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근현대 편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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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21인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일상 속 철학 이야기


'철학'이라는 두 글자를 들었을 때 어렵다는 생각부터 드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철학을 알긴 알아야겠다고, 인문 교양의 필요성을 느끼거나 호기심이 있다면?


교양 인문의 필요를 절절히 느껴서 일단 책을 펼치긴 했지만 꾸벅꾸벅 졸아봤거나 따분해서 중도하차했던 경험이 있다면!


만화로 그려져 쉽고 색다르게 다가오는 <퇴근길 철학툰>을 강력 추천한다


물론 칸트의 철학은 아무리 쉽고 단순하게 풀어주었어도 챕터 두 개를 차지할 만큼 방대하고 정신이 혼미해졌었지만...

좀 어려운 부분이라면 그냥 휙휙 넘어가도 괜찮은 게 철학자 21명의 삶과 사상을 다뤄 내용이 무진장 방대하기 때문!


애초에 만화로 그려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인식을 깨고 쉽고 재밌게 다가오기 위함이니까!


혹시나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잽싸게 다음 파트로 넘어가자!

세상은 넓고 철학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다음 다다음장에도 신묘한 철학들이 가득하다


21인의 철학자 특징을 잡아 묘사한 그림도 아주 큐트하니 볼 맛이 난다


퇴근길 철학툰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정말 책장이 술술 넘어갈 수밖에 없게 한 페이지에 두 컷씩 아주 큼직큼직하게 그려져 있어 정신차리고 보면 반절 읽고 마는 책이다


쭉 읽다보니 가장 마음이 드는 건 스피노자의 철학이었다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다니!

제법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데 이게 깊게 공부하면 무진장 이성적인 합리주의자의 관점이었다고 하니 흥미롭다


.


반짝반짝 후가공이 들어간 철학툰이라는 제목의 앞에는 부제처럼 다음과 같은 말이 붙어있다


'지적 허영을 위한'


사실 이게 서평단을 신청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이동진 평론가가 문화에 대해서는 허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지식에 한해서도 어느 정도는 허영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영'이라고 하면 썩 좋지 않게 들릴 수가 있는데 애초에 허영심이라는 건 뭔가 내게 부족한 곳이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고 그것을 채우고 싶어서 드는 마음이 아닌가?


물론 딥해지면 실속 없이 겉핥기로만 알고 붕붕 뜨게 되겠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뭐가 필요한지를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든 문화든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충만하다고 생각한다면 더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학습할 여유도 이유도 없게 되니까!


매일 같이 익숙한 맛, 아는 맛만 먹다보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있어 보이고' 싶어서라도 새로운 문화나 지식을 접하다 보면 그 시간들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고 연습이 된다


솔직히 철학이 너무 재밌어 죽겠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런 책에 이름을 날리는 위대한 철학자가 되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라면 '아, 이런 것 좀 알면 있어 보이잖아' 하는 지적 허영을 위해서라도 책 한 번 더 펼쳐보고, 그 참에 하나라도 머리에 넣어가면 너무나 이득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저자도 처음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어 보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남들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이렇게 책까지 낸다? 대단한 거다

다 떠먹여 주는데 안 먹을 이유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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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절대 권력은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걸 싫어해.‘

진정한 성장은, 반대와 모순을 끌어안을 줄 아는 열린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의 흐름이 시기에 맞춰 변하듯, 유행의 파도는 욕망에 따라 춤춘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대의 유행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결핍이 보인다.

‘지상에 천국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을 만들어낸다.‘

지속적인 사유는 피곤하다. 그렇지만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며 숨어있는 악마를 내쫓아야 한다. 아렌트는 말한다. ‘멈춰서 생각해보라. 누구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생각에 잠길 수 없다.‘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대부분 대상에 대해 제대로 모를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관심 있는 무언가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이 사랑이라면,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 인생은 보다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문답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가 정말 확실한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믿음이 진짜 타당한가를 집요하게 따졌다.

