돌렸고 등을 떠밀었다.
뒤돌아보게 하는 뒤돌아봐도 볼 수 없는 당신은 아련한 등이었다.
당신이 불렀던 노래가 내 입가에 고요히 앉아 있고 내가 지나는 길목마다 밤이 등을 깔고 낄낄대다가 꺽꺽댔다.
매일 등이 가려웠다.
🙏 시 한편에 다 들어있다.
사랑,이별,그리움!
시는 참 어려운 장르다. 짧은 문장들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구겨 넣어놔서 하나하나 펴 보려면 깊이 생각해야하니까.
어떤 시집들은 뭘 그리 꼬아놓은 건지, 참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무조건 어렵게만 쓰려고 노력하듯이.
겉 멋만 잔뜩.
꼭 음정도 못맞추는 가수가 바이브레이션만 넣는? 국끓일 때 육수도 안빼고 미원만 넣는?
읽으면 읽을수록 맹탕인 시들.
어렵게 써놔야 멋져보인다고 생각들을 하는 건지..
정말 좋은시는 누구나 쉽게 끄덕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재료가 '진정성'이다.
그리고 기교는 그 다음 차례!
예전에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시(제목이 안떠오름)가 그랬고, 이해인님의 시가 그랬고, 류시화,박노해님의 시가 그랬듯이.
이번에 접한 윤석정님의 시가 그랬다.
명치 끝이 갑자기 막 아파오면서 코끝이 시렸다.
내가 '마흔'이어서일까?
내가 남편을 좋아했던 것도 <등>이었는데.
등이 넓은 사람이 좋았다. 그 넓은 등이 든든했고, 기대고 싶었었지.
등이라는 게 참 신기해. 진짜 친구도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줘야 하는 거라고.등을 돌리는 사람이 젤 무섭고 또 등이 가렵다고 긁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도 서로 애정이 없으면 불가하니까. 오죽하면 등긁이가 '효자손'이란 이름일까?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날은, 꽃은,애인은,세상은,우리는 피고 견디다 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 소중한 도서선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