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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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총 균 쇠>이 책들을 안 읽어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도서명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사실 내가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큰 부분을 저 두 책이 차지하고 있다
아직 안 본 눈인 게 함정이지만

저 두껍고 유명한 도서들을 읽고는 싶은데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뉴비 상태로 볼 책이 아니라는 판단 아래 빌드업부터 하고자 흥미 위주에서 다양한 분야로 이것저것 읽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점점 책과 함께 하는 해가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도전은 언제쯤 할 것인지는 아직도 미정
이러다 영영 빌드업만 하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저 두 권 + 토지까지 독파하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목표다

각설하고 사피엔스와 총 균 쇠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바로 이번 책이 저 두 책보다 앞서 읽어야 할 휴먼과 문명에 대한 가이드북이라는 소개글을 보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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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페이지 가량의 샘플북으로 먼저 받아본 <인간이 되다>는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를 했고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으로 치면 어떤 코딩 오류가 있으며 그 오류를 어떻게 '오히려 좋아' 모드로 잘 활용해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인류가 이 삐걱거리는 몸으로 현존하는 가장 복잡다단한 생명체가 되었는지에 대해 진화적, 문명적인 부분을 복합적으로 다룬다

걸어다닌지 벌써 몇백만 년이 지났는데 여즉 직립보행에도 적응을 못 해서는 온갖 척추 질환을 달고 사는 고물단지 하드웨어 그대로 소프트웨어만 죽어라 업데이트를 하려니 저 간극에서 괴리감이 안 생길 수가 없지

하지만 인간은 해냈죠
무엇을?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어내는 것을!

물론 그 과정에서 한숨나오는 일들과 한숨나올 일들이 셀 수 없지만

인간! 이게 최선인가?
대체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의문점들을 한 번이라도 품어왔다면, 그리고 최근에 인사이드 아웃2를 감명깊게 봤다면!
전문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 얘기는 또 왜 했냐면

-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즉, 우리의 결함과 능력 이 모두가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다.

이 발췌를 봐 대단하지

1장 _ 문명을 위한 소프트웨어
2장 _ 가족
3장 _ 감염병
4장 _ 유행병
5장 _ 인구
6장 _ 마음을 변화시키는 물질
7장 _ 코딩 오류
8장 _ 인지 편향

이 목차를 봐 흥미롭지

가제본으로 1장만 읽어본 거라
나도 뒷부분이 궁금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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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잔인한 동시에 상냥하다고 말하더라도 아무 모순이 없다.

- 우리는 이전에 만난 적이 없거나 앞으로도 다시 만날 가망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단 한 번으로 그치고 말 이러한 친절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내가 오전에 일터로 걸어가는 동안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은 수렵채집인 조상이 평생 동안 마주친 사람 수보다 훨씬 많다.

- 우리의 마음은 조상이 살던 환경, 즉 친족을 기반으로 한 아프리카 사바나의 작은 공동체에서 적응적 행동을 촉진하도록 진화했고, 이 인지 운영 체제는 사회 환경이 급속히 변했는데도 그동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이타적 성향은 새로운 진화적 세계에 맞춰 보정되지 않았다. 

- 옥시토신이 매개한 친구들 사이의 유대는 각자에게 상대방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 뒷담화는 간접적 호혜성이 무임승차자 때문에 훼손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핵심 전제 조건이며, 모닥불에서부터 냉온수기에 이르기까지 인간 문화 도처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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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 일부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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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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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신작 <작은 종말> 가제본으로

<지향>, <무르무란>, <개벽> 총 세 작품을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어떤 서평단이든 당첨되면 기쁘기 그지 없지만

가제본 서평단은 도서 제작에 직결된 사람들을 제외하면

독자 중에서는 가장 먼저 작품을 만나보는 것과 다름 없어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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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롭게 만난 작품들은

꽤나 묵직한 주제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모두 강렬한 감각을 전해줬다


작은 종말을 여는 첫 번째 작품인 <지향>은

거의 매 장을 접어뒀을 정도로 인상 깊은 구절이 넘쳐나는

고여있던 생각의 웅덩이에 풍덩 돌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무르무란>은 인물들의 인디언식 작명과 삶의 방식으로 미루어봤을 때

자연과 더불어사는 모계사회 원시 부족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묘사가 너무나 강렬해서 읽는 내내 꼭 내가 부족의 일원이 된 듯했다


