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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열두 달 -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
도널드 P. 라이언 지음, 우진하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4월
평점 :
보통 이집트 하면 삐까번쩍한 황금의 관, 파라오가 떠오르게 마련이지 일반 백성,
즉 평민들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현대사회도 그렇듯 권력자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 아닌가?
바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모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인 만큼 실제 기록에 남을 만큼 높은 신분들을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창작 캐릭터이다
하지만 내 최애도 농부인걸
결국 우린 평범하고 인간적인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이집트에 대한 호기심 충족 지식 충족은 물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희망찬 메세지까지 주는 이 책!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제국의 열두 달>은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 시대, 한 마을에서 1년을 보내는 이야기이고
달별로 12개로 나뉜 챕터 안에는 해당 챕터의 메인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 캐릭터는 농부일 때도 있고 어부일 때도 있고 고위관직자나 의사,
이집트 하면 빠질 수 없는 파라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의 모습이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생생하게 펼쳐진다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
일하기 싫은 날도 있고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실제로 일하기 싫어서 도망다니거나 몰래 월급루팡하는 인간적인 면면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맡은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임하며 더 나아가
이집트의 수많은 신들과 이집트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농부와 어부는 태양신과 강의 신에게 풍년과 만선을 기원하고
그릇을 만드는 옹기장이는 자신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그릇을 알아보며
서기관은 글쓰는 일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다는 라라랜드의 명대사 처럼,
책 속 캐릭터들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져 나까지 이집트 문명에 더더욱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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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각자 독립적인 개체로 절대 엮이지 않을 것 같던 캐릭터들이
이집트에서 시기별로 생기는 소일거리 이슈나 우리로 치면 명절과 같은 축제,
하다못해 결혼식 등의 작은 잔치로 인해 안면을 트고 서로 얽히게 되는데 이게 아주 빅재미를 선사해서
한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볼까 한다
물론 파라오가 마을 잔치에 군림하는 드라마틱한 일까지야 없지만,
당시 고위관직자로 분류되었던 서기관이 영세한 목동의 결혼식에 방문해
동네 주민들이 모조리 긴장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목동은 일전에 서기관의 자녀가 길을 잃었을 때
친절하게 돌봐준 적이 있어 쭉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서기관이 목동과 얼마나 진심으로 연을 이어갔냐면,
사실 이 서기관은 목동 결혼식 이전에 다른 결혼식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는데
그땐 짭포도주를 선물하고 목동집에는 찐포도주를 선물한다
결혼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저 포도주를 팔던 상인에게
그럴싸한 짭을 주문하는 장면부터 아주 배꼽이 빠진다
- "어···, 그러니까 겉으로는 가나안에서 가져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비슷한데 조금 싼 그런 물건이 있을까요?"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한 상인은 웃음을 지으며 서기관을 방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저렇게 훈훈한 목동 결혼식에서 딱 한 사람만 입이 댓발 나와 있는데
이 책의 첫 번째 장 주인공인이자 내 최애캐 농부다
이 농부가 바로 일하기 싫어서 도망다닌 골때리는 캐릭터인데
그도 그럴 것이 농사가 오죽 힘든가
이집트의 농사는 우리가 보통 겨울에 농사를 못 짓는 것처럼
나일강의 물이 범람하는 시기 동안 쉬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한참 고생하다 밭에 물이 가득찼으니 물 빠질 때까지 좀 쉬어볼까 했더니...
𓀻파라오 : "요즘 한가하다며? 가서 내 무덤 좀 지어줘"
𓀗농부 : (도망)
집집마다 궁전에서 나온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 보고
휴가 반납당하고 불려갈까 봐 아내한테
누가 자기 찾거든 없다고 하라면서 담벼락이며 집구석에 숨어있는 게 짠했다
결국 걸려서 열심히 노동하러 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농부가 목동 결혼식에서 불퉁하니 있던 건...
그 목동 가족은 단 한 번도 파라오 무덤 로동에 끌려간 적이 없기 때문...!
- 한편, 잔치에 참석한 농부 바키는 지난달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사원 공사에 동원되었음을 알리던 서기관 미나크트를 알아보고는 여간 화가 치미는 게 아니었다. 세나의 형도 자신과 같은 농부였건만, 나일강이 범람해 농사를 쉬는 기간에도 국가적인 공사에 끌려간 적이 한 번도 없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어디 가서 서기관이나 관리의 잃어버린 딸이나 한번 찾아볼걸!" 바키는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기관과의 친분 때문에 은근슬쩍 빼준 게 아닌가 싶어서
자기도 그냥 농사고 나발이고 돌아다니면서
고위관직자 가족이나 줍줍하러 다닐걸 그랬다고 한탄하는 게 웃펐다
그때도 인맥이 이렇게나 막강했다니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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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마을의 의사는 전차를 미친듯이 몰다가 엎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진 사람을 치료해주는데,
저 전차 광인이 무려 파라오의 친구였다!
이 의사는 훗날 저 과속 운전자의 입김 덕분에 궁전으로 스카웃이 되고,
실력을 인정 받아 수석의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정말 사람 일 어떻게 풀릴지 모르고 기회는 준비된 사람한테 온다는 말이 딱!
돌팔이였으면 오히려 큰일났을 상황이라고!
하지만 수석의사의 활약에도 노쇄한 파라오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고
이후 이집트하면 빠질 수 없는 미라 제작과 새로운 파라오의 대관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캐릭터들끼리 유기적으로 얽히는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이렇듯 역사적 사실과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각 계층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이집트의 이모저모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책이라 너무 재밌고 즐겁게 읽었다
특히 저 도망다니던 농부에게 애정이 많이 가는데 인간적인 면모야 말할 것도 없고😂
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농부라서 자주 등장하며 안부를 전하고 책의 처음과 끝을 열고 닫는 만큼
뒤이어 여러 캐릭터가 나옴에도 꼭 이 친구가 아주 비중있는 주인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친구의 시선으로 이집트의 동틀 녘을 묘사하며 책이 열리는데,
저 지평선 끝에서 태양이 올라오는 모습과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읽어보니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태양신 라(Ra)를 숭배했는지 이해가 됐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의 신, 라ra의 현신(現身)인 뜨겁게 타오르는 구체가 지평선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그것을 본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2시간 전쯤 서쪽으로 모습을 감쳤던 라는 밤 동안 저승에서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물리치고 무사히 살아남아 새로운 날이 밝아왔음을 선언하며 의기양양하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절도 거리도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기원전 1400년경의 이집트 사람에게 동기화가 되어
VR체험이 가능한 책 <제국의 열두 달> 너무나도 진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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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다양한 요청과 질문들을 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물음은 매한가지로 같았던 모양이다.
"아문 신이시여, 제 머리가 다시 자라날까요?" 한 사제는 질문을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일부러 고개를 젓고 시선을 피하면서 그 사람이 뭔가 애매한 느낌을 받도록 행동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 테베는 나일강을 비롯한 중요한 공사 현장들과 가까웠기 때문에 늘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 많았다. 어딘가에 베인 사람, 뼈가 부러진 사람, 배가 아픈 사람, 악어나 하마에 물린 사람,눈이 안 보이는 사람, 심장이 안 좋은 사람, 임신부 그리고 심지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자꾸 찾아오는 단골 환자와 가망 없는 대머리 치료를 부탁하는 사람까지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 아직도 묻고 대답해야 할 수수께끼가 수없이 남아 있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그 마르지 않는 경이로움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영감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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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타인의 사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