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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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바다에서 맛있는 쭈꾸미 통신이 날아왔다. 박형진이라는 걸출한 요리사는 글이라는 냄비에 추억을 요리해냈다. 그이 요리는 입에 짝짝 달라붙다 못해 혀를 녹여버리고 자꾸만 먹고 싶은 충동에 여러 번 책을 읽게 만든 천하의 요리사이거니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말이 나오지 않는 글쟁이었다. 딸들과 끊여먹었던 양파를 썰어 넣고 김칫국물을 부은 라면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 책을 놓고 책에 나온 그대로 라면을 끊여먹었고, 긴긴 밤 밤참으로 먹던 고구마 이야기를 읽을 때 마트에 가서 고구마를 사다가 쪄먹었다. 메주를 담글 때 만들어 먹던 청국장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고향에서 밥집을 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어머니의 청국장 생각이 간절했었다. 먹고 싶은 충동을 넘어서 마음이 고향으로 벌써 줄달음을 치고 있었다. 이 책은 책 속에 맛과 향기 그리고 고향이라는 푸근함까지 모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 이모네 집에 놀러 가면 이모는 항상 장작불에 한 밥을 어른들이 먹던 밥그릇에 가득 담아주셨다. 달롱(달래를 책에서는 달롱개라고 했는데 내 고향 강원도 정선에서는 달롱이라고 했다)이 고추장에 무쳐져 상에 올라왔고, 호박과 두부를 넣은 구수한 된장국도 잊을 수가 없다. 마늘쫑이니 꼬들빼기 김치니 하던 것도 그때는 모두 집에서 직접 한 것이어서 아직도 그 향기가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다. 게다가 사촌동생이 왔다고 이모네 형님들이 잡아온 골뱅이로 끊인 골뱅이국(올갱이국이라고도 한다)은 골뱅이를 삶은 물에 부추와 된장을 풀어 끊이는데 숙취해소에도 그만이고 밥 한 그릇 말아 먹으면 속도 든든했다. 물론 골뱅이와 함께 잡혀온 민물고기 매운탕도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된다.


변산 바다에서 온 쭈꾸미 통신은 내 어릴 적 먹거리에 대한 기억을 폭발 시켰다. 그리고 그 시절의 풋풋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산골에서 자란 나로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는 바다고기에 대한 음식들과 아랫지방에서 많이 맛보는 젓갈에 대한 내용들은 생소하지만 푸근했다. 또한 음식이야기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그 시절 이야기들과 현실에 대한 비판들 또한 책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감질맛 나는 지은이의 글 솜씨에 탄복하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고,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여러 번 시장기를 느끼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세상이 많이 발전하고 먹거리도 풍성해졌다고는 하지만 요즘 음식들에서 어렸을 적에 먹던 깊은 맛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음식이 귀한대접을 받지 못함에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먹거리가 지금보다는 귀했던 터라 뭐든 맛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향이라는 공간에서 먹는 음식과 타향의 음식은 초장부터 상대가 되질 않는다. 고향에서 먹으면 라면 한 그릇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온다. 쭈꾸미 통신의 백미는 바로 먹거리와 그 먹거리에 대한 것이 고향이라는 공간에서 풀어져 있다는 것이다. 음식이야기가 몇 배로 맛있어지는 게 전부 다 변산 바다 앞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서 세상을 배우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가 손수 흙벽돌 만들어 살집을 짓고 아들, 딸 낳아 변산 공동체 학교 다니게 하여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하게하고 자신은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글도 쓰고 하는 지은이 박형진의 모습은 부러울 따름이다. 그의 삶의 궤적에서 심상치 않은 글 솜씨의 원천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의 사는 모습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변산 바다에서의 쭈꾸미 통신이 자주 올라왔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박형진의 맛있는 글 솜씨도 다시 보고 싶고, 책 읽으면서 침을 삼키던 그 많았던 순간을 다시 느끼고도 싶다. 배도 고파오는데 김치 썰어 대접에 놓고 밥넣고 참기름 부어서 밥이나 비벼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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