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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후의 지성 면우 곽종석
조홍근 지음 / 아우룸 / 2019년 9월
평점 :

조선 최후의 지성 면우 곽종석 성리학자,
세월이 변화 되고 이런 이름들이 사람들의 귓전에서 사라진다. 결국 뿌리가 없는 나 무는 썩어 없어진다.한나라의 흥망성쇠는 교육이 중요하다.아무리
강조해도 힘을 잃어버린 장수의 칼날같이 무디어지고 또 무디어 졌으리라.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진다.저자는 어떻게 면우 곽종석 선생을
알았을까! 성리학자였고 그의 후학들도 서양문물에 심취 되었건만
부분적이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조선 후기의 전통사회의 전형의 곽씨 집안의 유교문화를 소개하고 그 시대의 배경을 설명한다.면우 곽종석의 탄생과 성리학의 학문을
들여다본다.1903년 고종황제는 경국지세로 면우를 등용했고 짧은 시간이었으나 황제 곁에서 충언으로 국사를 진언한다.만국평화회의가 네덜란드에서
개최되고 약소국의 억울함을 그들에게 전하게 된다.
면우의 밀서와 황제의 밀지가 그곳에서 큰
작용을 하기에 이르고 조선 오백십오 년간 스물여섯 번째의 국왕 고종은 일제 하수인에 불과한 역당의 외압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자진 퇴장하고 아들
순종에게 내선하는 전고미문의 일이 자행된다.면우 또한 일제의 수사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비극적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된다.몰락한 가문의 삶은 형편 없었다.
창계공 시대로 이어지며 조선 후기의
정세가 소개되고 조선의 몰락을 예고하는 나라의 형편은 기울고 있었다.면우의 학문적인 견해와 인간적인 고뇌의
삶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거창 일원의 감악산과 갈전산등이 소개되고 있다.이처럼 그가 구국의 일념으로 혼을 쏟았으나 기울어지는 조국의 참상은 일제의
지배하에 놓이는 운명이었다.
망국의 학자로써 후학을 가르치며 주리
두글자에 일생을 신봉한 성리학자 면우 곽종석은 죽는 그날까지 자기의 직분을 마무리 하였으며 천직에 따른 천명의 수를 다한 정명이었다.일제의
만행은 망동하는 일시의 기로 머지않아 독립의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