마지막으로 <개벽>은 외계인 창조주를 믿으며

숯과 소금을 비싸게 팔아먹는 사이비가 나오는 블랙코미디인데

일전에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반가웠다


한참 사이비 관련으로 나라가 떠들썩한 어느 시점에 봤던 단편이라

더더욱 와닿았던 내용이고 주제가 다른 앤솔로지에 실렸던 만큼

비교적 키치하며 풍자적 요소도 담겨 있어 보다 가볍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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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살펴보니 가제본으로 공개된 분량의 바로 다음 챕터가 표제작이던데

과연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번 보라월드도 기대만발이다


실망하고 싶지 않기에 여간해선 매사에 기대를 안 하며 살지만

보라월드라면 마음 놓고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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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퍼플레인 출판사로부터 도서 일부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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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의 애인이 아니다. ‘친구‘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폭넓은 의미들을 전부 감싸고 있어 매우 모호하다.


혈연이 아닌 타인과 공유한 깊고도 단단한 결속을 이르는 용어가 대부분 성애를 허용했는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조금 소름 끼치는 일이다.

자신들이 잘 모르고 알고 싶지 않은 일은 전부 죄악이라 외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무성애는 이 모든 유성애 중심주의적 방향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 이탈은 자유일 수도 있고 광막한 황무지일 수도 있으므로 자유와 폐허 사이의 모든 상태를 포함할 것이다. 유성애자든 무성애자든 삶이 본래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어느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어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인간이 겪었고 겪고 있는 신체와 정신의 위협을 내가 완전히 똑같이 경험하지 않았다 해서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해 완전히 같은 지향이나 완전히 같은 경험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호리호리하고 단단하고 인정사정없이 아름답고 사나웠다.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별 이분법에 의거한 성역할이란 납작하기 짝이 없다

무성애는 해탈한 돌덩이가 아니다. 무성애는 다이내믹하다.

비성소수자는 자신이 세상의 표준인 데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존재의 상태가 세상에 다양하고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한다.

친구, 이웃, 동료, 동지가 장례를 치러줄 수 없는 이유는 재산의 처분과 부의금의 모금 및 사용 때문일 것이다. 가족 안에서 돈 문제로 싸움이 나면 ‘집안 문제‘로 취급하여 장례업체도 사법부도 손 떼고 방임할 수 있다. 혈연관계도 혼인관계도 없는 타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법이 개입해야 한다. 골치 아픈 것이다. 친구와 동료가 있고 인간관계를 맺고 넓고 깊고 풍성하게 인간의 삶을 살아온 존재를 무연고자로 만드는 편이 법과 행정의 관점에서 처리하기에 쉽고 편한 것이다.

강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은 지속하지 않고 미래가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약속도 가질 수 없는 모든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할 수 있기를 나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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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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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좋아하세요? 미스테리 좋아하세요?

꼬꼬무는요? 기욤뮈소는? 술술 읽히는 소설은?


이걸 다 합치면 <사랑하기 때문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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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랑 기욤뮈소가 종종 만나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다


나였으면 국기라도 걸어뒀겠다


프랑스 작가인데 희한하게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두 사람,

그중 기욤 뮈소의 도서가 리커버판으로 새로 출간되었다


리커버판으로 명작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렇게나 감각적인 옷을 입는 경우는 드물다


시선을 확 잡아끌어서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만드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감각적이고 낯선 일러스트와 너무나 익숙한 저자의 만남이라니!


멀리서 언뜻 표지만 보면 한국 sf소설 느낌도 물씬 풍기는 취향저격 일러스트 때문에 딱 보자마자 너무 읽고 싶었는데 서평단 당첨이 돼서 무척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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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앞서 말한 한국에서 잘 먹히는 두 사람 중 베르나르의 소설들을 주로 읽었던터라 기욤 뮈소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접해봤는데, 이 양반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쓰는구나!


