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도 독도 시리즈 2
호사카 유지.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지음 / 책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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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교수는 한일관계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그는 한일관계의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고 있다.이 책은 그의 활동을 검정하는 책이며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것의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으로 볼 수 있다.1부와 2부로 나누어서 보여준다.조선의 고문헌을 참고하여 역사적인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사실 일본인 교수가 한국의 독도를 소개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은 독도의 명칭을 우산도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일본은 울릉도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한다.울릉도는 국토의 막내이며 사연이 많은 곳이다. 울릉도는 512년(지증왕 13) 때 이사부 장군에 의하여 신라에 귀속되었다.그 당시 울릉도를 우산국()이라 불렀으며, 우해왕()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다. 


 

독도는 메이지 초기 일본인이 울릉도 도항을 개시한 즈음에 일본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 같다.일본은 석도란 울릉도 북동쪽에 있는 관음도라고 주장하지만 관음도는 깍새섬이나 도항이라는 명칭을 따로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석도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이렇게 하여 대한제국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관보에 실어 석도 즉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선포했다.

 

 

메이지 정부 공문서에는 다케시마(울릉도)마쓰시마(독도)가 조선의 부속이 된 전말을 이책에서 말하고 있다.1870년에 외무성 관리 사다 하쿠보 등이 쓴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에 수록되어 있는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조선의 부속이 된 전말이다.메이지 정부가 출범할 당시 흥선 대원군이 이끄는 조선은 메이지 정부에서 보낸 외교문서수령을 거부했다.새로운 메이지 출범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도시대의 고문서 가운데는 독도인 마쓰시마에대한 언급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 고문서에는 17세기 말과 1830년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사다 하쿠보 등은 그런 고문서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문서에 나타난 마쓰시마에 대해 현재 일본 학자들은 이것이 무슨 섬인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다만 독도일 가능성이 없다는 식으로 회피성 언급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고 영국처럼 해양을 중요시 여기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와 송도라고 부르며 자주 건너와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였다. 이에 조정은 1881년(고종 18)과 1882년(고종 19)에 일본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1882년에는 이규원 감찰사가 울릉도를 감찰하고 개척령이 선포되었다. 이후 이민이 시작되어 울릉도에 공식적으로 주민들이 살게 된 것이다. 

 


 

 


다양한 문서들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독도는 이리저리로 돌려가면서 이나라 저나라로 잊을만 하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는 영토의 문제로 국민들은 속타하는데 정부의 무능한 정치관례로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왔다.일본 국회 내의 독도 논쟁도 수상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정치 논쟁 속에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왔다.그러나 이제는 분명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한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상 독도는 한국 영토로 결론이 났다.미국의 견해는 합의가 없는 미국만의 견해라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덜레스도 인정한 사실이다.한국이 독도를 지배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은 한일 국교 정상화 때 한일회담에서 독도 문제를 토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때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데서 법적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러나 한국 정부는 독도가 분쟁지역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못박기 위해 일본 측 독도 영유 논리에 대해서 는 정확히 분석하여 비판과 극복을 요약해 항상 대외적으로 정확히 발신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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