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것들 네오픽션 ON시리즈 26
기에천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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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내내 든 생각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제목이 허위매물이라는 것(칭찬임)

안 귀엽고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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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들>은 고도3동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짤막한 이야기들이 모인 단편집인데, 이 동네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담시티 저리가라 할 수준으로 해괴한 일들만 생기는 동네다


소개글을 봤을 땐 그저 버려진 인형들의 복수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인형과 동물과 청소년이라는 약자들의 시각을 통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재미로 보는 장르소설로 치부하기엔 시사하는 바는 물론 느끼는 바가 굉장히 크다


공간 배경이 한 동네로 한정되어 있다 보니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게 되는데 이게 또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해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들 사연이 있고 앞장에서 본 빌런이 단순 빌런이 아니게 되고 스치듯 언급한 표현을 기억해두면 뒤에 가서 앗 이 녀석은! 하고 퍼즐을 맞춰볼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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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은 있지만 주체성 없이 휘둘리며 살던 존재가 온전히 자기 의지로 저벅저벅 걸어나가는 모습에서 오는 해방감이란!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자 가장 아픈 손가락, 귀 한쪽이 뜯겨나갔지만 오히려 강해진 토끼인형 깔랑을 보니 퓨리오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인형의 집 탈출기는 토이스토리 호러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안에서 벌어지던 무시무시한 일들이며 기기괴괴 비주얼의 인형들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는 방화범(?) 깔랑의 뒷모습은 거의 뭐 헐리웃 액션영화 저리가라 였다


깔랑의 흑화기라고 해야 할지, 인생 2막의 시작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그 순간이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슨 일이든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시작을 목도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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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공허한 털뭉치들이 서로를 구원해주는 이상하고 아름답고 무섭고 귀여운 잔혹동화


세상에서 가장 하찮으면서 가장 강력한 힘 '귀여움'에 푹 빠져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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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인형이라는 건 말이야, 제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순간부터 쓸모가 없어지는 거더라고. 누가 당기면 당겨지고 밀면 밀쳐져야 하는 게 인형의 존재 이유라는 걸 미처 몰랐지 뭐야. 걸을 수 있기에 발을 뻗었어. 말하고 싶어서 소리 질렀고, 생각할 수 있기에 고민했어.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야. 이토록 작고 귀여운 나를 향한 세상의 잔혹한 박해가. 그래서 난 결심했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인형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겠다고. 기꺼이 도살자가 되겠노라고.


- "주인 따위 필요 없어." 이제 깔랑은 부드러워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귀여울 필요도, 두 쪽 귀가 온전하게 붙어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쪽으로 가기를 원할지 스스로 생각해야 할 뿐이었다.


- 역시 인간 종족은 끈기로는 어느 종족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 인간들의 말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떤 때는 오물이 둥둥 떠있는 썩은 물보다도 더러웠다. 


- 역시 오늘도 바빠질 예정이야. 거대하고 멋진 자유가 날 기다리니까.


- 인간이 놀이터로 걸어들어왔을 때 그의 주머니 안에서 잘그락거리던 차 키 소리를 뼈다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고양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인간은 차를 타고 이 먼 곳까지 왔다. 다시는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차 안에서 고양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뼈다귀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동물들의 감각은 때로 너무 쓸데없이 뛰어나다. 너무나 뛰어나서 어떨 때는 서러울 정도였다.


- "힘들이지 마. 애쓰면 더 고통스러 울 때도 있더라."


- 세상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끝없이 등장했다.


- 그래도 뭐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다가오는 운명을 기다리는 건 이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지점토 인형이다.


- 평범한 인간들이 안온한 일상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어야 했다. 모든 걸 알면 그 순간 그저 그런 시민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사람을 닮은 고구마. 왠지 모르게 소름 돋고 끔찍하게 생겼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당장이라도 땅을 파고 나와 주장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저 아래에 묻힌 황금을 보았노라고! 그러니 나와 같이 땅속으로 들어가자면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고구마를 키우던 기에천 씨는 실종되었다는 결말만 남겠지요.


-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 인형에게 부여되는 잣대가 정말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인간의 표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형상화 하되 인간과 닮아서는 안 될 것. 그러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울 것. 가끔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물어뜯기거나 복싱 상대가 되어도 군소리하지 않을 것.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이런 쓸데없는 발상에서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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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의 발상이 참 귀엽다 특히 작품 후기에서 들려주는 의식의 흐름을 보면 두더지 귀엽다고 막 만졌다간 순식간에 땅속으로 잡아채간다는 도시괴담이 떠오르기도 해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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