집필 스타일을 찍먹해보니

이래서 기욤기욤하고 뮈소뮈소하는구나 하고 이마를 탁 쳤다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자가복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렇게 맛있으면 그냥 복제 계속 하라고 해요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이번에 리커버판으로 <브루클린의 소녀>, <내일>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까지 기욤 뮈소 3종 세트가 함께 출간되었는데, 다른 두 책까지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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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줄거리를 찾아보면 그저 캐릭터들의 상황 나열일 뿐인데도 텍스트가 아주 뚱뚱하니 가득 적혀있다


그런데 그 뚱뚱 텍스트를 전부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이 안 오고

반드시 직접 펼쳐서 한 장 한 장 넘겨봐야만 알 수 있다


이게 이렇게 엮인다고? 이걸 이렇게 풀어간다고? 하고 놀라느라 저절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만다


300페이지 넘는 소설치고는 비슷한 두께의 다른 책들 대비 거의 최단시간에 독파한 것 같다 그만큼 정말 재미있다

술술술 읽히는 만큼 독서 입문템으로도 너무나 추천하고 싶다


새롭게 디자인된 표지에 나오는 모든 아이템들이 책 속 어느 구간에서 등장하는지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반전이 중요한 영화들은 홍보할 때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가라고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어차피 줄거리 봐도 감이 안 잡히니까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그냥 냅다 펼쳐봤으면 좋겠다


이미 나 빼고 다 읽었을 것 같아서 머쓱할 따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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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기욤씨 작품 중 의외로 영화화된 작품이 거의 없던데 <사랑하기 때문에>는 진짜 영상으로 보기 딱 좋은 소재다


제발 아무나 빨리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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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밝은세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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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두려움을 엮어서 만든 목걸이다._비요크

이 거대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룸메이드에서부터 바닥타일 청소부, 관리 담당 직원에 이르는 수천 명의 투명 인간들이 필요했다. 에비도 그 투명 인간들 중 하나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가 우리 안에 살고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내뱉는 말들이 사실은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때도 있다._마르셀 프루스트

지금처럼 커뮤니케이션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도 없었지만 또 지금처럼 서로의 말을 깊이 경청하지 않는 시대도 없었다.


게토 안의 그린우드와 게토 밖의 시카고대학, 최악의 슬럼가와 지식의 전당이 불과 몇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있는 셈이다. (···) 그는 왜 벽 너머 저쪽과 이쪽의 삶이 이다지도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 라고 말하다 보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다 지나간다.

서로 사랑할 때는 결코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


때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대단치 않은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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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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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지금 여자들끼리 어떤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불쾌하고 유쾌하며 폭력적이지만 부드럽고

지독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환상적이다


대체 이게 무슨 모순인가 싶겠지만

한 번도 받기 힘든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은 대단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것을 책 한 권에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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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사랑이었지만 지금와서 보니 폭력이었던 어떤 흔적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흔적을 애써 숨기려하지도, 그것에 짓눌리지도 않으며

그저 멀리 내다보고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소설 속에는 서로 밉고 싫고 외면하고 싶다가도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멋들어진 표현으로 담겨있다

정말 오래 살아남은, 그리고 어떤 지점에서는 확실히

깨어있는 자들과 일깨워진 자들의 연대와 화합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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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 나오는 노답 캐릭터를

홍상수 감독 영화 제목을 살짝 비틀어 아래와 같이표현하고 싶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고 천지개벽 수준으로 세상이 바뀌어도

과거의 영광에 절어 사는 이들이 있다

아니 이걸 영광이라고 해도 되나


제대로 된 규범도 사회적 인식도 없던 시절이

본인들에겐 호시절이던 인간들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그때 그 시절 무법지대를 춤추듯 거니다가

정신차리고 보니 몇십 년이 지난 거다

본인 빼고 주변 사람들의 인식과 세상이 통채로 바뀐 건

어떻게 보면 공포 그 자체 아닐까?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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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나 그림책, 또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눈앞에 책속의 장면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유려한 표현들이 굉장히 인상 깊은 책


고풍스러운 블랙유머가 필요한 사람에게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서늘하고도 따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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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바코드가 너무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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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름다움은 일종의 환상이다. 또한 일종의 경고다.

두 사람은 들떠 있다.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아직 너무 어리니까.

