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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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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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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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정겨운 새소리가 울리는 울창한 숲 속에서 눈을 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예약해둔 아침 기상 프로그램에 맞추어 집 컴퓨터(house computer)가 가동되어 운치 있는 ‘숲 속의 정경’ 프로그램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입한 미국의 글로브컴사의 가정용 3D 홀로그램 프로그램을 구입한 건 잘 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돌쇠가 차려놓은 아침식사를 했다. 돌쇠는 내가 지어준 우리 집의 가정용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의 이름이다. 아침식사를 하며 식탁의 홀로그램을 이용하여 오늘 뉴스를 보던 중 70년 전 오늘이 바로 21세기 최대 참사로 기억되는 인도, 파키스탄 핵전쟁이 발발한 날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6년 카슈미르 분쟁이 증폭되어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은 17기의 핵폭탄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특히 뉴델리와 이슬라마바드 등의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양국에서 모두 약 6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대학시절 배운바가 있었다.


갑자기 얼마 전 업그레이드를 마친 가상체험기가 생각나 급히 식사를 마치고 가상체험에 들어갔다. 네트와 접속한 후 2016년 6월 6일 핵폭탄이 터진 직후로 가상체험 시간대를 맞추고 인도의 뉴델리로 가보았다. 폭심에서 1.5km정도 떨어진 도심을 거닐었는데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끔찍한 화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위로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들이 흩날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30분정도 가상체험을 끝내고 나왔을 때도 현실과 70년 전 뉴델리의 구분이 힘들었다. 하긴 요즘 가상체험 프로그램은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현실과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잔혹한 핵전쟁을 가상체험으로 경험하고 난 후 집 컴퓨터가 예약해 놓은 대로 샤워를 했다. 오늘은 서울과 멕시코의 오악사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 때문에 멕시코로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대기권 밖에서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보며 휴가를 즐기는 우주호텔로 쉽고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관광객을 보낼 수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는 2085년 완성을 목표로 세계 30여 개국의 각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난 서울지역의 프로젝트 팀의 팀원인데 우리 팀은 멕시코 팀과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자동차로 자동화 하이퍼링크를 이용해 100km 떨어진 파라볼라 여객기 전용공항에 3분 만에 도착하고 수직이착륙 대륙간 파라볼라 여객기를 타고 서울에서 멕시코까지 1시간 만에 도착했다. 1시간동안 손목에 차고 있는 컴퓨터(실제로 컴퓨터의 개념이 아니라 광대역 유비쿼터스이다)로 프로젝트에 관한 사항들을 체크하고 오악사카에서 멕시코 측 담당자와 우주엘리베이터의 기술상 문제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은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오후 1시쯤 되었다.


오늘 점심은 부모님과 약속이 있었다. 서울근교의 한 한정식 집에서 갈비를 먹으려 했지만 손목의 컴퓨터가 식당의 주방 컴퓨터에서 정보를 받아 오늘 갈비에는 내 몸의 유전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있다는 경고를 보내와서 닭백숙으로 메뉴를 바꾸었다. 그것도 첫 맛은 소갈비 맛이고 끝 맛은 닭고기 맛이 나는 이종교배된 고기로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간 식당은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이 접대를 해주는 곳이어서 더욱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중대화는 주로 얼마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2036년에 시작된 대혼란기에 사회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받은 스트레스로 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워낙 경제사정이 어려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셨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60살이 넘어선 노년기에 간이 나빠질 것이라는 유전자 정보를 어렸을 때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전자 암호로 이미 몇 년 전 국립중앙신체은행에 아버지의 간을 복제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간이 나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유전자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50년경 개발된 유전자치료를 받았었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신체은행에 간을 보관할 필요는 없다.

식사 후 난 테니스 동호회의 사람들과 테니스를 즐기고 그들과 저녁식사까지 하고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와 가상체험기에서 생명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HR5587A 항성을 돌고 있는 유사지구를 탐사했다. 내 생각엔 유사지구에는 확실히 생명체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기술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몇 십년 안에 그곳의 생명체와 교류가 가능할 것이다.


오늘 하루는 꽤 바빴던 것 같다. 그만 글을 줄여야 겠다. 내일도 희망찬 하루가 되기를 빌며…….


