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
임태홍 지음 / 하움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그의 가문은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대표적인 무과 집안이었다.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문인으로 출세하는 길을 택한다.최한기는 23세에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된다.생원시는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을 묻는 시험으로 여기에 합격하면 선비로 인정받고 성균관에 들어가 경전을 배우면서 대과를 준비할 수 있다.그러나 그는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선비라는 말은 여러가지 뜻이 있다.조선시대에는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다.그것이 변화되어 학문을 닦는 사람,마음이 어질고 순한 사람,혹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선비라한다.니시 아마네는 1829년 이와미지방 쓰와노번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번 소속 의사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경과 사서등 유교 경전을 할아버지로 부터 배운다.12살에는 오경 읽기를 마치고 번의 양로관에서 한문을 배우면서 근사록,춘추좌씨전,국어,사기,한서등을 읽는다.무가의 아이들은 대게 칼쓰는 훈련을 받는데 니시는 학문을 접하며 유학의 허가를 받아 오사카,오카야마 등지에서 견문을 넓힌다.명치유신 이후의 일본의 변화는 니시 아마네의 학자적인 능력을 인정하여 명치 유신

직후(1868년)누마즈 군인학교 초대 교장으로 임명된다.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한다.사무라이는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아는 그런 칼잡이가 아닌 '모신다' '경호한다'는 뜻이 강하다.그리고 사무라이는 윗사람을 측근에서 모시는 자이기 때문에 일반 무사보다는 직급이 더 높다라고 보면된다.최한기는 성리학을 부정하였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친다.실학은 성리학과 완전히 다른 별종의 학문이 아니다.


실학은 기존 성리학의 핵심 철학인 이기론과 심성론,나아가 도덕 수양론을 채용하고 그 위에 실용적인 학문,즉 농학이나 고증학,지리학,과학기술 등 실용학을 추가한 학문이다.최한기는 과도기의 사상가였다.그의 사상이 전통적인 주자학과 근대적인 서구의 과학지식이 함께 융합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도기에 그가 살았기 때문이다.

 



니시 아마네의 학문적인 관심은 최한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주자학,즉 성리학에서 시작한다.니시는 영주의 명령으로 처음에는 주자학을 공부하였으나 나중에 소라이학의 매력에 이끌려 주자학을 버리고 소라이의 학문과 사상을 배운다.소라이학이란 에도시대에 오규 소라이가 구축한 학문이다.소라이는 그 이전시대 유학자인 이토 진사이와 함께 일본 고학파의 학풍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어 최한기의 기학과 니시 아마네의 양학을 비교 설명하고 니시 아마네의 학술과 종교론,최한기가 생각하는 국가와 니시 아마네가 생각하는 국가론을 살펴본다.최한기의 세계관은 도덕과 대동의 철학이라면 니시 아마네의 세계관은 생존과 전쟁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저자는 두 나라의 인물을 내세우며 비교적인 학술속에 나라의 특성들을 말하고 있다.

일본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자세는 조선의 선비가 일본의 사무라이를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