"사람은 자기가 늙었다고 느끼는 만큼만 늙어."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을 붙잡기 위해 무슨 짓을 하며 망가지든 신경쓰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쓰럽게 여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대방의 고통은 그가 내게 의도적으로 가하는 악의적인 행위로 느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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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들 네오픽션 ON시리즈 26
기에천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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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내내 든 생각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제목이 허위매물이라는 것(칭찬임)

안 귀엽고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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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들>은 고도3동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짤막한 이야기들이 모인 단편집인데, 이 동네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담시티 저리가라 할 수준으로 해괴한 일들만 생기는 동네다


소개글을 봤을 땐 그저 버려진 인형들의 복수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인형과 동물과 청소년이라는 약자들의 시각을 통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재미로 보는 장르소설로 치부하기엔 시사하는 바는 물론 느끼는 바가 굉장히 크다


공간 배경이 한 동네로 한정되어 있다 보니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게 되는데 이게 또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해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들 사연이 있고 앞장에서 본 빌런이 단순 빌런이 아니게 되고 스치듯 언급한 표현을 기억해두면 뒤에 가서 앗 이 녀석은! 하고 퍼즐을 맞춰볼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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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은 있지만 주체성 없이 휘둘리며 살던 존재가 온전히 자기 의지로 저벅저벅 걸어나가는 모습에서 오는 해방감이란!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자 가장 아픈 손가락, 귀 한쪽이 뜯겨나갔지만 오히려 강해진 토끼인형 깔랑을 보니 퓨리오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인형의 집 탈출기는 토이스토리 호러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안에서 벌어지던 무시무시한 일들이며 기기괴괴 비주얼의 인형들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는 방화범(?) 깔랑의 뒷모습은 거의 뭐 헐리웃 액션영화 저리가라 였다


깔랑의 흑화기라고 해야 할지, 인생 2막의 시작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그 순간이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슨 일이든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시작을 목도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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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공허한 털뭉치들이 서로를 구원해주는 이상하고 아름답고 무섭고 귀여운 잔혹동화


세상에서 가장 하찮으면서 가장 강력한 힘 '귀여움'에 푹 빠져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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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인형이라는 건 말이야, 제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순간부터 쓸모가 없어지는 거더라고. 누가 당기면 당겨지고 밀면 밀쳐져야 하는 게 인형의 존재 이유라는 걸 미처 몰랐지 뭐야. 걸을 수 있기에 발을 뻗었어. 말하고 싶어서 소리 질렀고, 생각할 수 있기에 고민했어.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야. 이토록 작고 귀여운 나를 향한 세상의 잔혹한 박해가. 그래서 난 결심했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인형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겠다고. 기꺼이 도살자가 되겠노라고.


- "주인 따위 필요 없어." 이제 깔랑은 부드러워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귀여울 필요도, 두 쪽 귀가 온전하게 붙어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쪽으로 가기를 원할지 스스로 생각해야 할 뿐이었다.


- 역시 인간 종족은 끈기로는 어느 종족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 인간들의 말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떤 때는 오물이 둥둥 떠있는 썩은 물보다도 더러웠다. 


- 역시 오늘도 바빠질 예정이야. 거대하고 멋진 자유가 날 기다리니까.


- 인간이 놀이터로 걸어들어왔을 때 그의 주머니 안에서 잘그락거리던 차 키 소리를 뼈다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고양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인간은 차를 타고 이 먼 곳까지 왔다. 다시는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차 안에서 고양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뼈다귀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동물들의 감각은 때로 너무 쓸데없이 뛰어나다. 너무나 뛰어나서 어떨 때는 서러울 정도였다.


- "힘들이지 마. 애쓰면 더 고통스러 울 때도 있더라."


- 세상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끝없이 등장했다.


- 그래도 뭐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다가오는 운명을 기다리는 건 이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지점토 인형이다.


- 평범한 인간들이 안온한 일상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어야 했다. 모든 걸 알면 그 순간 그저 그런 시민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사람을 닮은 고구마. 왠지 모르게 소름 돋고 끔찍하게 생겼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당장이라도 땅을 파고 나와 주장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저 아래에 묻힌 황금을 보았노라고! 그러니 나와 같이 땅속으로 들어가자면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고구마를 키우던 기에천 씨는 실종되었다는 결말만 남겠지요.


-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 인형에게 부여되는 잣대가 정말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인간의 표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형상화 하되 인간과 닮아서는 안 될 것. 그러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울 것. 가끔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물어뜯기거나 복싱 상대가 되어도 군소리하지 않을 것.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이런 쓸데없는 발상에서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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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의 발상이 참 귀엽다 특히 작품 후기에서 들려주는 의식의 흐름을 보면 두더지 귀엽다고 막 만졌다간 순식간에 땅속으로 잡아채간다는 도시괴담이 떠오르기도 해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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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자음과 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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