                                                                  2086년 6월 6일 』




위의 글은 “가상역사 21세기”를 읽고 2080년대를 살고 있는 삼십대 초반 직장인의 일기 를 가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책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형식을 고민하던 중 나도 한번 가상으로 미래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기를 써보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먼저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황당함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프롤로그가 2112년 3월에 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이미 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온 역사의 큰 줄기를 바탕으로 하고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과학에 이르는 방대한 인류문화의 현주소를 이해한다면 누구든 실현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고 각각의 개인이 생각하는 그 미래의 모습에서 공통된 부분들이 분명 존재 할 것이다. 물론 ‘가상역사 21세기’에서도 객관적으로 미래에 있을 법한 생명공학의 진보, 핵전쟁, 전 세계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대혼란 그리고 21세기말에 보여지는 네트워크화된 인간생활과 우주정책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내용에 푹 빠져 있었다. 21세기말에는 현대의 각 가정에 컴퓨터와 TV가 필수품이 듯이 가상체험기가 대부분 가정에 보급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가상체험기는 인간에게 현실과 거의 구분하기 힘든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실상 나에겐 이 책이 가상체험기 역할을 했다. 책을 통해 2005년을 살고 있는 내가 21세기 전반을 넘나드는 가상체험을 했고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2100년대를 살고 있었다.


작가는 21세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단순히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 생명공학, 핵전쟁, 대혼란, 재편된 세계질서, 네트화된 사회, 우주와 환경이라는 굵직한 카테로리 속에는 사건에 흥미를 더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상인물들(영웅도 있지만 시대에 크게 부각되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이 더 많았다)의 인터뷰와 자서전내용 그리고 가상의 뉴스와 가상의 통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들 사건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내용 구성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특히 2016년 핵전쟁에서 영웅이 된 인도의 의사 쿠르마 박사의 이야기나 2043년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인 베니타에 대한 내용에서는 작가의 뛰어난 글 솜씨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분명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여러면에서 비판 할 수 있고 이의를 제기 할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나 한국이 중국의 경제구도 속에서 일본을 추월한다는 내용 그리고 에너지 문제도 핵융합발전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중동에는 영구적인 평화가 또 유전자 맞춤형 아기가 현실화 된다는 미래상은 내 개인적인 관점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래의 100년을 이렇듯 흥미롭게 서술해 놓은 책에 분석적인 비판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접어버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냥 책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과학적 지식 또한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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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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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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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터넷 강국이다. 초고속 인터넷 연결망이 각 가정과 사회전반에 연결되어 이를 바탕으로 가상공간을 통한 다양한 인간관계, 이득창출 그리고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근래에 네티즌 사이에 속칭 '싸이질'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한 인터넷회사가 만든 싸이월드라는 사이트는 개인이 가입하여 자신만의 미니홈페이지를 꾸미고 서로의 홈을 방문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가상공간 속에서 맺어간다. 사용자들은 매일 자신의 방명록을 확인하며 방문자들을 다시 찾아가 글을 남기면서 가상적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많은 사진과 다양한 글을 올림으로써 인기도를 높이려 노력한다. 재밌는 것은 이 싸이월드라는 가상공간에서 꾸며지는 미니홈이 그 형식에 있어서는 가입자 모두에게 똑같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미니룸과 구별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각각 미니룸을 꾸미는 사람이 다르듯이 사진첩의 사진이 다르고 게시판의 글이 다르고 미니룸의 색상과 각종 아바타물이 타인과 구별된다는 것 밖에 구조적인 형식은 모든 사용자들에게 동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트의 미니룸에 올라가는 사진은 사용자의 모습을 원본으로 하여 사진기로 자기 자신의 원본을 복제한 사진을 다시 복제하여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올리게 되는데 실제 싸이월드라는 가상공간을 이루는 것들은 사진을 비롯하여 복제의 복제품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시뮬라크르'이다. 그리고 이런 시뮬라크르를 구성하는 즉 복제의 복제를 새로운 형식의 틀에 짜 맞추어 엄청난 개수의 미니룸을 관리하는 사이트 자체의 구조를 '시뮬라시옹'이라 할 수 있겠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이 두 단어가 가지는 다양한 미학적 철학적 의미들과 그에 따른 해석이 탈근대 미학을 소개하는 미학 오디세이 3을 이루는 거대한 테마이다.


