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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법
정민지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울컥" 하는 일들이 요즘 자주 생긴다. 예전에는 "울컥"하는 일이 생겨도 연달아 일어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오래 안고 살지 않았다. 다음 날 되면 훌훌 털어버리고 했는데, 요즘은 "울컥" 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다 보니 털어버리 수가 없다. 슬퍼서 울컥이 아니라, 화가 나서 울컥이다. 그 울컥들이 모여 상대방을 증오하게 만들고, 머릿속에서 안 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 해야 털어버릴 수 있을지... 시간이 흘러서 "울컥" 하는 감정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울컥" 했을 경우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울컥"하는 순간들이 오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하고 나이가 같다는 이유도 있다.
저자는 작년에 퇴직했다고 한다. 전 직업은 기자... 사실 난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권력자를 위해 타자기를 두드리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전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질문을 마구 생각 없이 교양 없이 쏟아내고, 상대방의 마음 헤아리지 않고(특히 유족) 자신들의 특종을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이 기자... 하지만, 그것도 쉬운 상대방일 때 그렇고, 권력자들이라면 절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이 기자... 그런 경우도 있고, 반대로 국민이 알아야 하는 부분을 알려주는 기자 와 목숨을 걸고 권력자의 구린 부분을 파헤치는 기자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쓰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는데, 암튼 내가 생각하는 "기자"란 이렇다.
근데, 막상 저자의 글을 읽어보니 "기자"라는 직업도 힘들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여자로 살아남기가... 첫 직장에 취업했는데, 신입사원 중에 여자가 자신밖에 없었고, 어느 날 노래방에서 남자 선배가 저자를 꼭 집어 노래 부르라고 시켜서 "울컥"해 화를 냈다는 것! 직장에서의 부당한 선후배 시스템으로 갑질, 성 문제 등
그래도 저자한테 인맥은 좋았나 보다. 저자가 입사 4년 차 되던 해 회사 남자 선배에게 퇴사 얘기를 했더니 얼마 뒤 60가지 색연필 세트를 주면서 '너는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하게 살아라'하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는 선배가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남편과 자식도 있고~
그리고 판교 환풍구 사고로 친척 동생이 죽었는데, 그 사고가 언론의 관심을 가져서 기자들이 장례식장에 모여 유족 사진 찍고, 인터뷰를 했고, 그 속에 자신의 직장 후배 기자도 있었다는 것... 그 일을 자신이 겪어보니 자신의 직업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을지, 그들에게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저자가 겪은 것 중에 이야기해준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옳지 않으나 슬픈 절박함 - 처절한 몸부림 염산 먹은 사장}, {약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택시 기사 - 약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여자들에게 택시 안은 공포감을 주는 공간이어서 심각하다는 것.. 방치되어 있다는 것}
"지나고 나서 보면 아주 사소한 행동, 툭 내뱉은 말 한마디, 대충 내린 선택 따위에 인생 항로가 크게 휘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 p19
"조직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부속품처럼 대하다가도 어느샌가 정신 차리고 보면 내가 소모품처럼 쓰다 버려졌다고 느낄 때도 있다. 각성하지 않으면 비극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 " p52
"대단해 보이는 인생이라도 사실은 사소한 것들이 더 먼저다. 어떤 목표와 꿈을 갖든 일단은 현실적인 것들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나는 당장의 사소한 것들을 해치우느라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어떤 시대인지 잘 모르겠다. 사소한 문제들이 밀린 숙제처럼 늘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걸 해결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인생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그런 거야, 생각하니 평범한 내 인생이 조금 위안을 받는다." p68
"사람은 매일 조금씩 늙는 게 아니요. 10년이고 20년이고 늙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별다른 이유 없이 두 시간 만에 이십 년이나 늙어버린 걸 탓하게 된단 말이오. 두고 보면 알겠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요." -아멜리 노통브, (살인자의 건강법) p131
우선 저자가 치열하게 열심히 걸어왔다는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저자의 글을 읽어내려 갈 때마다 나 자신이 대충 내린 선택에 대해 반성과 후회를 해야 했다. 물론, 이미 떠나버린 시간들이라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책과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 안 들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