‘생각은 꾸준히 벼리지 않으면, 금방 굳어버리니까.‘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맞다고 기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파도처럼 출렁이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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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열두 달 -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
도널드 P. 라이언 지음, 우진하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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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집트 하면 삐까번쩍한 황금의 관, 파라오가 떠오르게 마련이지 일반 백성,

즉 평민들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현대사회도 그렇듯 권력자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 아닌가?

바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모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인 만큼 실제 기록에 남을 만큼 높은 신분들을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창작 캐릭터이다


하지만 내 최애도 농부인걸

결국 우린 평범하고 인간적인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이집트에 대한 호기심 충족 지식 충족은 물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희망찬 메세지까지 주는 이 책!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제국의 열두 달>은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 시대, 한 마을에서 1년을 보내는 이야기이고

달별로 12개로 나뉜 챕터 안에는 해당 챕터의 메인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 캐릭터는 농부일 때도 있고 어부일 때도 있고 고위관직자나 의사,

이집트 하면 빠질 수 없는 파라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의 모습이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생생하게 펼쳐진다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


일하기 싫은 날도 있고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실제로 일하기 싫어서 도망다니거나 몰래 월급루팡하는 인간적인 면면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맡은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임하며 더 나아가

이집트의 수많은 신들과 이집트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농부와 어부는 태양신과 강의 신에게 풍년과 만선을 기원하고

그릇을 만드는 옹기장이는 자신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그릇을 알아보며

서기관은 글쓰는 일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다는 라라랜드의 명대사 처럼,

책 속 캐릭터들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져 나까지 이집트 문명에 더더욱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


.


또한 각자 독립적인 개체로 절대 엮이지 않을 것 같던 캐릭터들이

이집트에서 시기별로 생기는 소일거리 이슈나 우리로 치면 명절과 같은 축제,

하다못해 결혼식 등의 작은 잔치로 인해 안면을 트고 서로 얽히게 되는데 이게 아주 빅재미를 선사해서

한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볼까 한다


물론 파라오가 마을 잔치에 군림하는 드라마틱한 일까지야 없지만,

당시 고위관직자로 분류되었던 서기관이 영세한 목동의 결혼식에 방문해

동네 주민들이 모조리 긴장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목동은 일전에 서기관의 자녀가 길을 잃었을 때

친절하게 돌봐준 적이 있어 쭉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서기관이 목동과 얼마나 진심으로 연을 이어갔냐면,

사실 이 서기관은 목동 결혼식 이전에 다른 결혼식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는데

그땐 짭포도주를 선물하고 목동집에는 찐포도주를 선물한다

결혼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저 포도주를 팔던 상인에게

그럴싸한 짭을 주문하는 장면부터 아주 배꼽이 빠진다



- "어···, 그러니까 겉으로는 가나안에서 가져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비슷한데 조금 싼 그런 물건이 있을까요?"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한 상인은 웃음을 지으며 서기관을 방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저렇게 훈훈한 목동 결혼식에서 딱 한 사람만 입이 댓발 나와 있는데

이 책의 첫 번째 장 주인공인이자 내 최애캐 농부다


이 농부가 바로 일하기 싫어서 도망다닌 골때리는 캐릭터인데

그도 그럴 것이 농사가 오죽 힘든가


이집트의 농사는 우리가 보통 겨울에 농사를 못 짓는 것처럼

나일강의 물이 범람하는 시기 동안 쉬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한참 고생하다 밭에 물이 가득찼으니 물 빠질 때까지 좀 쉬어볼까 했더니...



𓀻파라오 : "요즘 한가하다며? 가서 내 무덤 좀 지어줘"

𓀗농부 : (도망)



집집마다 궁전에서 나온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 보고

휴가 반납당하고 불려갈까 봐 아내한테

누가 자기 찾거든 없다고 하라면서 담벼락이며 집구석에 숨어있는 게 짠했다

결국 걸려서 열심히 노동하러 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농부가 목동 결혼식에서 불퉁하니 있던 건...

그 목동 가족은 단 한 번도 파라오 무덤 로동에 끌려간 적이 없기 때문...!