미학 오디세이 3은 이전에 출판되었던 미학 오디세이 1,2권에 연결되어 현대의 탈근대 미학을 해석하는 미학 오디세이 최종편이다. 1권과 2권이 인류역사시대 이전부터 근대까지의 미학적 여행이었다면 3권은 지금 현대의 미학을 정의하고 있다. 중세까지 예술의 역할이 현실의 재현과 재인식을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이후 근대까지의 미학은 인간중심의 예술과 다양한 형태로 진리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의 거대한 담론인 가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은 아직도 확실히 정의되고 있지 않지만 예술이라는 가상의 놀이에서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한다는 일차적인 미학의 개념을 현대에서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존에 생각하던 가상과 현실의 관계는 근래에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근대 미학이 의미 있는 것은 시대의 사조에 맞추어 다양한 인간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예술가 나름의 방법으로 진리추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현대에 들어서서는 이전의 예술보다 훨씬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졌다. 이는 회화나 조각 등의 제한된 예술양식이 대부분이었던 예전보다 다양한 표현매체가 발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현실을 재현하든 아니면 진리를 추구하든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형식적인 도구의 진일보는 그만큼 예술작품의 해석에 따르는 어려움을 동반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 중 가장 먼저 예술계를 강타한 것이 사진기술이다. 사진은 고전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던 회화를 몰락시켰다. 회화는 더 이상 사진만큼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없다. 사진 외에도 고전적인 예술 형식을 파괴시킨 많은 미디어매체와 도구들은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기존의 체계들이 전복되고 새로운 문명과 그에 따른 진보적인 기계들,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사상들은 20세기 초 예술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 작가들은 급속한 변화에 의해 사라져가고 또 새롭게 다가오며 다시 또 다른 새로움으로 쉴 새 없이 바뀌는 현실을 '절대주의'라는 작품세계로 표현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시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고....... 현실세계의 이러한 반복에서 그들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말레비치의 그림을 보라. 거기엔 흰 바탕에 검은 십자가 아니면 검은 원, 검은 사각형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현대의 세계는 그렇게 비가시적인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절대주의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뉴먼의 작품과 연결된다. 캠퍼스에 오직 단색의 바탕색과 수직의 선하나....... 언뜻 보기에 그냥 수직선 하나지만 이 선은 절대주의적 상징인 신과 땅위에 발을 대고 서있는 하찮은 인간과의 조우를 가능케 하는 사다리이다. 즉 인간이 신과 교접할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천상이 계단이다. 수직의 선 하나만이 존재하는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이렇게 신까지 모셔와야하는 것이 바로 현대 예술의 특징이다. 현대를 더 이상 예술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시대로 해석한다면 블랙홀과 같이 모든 것을 흡수하는 절대주의나 혹은 뉴먼의 새로운 숭고미학은 탈근대 미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의 판화가 피라네시가 표현했던 상상속의 감옥과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건축물을 나타낸 판화에서 작금의 가상 사이버세상이 오버랩 되는 것은 그만큼 피라네시의 표현력과 직관력이 날카로 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교묘한 트릭을 통한 피라네시의 판화 속 건축물들은 2차원적인 평면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 3차원의 현실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건축구조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원형의 교란은 바로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의 감옥에서 시뮬라크르로 채워진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블랙홀과 같은 절대주의적 표현방법과 단순한 수직선으로 숭고미를 표현한 뉴먼은 그나마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예술가들이다.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 있다. 공장에서 방금 생산된 변기 하나를 전시실에 옮겨다 놓은 작품이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그냥 종이상자 너덧 개를 전시실에 쌓아 올려놓은 작품이다. 시뮬라크르로 뒤덮인 이 세상의 현실을 뒤샹과 워홀은 말레비치나 뉴먼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증언한다.


현대사회는 고도의 물질문명을 기반으로한 기술복제사회이다. 미디어의 폭발적인 발전과 보급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창조해기에 이르렀다. 대량복제가 가능해지고 미디어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세상은 복제의 복제인 시뮬라크르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시뮬라크르의 세상에서 예술이 가야 할 길은 더욱 험난해졌고 예술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말레비치나 뉴먼보다 뒤샹과 워홀의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한 복제의 복제품인 시뮬라크로로 현실을 표현했던 뒤샹과 워홀의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이제 더 이상의 예술 행위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근대예술의 종언을 헤겔이 선언한바 있었지만 이를 비웃듯이 20세기 초 많은 예술가들은 다양한 차이의 미학으로 예술의 지평을 열었었다. 하지만 가상이 더 이상 현실의 재현이 아닌 나아가 현실이 가상을 재현하는 지금 예술은 워홀과 뒤샹을 마지막으로 종말을 맞이했을까?...... 개인적으로 예술의 종언을 쉽사리 인정하기는 꺼림칙하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발표되는 예술품들은 워홀과 뒤샹을 예술을 복제한 복제품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처럼 예술계가 무한 증식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역사 속에서 미학은 이러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었다. 워홀과 뒤샹의 뒤를 이어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예술가는 분명 다시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이것도 동일자의 영겁회귀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미학뿐만 아니라 많은 측면에서 미로에 빠져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 '바벨의 도서관'에서 끊임없이 절대적인 한 권의 책을 찾아 미로처럼 복잡한 거대한 도서관을 헤매고 다니듯이 우리는 미학에서도 그랬지만 고도로 발전된 도시문명, 너무도 다양해진 인식과 사고의 틀, 그리고 각종 이데올로기, 매일 엄청난 양으로 우리에게 접해지는 가상공간에서의 다양한 정보들에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현재 우리는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게 된다면 우린 이 다양한 미로의 존재조차 망각하며 살게 된다. 거대한 시뮬라시옹 속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미학이 존재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미학 오디세이 3라는 책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미로속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매우 복잡한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 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대단한 발견의 기쁨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미로 속에 있는지 조차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이제 책을 통해 미로를 확인했으니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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