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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
백금남 지음 / 무한 / 2019년 4월
평점 :
십우도는 불교에서 자신을 찾기위해
몸부림치는 자아를 수련하는 모습을 소설형식으로 꾸민 글이다.백정(흰고무래)이 되고 싶어서 된사람은
없다 하지만 계급사회에서는 양반과 상놈이 구분이 되고 그 중 제일 하급에 속하는 부류가 오늘 소설에 등장하는 소잡는
사람이다.도수장이
있는 천궁이란 동네에 모여 사는 그들은 다양한 사연으로 모여든다
우시장에서 거간과 도살을 업으로 살고있다
그들 중 산우의 고조부는 유명한 칼잡이중의 하나로 이곳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소설이다.여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를 찾아가는
십우도를 비교하며 소설의 재미를 더하고있다 백정의 기술은 단 한번에 소를 잡아야 하는데 그 기술을 연마하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산우는
할아버지에게서 흰고무래 기술을 배운다

시작은 산우의 소잡는 순간부터 소설은
시작되고 소를 잡다 실수로 소를 놓치게 되고 그 소를 추격하면서 산우의 가족과 과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가 더해지면서 시대적
배경 주인공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하고 있다.그들은 소를 잡을때 어떤 감정으로일까?
촛대를 잡고 소의 정수리에 꽂는 순간
온갖 세상의 비난과 수치와 수모가 한곳에서 파괴되는 어쩌면 완전몰입의 무아지경이 아닐까! 천대받는 흰고무래의 삶을 좋아하는 이가 있겠는가 외모와
신분의 겉모습이 인간의 본 모습이 아닐진데 십우도는 신분을 앞장세운 그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비단 천궁골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냐마는 소설의 전개는 촛대와 신팽이를 든 산우를 조명하고 있다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소를 찾아헤매는
십우도의 첫번째 단계 심우를 시작으로 소의 자취를 보는 견적,소를 발견하는 견우단계를 거치면서 소를 얻게되는 득우에 이른다 비록 소설 형식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으나 어쩌면 불교에서 자기수련을 통한 득도 완전한 자아를 발견하는 수련의 괴정을 펼치고 있다 십우도의 다섯단계인 소를 길들이는
목우,
자신을 다스리는 단계를 산우와 노승
야누끼를 통해 보여준다 소를 타고깨달음의 세계로 돌아오는 기우귀가,소를
잊고도 안심하는 망우존인 단계 사람도 소도 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인우구망을 보여준다.소설은 절정에 다다르고 천궁골로 돌아오는
산우를 보여준다 소를 잡던 흰고무래였던 그가 소를 몰고 천궁골로 본연의 세계를 깨닫는 반본환원의 모습을 본다
촛대를 잡고 소의 정수리를 치던 산우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삶의 엄청난 투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자신을 소처럼 내몰아 던져버린 자아는 아닌지 뒤돌아볼 수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대단한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영혼이 나쁜 사람은 없다 거친 세류에
부딪 치며 살다보면 산우도 될 수있고 골피도 되고 야누끼도 된다 불교에서 논하는 윤회적 삶의 인간구조를 십우도와 천궁골의 삶들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