- 한편, 잔치에 참석한 농부 바키는 지난달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사원 공사에 동원되었음을 알리던 서기관 미나크트를 알아보고는 여간 화가 치미는 게 아니었다. 세나의 형도 자신과 같은 농부였건만, 나일강이 범람해 농사를 쉬는 기간에도 국가적인 공사에 끌려간 적이 한 번도 없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어디 가서 서기관이나 관리의 잃어버린 딸이나 한번 찾아볼걸!" 바키는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기관과의 친분 때문에 은근슬쩍 빼준 게 아닌가 싶어서

자기도 그냥 농사고 나발이고 돌아다니면서

고위관직자 가족이나 줍줍하러 다닐걸 그랬다고 한탄하는 게 웃펐다

그때도 인맥이 이렇게나 막강했다니 믿거나 말거나


​.


한편 이 마을의 의사는 전차를 미친듯이 몰다가 엎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진 사람을 치료해주는데,

저 전차 광인이 무려 파라오의 친구였다!


이 의사는 훗날 저 과속 운전자의 입김 덕분에 궁전으로 스카웃이 되고,

실력을 인정 받아 수석의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정말 사람 일 어떻게 풀릴지 모르고 기회는 준비된 사람한테 온다는 말이 딱!

돌팔이였으면 오히려 큰일났을 상황이라고!


하지만 수석의사의 활약에도 노쇄한 파라오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고

이후 이집트하면 빠질 수 없는 미라 제작과 새로운 파라오의 대관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캐릭터들끼리 유기적으로 얽히는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이렇듯 역사적 사실과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각 계층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이집트의 이모저모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책이라 너무 재밌고 즐겁게 읽었다


특히 저 도망다니던 농부에게 애정이 많이 가는데 인간적인 면모야 말할 것도 없고😂

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농부라서 자주 등장하며 안부를 전하고 책의 처음과 끝을 열고 닫는 만큼

뒤이어 여러 캐릭터가 나옴에도 꼭 이 친구가 아주 비중있는 주인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친구의 시선으로 이집트의 동틀 녘을 묘사하며 책이 열리는데,


저 지평선 끝에서 태양이 올라오는 모습과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읽어보니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태양신 라(Ra)를 숭배했는지 이해가 됐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의 신, 라ra의 현신(現身)인 뜨겁게 타오르는 구체가 지평선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그것을 본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2시간 전쯤 서쪽으로 모습을 감쳤던 라는 밤 동안 저승에서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물리치고 무사히 살아남아 새로운 날이 밝아왔음을 선언하며 의기양양하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절도 거리도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기원전 1400년경의 이집트 사람에게 동기화가 되어

VR체험이 가능한 책 <제국의 열두 달> 너무나도 진심으로 추천한다


​.


- 쏟아지는 다양한 요청과 질문들을 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물음은 매한가지로 같았던 모양이다.

"아문 신이시여, 제 머리가 다시 자라날까요?" 한 사제는 질문을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일부러 고개를 젓고 시선을 피하면서 그 사람이 뭔가 애매한 느낌을 받도록 행동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 테베는 나일강을 비롯한 중요한 공사 현장들과 가까웠기 때문에 늘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 많았다. 어딘가에 베인 사람, 뼈가 부러진 사람, 배가 아픈 사람, 악어나 하마에 물린 사람,눈이 안 보이는 사람, 심장이 안 좋은 사람, 임신부 그리고 심지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자꾸 찾아오는 단골 환자와 가망 없는 대머리 치료를 부탁하는 사람까지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 아직도 묻고 대답해야 할 수수께끼가 수없이 남아 있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그 마르지 않는 경이로움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영감을 전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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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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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할 때 인상 깊은 구절이 있는 페이지는

나중에 사진을 찍으며 복기하려 모서리를 접어두는 편인데,

이 책은 한 80%를 접어버려서

하나씩 다 찍어두는 것은 무리고 자주 다시 펼쳐보려 한다


확실하게 말하려다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어투를 써봤거나,

반대로 쿠션어를 너무 깔아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소리를 들어봤다면


표지에 치즈냥냥이가 발톱을 숨기고 있는 바로 이 책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를 권해본다


.


