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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 에세이 장자 전집 - 전7권 ㅣ 고형렬 에세이 장자 전집 - 전7권
고형렬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고형렬 에세이 장자 6 진인은 없다.사생의 반복적인 사건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줄을 정하기 나름이지만 장자는 자연외에 다른 자연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이렇다고 정할뿐 자연에게는 저승과 사후가 없다. 삶과 죽음의 무수한 굴레속에서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우매한 일이 아닌가한다.
아무리 나약하지만 자연이 만들어가는 모습은 인간의 우둔함에 비교할 수가 없다.하늘이 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지극하다.즉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대단한 경지에 이르는세월이 필요하다.장자의 회심의 대종사에서 이 첫 번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는 장자의 심정은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왔을지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진인은 없네,죽음도 없네,삶도 없네, 이런 초월적인 사생을 볼라치면 대종사 이전에는 재미있는 글이 없었다고 한다.커다란 칼을 들고 높은 말을 타고 달리는 성인 군주가 아닌 내재적 초월의 사유를 멈출 수 없었을 장자.지금도 그길을 그 끝없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권력과 체제,재물과 편리가 그들의 삶과 국 가의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자는 그런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청천 하늘 아래
허기진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장자는 두가지의 권력 즉 신과 영원성을 부정하거나 사양한 사람으로서 처제와 우상으로부터 해방되는 참된 인간형을 대종사에 높이 기리고 있다.그래서 인간의 시작이 자연과 함께 시작한다는 대전재를 두고 시작한다.하늘을 닮아가는 사람과 닮지 않은 사람,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인가! 비가오지 않아 재물을 드려 하늘에
기우제를 드리는 하느님을 자연에 비유한 자연을 몰랐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그렇듯 장자에게 진인은 진지의 주인이다.진인은 어떤 체제 속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지보다 진인이 먼저이다. 깨우쳐서 알고 있는 사람이 그 깨우친 앎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장자는 그 최초의 진인을 고진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깨닫는 것은 여러 방법으로 진행되겠지만 스스스로가 깨우쳐
깨달아지는 것은 힘들다.글로서 표현하는 장자의 모습이 앎을 보여주는 기쁨이 아닐까한다.벽을 쌓아가는 것과 그벽을 허무는 것 영혼의 초조함보다 더하다.소유욕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작은 즐거움에도 기뻐하고 자기 성취를 자랑하지 말고 어떤 일도 모사하지 않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권력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범부이기를 힘쓰야한다.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은 장자에게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 무극 창망한 우주란 것은 귀신이라곤 하나도 없는 맑고 투명한 만유의 하늘일 따름이다.결국 천지의 대로에서 장자의 만물주조 사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람이 흙을 파먹고 살며 사람의 몸속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처럼 기이한 일도 없을 것이다.천지가 만물을 창조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가마였다.그 크기가 천지와 같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은 진리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진리가 반드시 악을 이겨내는 것도 아닐 것이다.기수도 홍수가 나면 맑은 물은 간 곳 없고 웬 흙탕물이 흘러갈 것이다.죽음과 삶과,앞과 뒤가 있음을,변별하겠는가! 우리가 향해가는 미래가 머나먼 과거이고 우리가 지나온 과거는 돌아갈수 없는 미래일까.이상하게도 우리는 돌아가고 있는 중인 것만 같다.
어떤 경우에도 아무런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 우주적 소요를 즐기는 자가 대종사라는 것을 이미 이곳의 장자는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의이자는 사람을 옥죄는 사상에 대항하는 부정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자아가 가장 높은 우주의 경지를 소요하길 바라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허유를 보았을 것이다.
생이 없으면 죽음을 볼 수 없고 죽음이 없으면 죽음의 도가 없다. 사생은 서로 무여친이고 상망이지만 하나의 끈이다.죽음의 도는 끝이없고 삶의 이야기도 끝이없다.삶과 죽음은 끊어질 수 없는 핏줄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