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거룩 - 신앙의 공회전을 멈추고 거룩으로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앙의 공회전을 멈추고 거룩으로 생활 거룩은 신앙생활의 정점에서 생각해 보는 심각한 현실이다.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지났다.각종 기독교적인 비리가 판을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교회와 목회자들 사회통념상 이해가 되지않는 맹목적인 순종등, 이념의 종교인가! 현실을 구분 못하는 그들만이 아우성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무엇이 문제일까?




아직도 숫자에 연연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세습이 합법인가 불법인가를 논하는 세상의 기성종교와 다를바 없이 흘러가는 오염천국이다.130년의 기독교 역사는 무엇이었나! 거룩을 빙자한 목회자와 구원을 안주거리로 삼는 성도들은 어느 교회나 있다.저자가 주장하는 이야기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 많이 보인다.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구원론을 근거로 한국 교회의 천박한 믿음,그렇게 생각하면 속죄표를 팔던 중세시대 때와 무슨 차이가 있나! 오직 믿기만 하면 과거와 현재,미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이 완성된다는 이ㄷ러한 구원론은 개혁파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파적인 것에 성도들의 선행은 구원을 이루는 성화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직 천국에서 상급을 받는 데에만 관계가 있을뿐 (본문 p 17~)




결국은 종교통합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개신교와 로마가톨릭이 닮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예를 들어 설명한다.뻔하다라는 말이 신자들이 받는 최고의 욕으로 등장했다.선한 사람들은 크리스천 같고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들 같다.는 비아냥은 혼자 믿음 있는 척 행세에서 기인된 말이다.성화는 현재형 구원을 말한다.레위기 19장 2절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이 명하시는 거룩은 순결,정결,성결이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이것이 현재형 구원이다.한국교회는 과거형 구원에 대해서는 바르게 가르쳤으나 그 구원을 현재에서 완성시키려는 노력, 즉 신앙인의 인격 형성과 성화 교육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한다.신앙의 공회전은 교인들끼리가 아닌 세상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기독교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열쇠 구멍이다."

최초의 미국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한 것처럼 내가 좋아야 교회도 좋고 하나님도 좋다는 것이다.저자는 야곱의 삶을 예로 들면서 야곱이 성화되는 데 130년이나 걸린 것처럼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생애동안 평균 6000번 이상 설교를 듣고 18만 8000번 이상 기도하고 12만 번 이상 찬송을 부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소개하고 전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설교와 성화 들은 것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과연 힘든 것일까?

설교를 은혜로 지식으로 밀어 버리고 실천없이 살아간다.이런 신앙의 공회전,기도의 공회전,성경공부의 공회전은 한발짝도 신앙의 발전이 없다.누구를 위한 성화인가! 소리만 요란한 공회전은 이제 그만 멈출 때이다.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실체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앙이다.가짜들을 위한 진짜가 되지 말아야한다.진짜를 위한 진짜 성도가 되야한다. 본성이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저자는 이미 구원과 아직 성화 사이에 있는 크리스천 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나이롱을 벗고 진짜 성도가 되라고 말한다.이전에 우리 교회 새벽기도 때만 나와서 열심 기도하는 집사님?이 계셨다.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에 목사님이 사연을 물었다.포목점을 운영하였는데 자녀가 아파서 급히 팔아야 하는데 팔리지 않는다고 호소를 하였다.

회의를 거쳐 A권사님이 인수를 맡아 해보기로 하여 계약을 하였다.그런데 문제는 그 뒤 이중 계약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눈물로 기도하던 그분이 우리교회를 떠났을 때였다.연락처 전화도 받지 않았다.그렇다.사기를 당한 것이다.바울은 로마서 전체에서 구원을 두 과정으로 분류한다.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장차 이루어질 구원 즉 이미(already)와 아직(not-yet)이다. 구원은 이미에 속한다.

구원은 죽은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이미 이뤄진다. (본문 90p~) 그럴 수도 있겠다.홍해와 요단강 사이 적절한 비유인것 같다. 아무리 좋은 설교,좋은 찬양을 들으면 뭐하냐 내가 변하지 않는데 기독교의 구원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보험상품이 결코 아니다.우리의 선조들은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위해 목숨까지 마다하지 않았다.좋은 것은 언제나 그 댓가를 치러야한다.

그렇기에 구원은 믿음으로 성화는 자기부인,자기희생이라는 대가로 가능하다.바른 행동을 심어야 성화가 나타난다.이 책을 읽을수록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상놈이 양반 흉내낸다고 양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생활의 삶은 내가 변해야된다. 쉬운 것부터 하자. 말투,얼굴 표정, 상대를 대하는 태도부터 바꾸어보자.신앙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예배가 되며 삶이 전도가 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