이 책은 기본적으로 말하기와 글쓰기가 어떻게 다른지,

부드럽고도 명확하게 말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선명하고도 품위있게 자기 표현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말하기...? 글쓰기...?

이거 유아동교재 아닌가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절대 아니다


한글이 가나다 뗀다고 끝이 아니고 영어가 알파벳 안다고 끝이 아니듯

쓰고 말하는 스킬은 휴먼으로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한다


본격 글쓰기! 서두부터 결론까지~ 이런 식으로

옆에다 필기하며 공부해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쉽고 단정하며 다정한 어투로 읽히는 에세이 형식이기에

더 크게 와닿았다 (공부싫어맨)


.


사실 살아있는 저자의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아예 뭐 100년 전 사람의 글이다~ 이래버리면

저땐 저랬구나 하고 뜻이 안 맞아도 대충 넘어가기라도 하지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자의 가치관에 전혀 공감할 수 없거나

주장하는 논조가 너무 강하거나 자기연민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면!

책장이 절대 안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 다행스럽고 훌륭하게도,

저자 한 사람이 겪은 일들을 사례로 들었다고 해서 절대 시야가 좁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기저기 다녀본 만큼 폭넓은 사례들이 들어있어

각자 개인의 상황에 맞춰 필요한 부분들을 쏙쏙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저자가 말과 글을 잘 다루고 강연까지 많이 다니는 전문가인 만큼

다수의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톤으로

이 짧은 책 한 권 안에서도 다양성에 대해 존중하려

항시 신경쓰는 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굉장히 따스해졌다


.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후반에 나오는

무해한 사람이 되는 목표를 '지양'하라는 것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나

각기 다른 상황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일상적으로 쓰고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했던 말 한 마디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또 너무 의식하다보면 말이고 글이고

입조차 뻥긋하기 힘들어지겠지


그러므로 저자는 무해한 사람이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있는 집단에서만 지낼 땐

전혀 몰랐던 넓은 세상을 직접 체득하길 권한다


그렇게 하나씩 신경을 쓰고 시야를 넓혀가면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


최근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독특한 서바이벌을 보았는데,

이 프로그램의 제작의도 또한 저자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단순히 사상이나 이념, 정치성향 등 어떠한 지표 하나만 놓고 봤을 땐

서로 너무너무 달라서 '와 정말 저런 사람이랑은 말도 섞고 싶지 않군!'

했던 이들이 직접 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서 지내보면

그 인식이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마치 엠비티아이처럼 눈에 보이는 지표만이 다가 아니고

세상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너무나 다양한 색깔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상대의 사상에 녹아들어 동조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이 자란 배경이나 가치관등을 알게 되면

상대가 왜 그런 지향점을 가지게 됐는지 이해는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나와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이 틀리지 않다는 것.

저 사람은 그저 나와 다를 뿐이라는 것.

이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면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도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끝끝내 이해할 수 없는 골을 남겨두는 것보다는

사람 좋아와 사람 싫어가 공존하는 이 마음을 다잡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고 싶어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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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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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 앞에서 멈춘다고 했던가

기본적인 욕구와 욕망 또한 마찬가지 아닐지


.


이 책에서 말하는 '정욕'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일반적인 뜻이 아니라 '바른 욕망'을 뜻한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과 마주한 뒤 때로는 그것을 부정하고,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출하는 심오하고 세밀한 심리묘사가 인상 깊었다


책 속에서 기기괴괴한 욕망들이 등장하는 데에 반해 작가는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인간 본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욕망이 인간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여러 시점을 핑퐁핑퐁 오가며 내용이 전개되고, 각자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외부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재미가 있었다


여러 등장인물들은 각자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바른 욕망'을 향한 내적 갈망과 고뇌가 자리한다


.


인간 내면은 대부분 썩었을 거라고 보통 생각만 하지 이걸 대놓고 뒤집어 까서 탐구하는 건 쉽지가 않다


범죄스릴러물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단편적으로 범죄자들을 보면 곧장 뭔가 이상한데?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매우 다면적이다


뒤틀린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해 사람을 정말 불편하게 하고 주장하는 바 자체가 금기를 깨는 만큼 인상 쓰게 만들어서 그렇지

현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한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 같다


.


