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페인팅 Final Painting - 화가 생애 마지막 그림을 그리다
파트릭 데 링크 지음, 장주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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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화가와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우리는 작품을 보고 화가를 기억하고 후대에 남겨진 사료들을 통해 화가가 살았던 예술의 삶을 그려보곤 하는데, 책이 들려주는 뜻밖의 이야기들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 책은 화가들의 마지막 순간을 조명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마지막은 찾아온다. 유구한 미술사의 거장으로 거론되는 화가들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했으며, 그 마지막 세계가 담긴 작품들은 어땠을지,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라는 점이 이 책의 두드러진 매력이었다.

 

명화를 선명하고 크게 담아낸 만큼 사이즈도 크고 부피와 무게도 제법 나가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몇 날 며칠 손에 들고 다니며 짬이 나는 대로 펼쳤다. 책을 열 때마다 만나게 되는 그들의 마지막 예술의 세계는 아득한 전설의 보고였으며, 세상에 남겨진 소중한 기록이었기에 더욱 관심과 애착이 갔다.

 

유독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했던 어느 벨기에 화가의 장례식은 차원에서 대대적인 헌정행사가 됐으며 시 전체가 그의 죽음을 오랜 기간 애도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에서도 화가로 추측되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신분이 높은 신사로 표현한 것은 꽤나 인상적이다.

 

결핵성 수막염으로 35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어느 화가의 죽음은 그의 아이를 가진 만삭의 애인과 아이까지 그의 죽음을 뒤따르게 만들었다. 생전 금전적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은 작고 후에 거짓말처럼 지나치게 비싸져서 많은 위조품들까지 생겨나게 됐다.

 

이례적으로 90년이 넘는 삶을 살다 간 거장 중의 거장은 나이가 80, 90대였던 말년에 강박적으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그 작품들이 지금은 미술계를 대표할 만한 표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예술 활동은 높은 가치가 있다.

 

출생과 사망, 혼인 여부와 자녀의 유무까지 상세히 기록된 이 책을 읽어보니, 각 화가들이 살아온 인생과 환경이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이들의 마지막 삶의 모습은 당연히 모두 달랐고 건강 상태와 감정, 심리, 그리고 가까운 주변인들과의 관계까지 천차만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공통된 점이 존재했다. 현재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 위대한 화가들은 모두 숨이 다 하는 순간까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불태운 예술혼이 오랜 세월에도 꺼지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각한 신체적 질병을 앓으면서도 양손에 반창고를 두르고 다른 양손을 서로 지탱해가며 끝까지 그림을 그린 르누아르의 이야기나 그림을 그리다가 죽고 싶다고 했던 세잔이 야외에서 심한 뇌우를 만나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일화는 마치 그 사실을 운명적으로 입증해주는 뒷받침이 되어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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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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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문학계에 쏟아지고 있는 신예들의 작품들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 책과 같이 글 한 줄 한 줄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일은 드물었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 팔에 꽤 여러 차례나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 박완서에게 대문호라는 수식어를 꼭 붙이고 싶다. 그녀의 문학을 국보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보전해야할 필요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과한 찬양일 수는 있으나 박완서의 글을 한 번이라도 마음을 다해 집중해서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한 예찬론을 펼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호미>는 작가가 60대 후반부터 70대 전반까지 삶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간들에 주변의 환경과 소소한 일상을 녹여 일기처럼 편안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다. 특정한 형식은 없지만 담담한 문체이면서도 마치 특별한 의미가 담긴 듯 생생한 온기가 전해진다.

출판사는 작가가 생전 좋아했던 백일홍이 피는 초여름 시기에 맞추어 출간했다고 하여 백일홍 에디션이라 명명했는데, 초판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인 2007년이고 이후 맏딸 호원숙 작가의 손길이 닿은 그림을 첨부한 개정판이 2014년에 출간된 데 이어 3판으로 찍어낸 분홍색 표지의 백일홍 에디션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작가가 노년에 기거했다는 아치울 노란집에 작은 정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애정을 가지고 돌보았던 주변의 흙과 자연, 그리고 자신의 소박한 삶에 대한 내용이 이 산문집의 주를 이루는데 특히 별 것 아닌 도구 같아도 마당을 가꾸는데 요긴하게 쓰였던 호미를 표제로 내 건 데에는 아마도 호미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애정을 부각시킨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와 소설 <엄마의 말뚝>에도 등장하는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도 실려 있다. 나에게 딸은 없지만 사랑하는 엄마가 있는 딸의 입장으로서 나는 특히 그 부분이 크게 와 닿았고 감명 깊었다.

박수근 화백과 박완서 작가와의 인연은 익히 알고 있다. 작가는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을 다녀오면서 과욕스럽지 않고 겸손한 양구군수 덕에 훌륭한 문화의 고장, 박수근의 고장이 된 양구를 복이 있다고 표현했고, 양구가 휴전 후 휴전선 이남 땅이 된 것도 우리 모두의 복이자 박수근의 복이라 했다. 사후에 복 많은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니 고인(박수근)도 기분이 좋을 거라고 했는데 같은 이치에 대입해보자면, 작가 박완서를 존경하는 나 같은 사람들과 박완서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녀 역시 무척이나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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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없는 맛집 한국인의 소울 푸드 맛집 1
안병익 지음 / 이가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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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간판 없는 밥집리스트를 먼저 훑어봤는데 먹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나지만 이제껏 뭘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본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렇게 허탈감을 안고 읽기 시작한 책 속에는 온갖 미식의 세계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책을 읽고난 후 가장 먼저 가게 될 식당이 어디일까 하는 행복한 궁금증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먹는 쪽으로는 편식이 없는 나이기에 특정한 메뉴를 고르는 것이 불가할 정도로 내로라하는 한식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졌다. 국밥, 찌개, 고기 구이, 생선, 족발, 보쌈, 면요리 등 메뉴 소개와 식당 소개에 빠져들다보면 공복으로는 집중력이 흐려지는 단점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코 손에서 놓을 수는 없는 콘텐츠다.