책에 담긴 메세지가 다층적이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데

특히나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 안 그래도 그 주제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심오해지는 와중에

욕망이 개인과 타인의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일반적인 것과 정상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다양성은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인지,

또 사회적 금기가 개인의 정체성과 욕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기타 등등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게 된다


이토록 머리가 아픈 문제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해설의 타이틀 '아사이 료는 고약하다'에 너무나 동감한다


.


<정욕>은 이달 말에 영화로도 개봉하는데 이 복잡다단한 심리묘사가 어떻게 스크린에 구현됐을지 극장에서도 한 번 다시 보고 싶어졌다


.


- "나, 참 이상하지?"


-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욕구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은 많아."


- "특수한 욕구를 지녔다고 해서 뭐든 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 "다양성이라고 떠들면서 한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가려고 하지 마."


- "선택지가 없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 노력 안 해도 그만이고 계속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한탄하고 있으면 되지."


- "그렇게 전부 태어난 탓으로 돌리고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고 말 하면 그만이지."


- "좋겠어요.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인생은."


-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상상하는 사람과는 전혀 달라.


- 이야기의 힘은 난관을 만났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념이 막다른 길에 이르고 논리가 파탄났을 때 사상이나 학문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겠으나, 소설은 더 나아갈 수 있다. 모순을 안은 채 그래도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순도 보이지만, 또 다른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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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리드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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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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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의 구애인이랑 사귀기 vs 구애인의 절친이랑 사귀기


설정 자체가 인터넷에서 종종 봤던 밸런스게임 선택지 그 자체라 아 요즘 고등학생들 재밌게 노네- 했다


판타지가 가미된 책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보통 뭔가 특별한 점이 하나씩은 있어서 먼발치에서 관망하듯 보기 쉬운데, 셰이커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평범해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인이나 동생 그리고 내 모습까지 이입이 가능했다


그래도 매우 평범하지 않은 조건이 하나 있었으니 주인공부터 시작해서 모든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꼭 원서에서 모르는 단어 나와서 머뭇거리는 것처럼, 이게 사람 이름이라는 데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난 딱히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 같은 게 없어서 과거에 만약을 하염없이 끼워넣는 주인공의 시간여행이 부럽진 않았지만 소설과 정반대로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칵테일이 있다면 꼭 마셔보고 싶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사기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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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영화 <나비효과> 생각도 났다

치명적인 사건이 있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그걸 고쳐놓으면 그로 인해서 또다른 치명적인 일이 생기고, 다시 시간을 거슬러 그 일도 막았는데 또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끝도없이 절망편으로만 흐르는 시간여행기의 끝이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셰이커는 청소년문학답게 그렇게 파국을 맞이하진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만날 사람은 만나고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걸 인지한 주인공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집착하지 않고 본인의 별명 롸잇 나우처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마무리가 된다


지나고나서 후회되는 순간들도 그때 당시에 내릴 수 있던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라는, 나름 인생의 진리라고도 볼 수 있는 교훈을 남았는데 평소 살면서 지향하던 바와도 통해서 마음에 쏙 드는 메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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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과거에서 현재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삶이란 어쩌면 그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인지도 몰랐다. 시간은 때때로 훌쩍 건너뛰기도 하고, 한곳에 오롯이 멈춰 있기도 하니까.


-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나'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과거를 떠올리면 자신이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다. 철없고 단순해 세상을 모르는 유치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버텨냈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 낸 덕분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그 자명한 사실을 바보처럼 잊고 말았다.


- 내일의 과거는 오늘이지요. 내일은 그다음 날의 과거가 됩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 과거는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매일매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 우린 과거에 살지만, 정작 그 과거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 "아름다운 얼굴로 악마 같은 말을 하네."


-  대학만 가면, 제대만 하면,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그렇 게 수많은 '하면'의 장벽 뒤에 나타나는 건 더 넓고 까마특한 벌판뿐이었다.


- 그것이 왜 중요했는지는, 결국 그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


-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상처를 지닌 채, 시선은 늘 미래로 향해 있는, 매일같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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