책에서는 한국인들의 소울푸드밥심의 원동력으로 대표되는 밥집들, 그 중에서도 화려한 간판 없이도 오랜 세월 미식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노포 위주의 소개가 나열된다. 한국푸드테크협회장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안병익 대표는 식신이라는 맛집 정보 앱을 운영하고 있어 이미 식문화 쪽으로는 유명인이기도 했다. 세월을 동반자로 맛집 골목을 묵묵히 지켜온 노포들의 특징을 소개해 주면서 식신 회원들의 경험담도 짤막하게 실어 신빙성을 더했다.


정말 맛있는 밥 한 끼는 단지 식사로서 허기를 채워준다는 개념을 넘어 미각을 풍요롭게 해 줌으로써 영혼의 허기까지도 채워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많은 대화 주제 중에서도 굳이 식사 하셨어요?’, ‘언제 밥 한 번 먹자.’ 식으로 을 매개로 한 다양한 안부를 주고 받는 우리나라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환대할 책이 아닐까 한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앞서 언급한 식신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엮었기 때문에 위치 상 식당의 분포도가 균등하진 않고 주로 서울에 편중되어 있어서 전국 각지의 맛집 정보를 골고루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 책이 주는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독자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에겐 어디에서’, ‘무엇을먹느냐 보다는 누구와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라서, 이 책 속의 노포를 누구와함께 가게 될 지가 더욱 기대되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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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 오사카 게이키치 미스터리 소설선
오사카 게이키치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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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행복한 기분에 비해 무섭고 공포스러운 감정은 분명 불쾌한데 대부분 사람들의 내면에는 그것을 즐기려는 심리가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고 만들어내고 다양하게 전파되는 양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침입자>20세기 초의 프로파일러 추리소설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일본 작가 오사카 게이키치는 1932년 추리소설들이 실린 잡지로 데뷔하고 이후 일관된 길을 걸으면서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논리적인 전개로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와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에 이어 정통 추리소설을 계승했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신문 기사에 실릴 법한 현실적인 소재들을 다루어 더욱 실감이 나고 미스터리한 상황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사건의 전말을 명쾌하게 해결해준다는 면에서 그는 이미 시대를 앞선 탁월한 프로 파일러나 다름 없다. 태평양 전쟁에 징집되어 33세의 나이에 병사했다고 전해지는 안타까운 요절의 사연만 아니면 오사카 게이키치의 명성은 아마도 21세기까지도 충분히 맥을 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후지산의 한 별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침입자>를 포함 8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담고 있다. 단편답게 각 소설은 짧은 페이지 안에서도 많은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이 그 당시 사회 풍토에 비추어 어떤 평가와 주목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세련된 문체와 신속한 흐름이 주는 이야기의 완성도를 단지 21세기를 살고 있는 번역가들의 공으로 돌리기에는 작품들이 몹시 치밀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단편이라 가벼우면서도 읽는 동안 분명한 긴장감과 스릴, 그리고 쾌감을 전달해주는 정통 추리소설의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고 일본이라는 배경지가 주는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는 소설로의 몰입감을 도와주는 데 감칠맛 나는 조미료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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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아름다운 마을들 - 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
김달권 지음 / 렛츠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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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프랑스가 아름다운 나라로 손꼽힌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프랑스의 여러 지역 중에서 작가가 임의대로 선정한 몇몇 마을들을 소개해주는 내용인줄로만 알았다.

아름답다는 사실이 맞긴 하나 프랑스의 아름다운 마을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선정하는 지역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농으로 인한 심각한 과소문제를 앓고 있던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활성화시키고 개선할 목적으로 1982년 아름다운 마을 협회를 공식 발족했고, 결코 쉽지 않은 여러 단계의 까다로운 심사 과정 거쳐 매년 아름다운 마을을 선정하여 라벨을 수여한다. 공식 인증 라벨을 받은 마을은 아름다운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가 대표나 마찬가지로서 홍보를 통한 이익을 누릴 권리를 함께 부여 받고, 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아름다운 마을 협회다.

아름다운 마을의 선정 조건 중 하나인 ‘2천 명이내의 소수 주민들은 아름다운 마을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그로인해 더욱 아름다워지는 작은 마을을 구석구석 마음껏 여행하는 것은 관광객들의 특권이니 마을은 날로 아름답게 가꿔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이 마을들을 하나씩 소개해주면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위치별로 북서부와 남서부로 나누어 약 30여개 마을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소개해 주는데, 이와 더불어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을 곳곳의 사진을 감상하는 재미가 골고루 담겨 있다.

시인 중의 왕, 롱사르가 자주 산책하던 라바흐당, 고양이에 관한 특이한 전설을 간직한 붉은 벽돌 마을 꼴롱주 라후주, 유명한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가 유독 좋아했던 가흐질레스 덩피에흐, 사흐트강을 따라 한여름 밤을 수놓는 음악선율을 선사하는 생세느리 르젤레,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연상시키는 돔므, 종교전쟁 중에 일어난 훈훈한 일화를 가진 몽빠지흐...책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가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고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아름다운 프랑스, 현지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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