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힘
마셜 골드스미스.마크 라이터 지음, 김준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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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변화.
마음 먹고 있는 그 어떤 일을 실제로 변화된 행동으로 만나기는 얼마나 어렵던가.
책의 저자 마셜 골드스미스가 종종 예를 드는 '다이어트'만 해도 그렇다.
'다이어트'를 위한 행동의 변화에 성공하고 그 성공을 유지하는 어떤 이들에 비해 나는 저자가 말하는 류의 사람과 어쩜 그리 같을까?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피하고,
매일 운동을 하고,
설탕이 들어가 달달한 커피를 멀리할 때 건강한 다이어트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왜 다이어트의 성공과 유지라는 결과는 이루기가 참 힘들다.

이 책은 소소하게는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행동의 변화에서 부터 더 넓게는 기업의 리더 혹은 직장에서 반드시 이루어야할 행동의 변화에 대해 더이상 우연이나 운에 맡기지 않고, 실제적인 행동의 변화를 갖도록 돕는 자기계발서이다.

제목에서 어떤 힘이 엿보인다.
트리거(TRIGGERS) / 방아쇠
부제는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힘"이다.

저자 마셜 골드스미스는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십 사상가 1위로 뽑혔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을 변화시켜 진정으로 원하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트리거가 무엇인지 알고, 우리에게 필요한 트리거를 찾아야한다고 하는데...

"트리거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모든 자극이다."

트리거는 직접적일 수도 있고, 간접적일 수도 있다.
트리거는 내부적일 수도 있고, 외부적일 수도 있다.
트리거는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트리거는 예상하던 것일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트리거는 격려할 수도 있고, 단념시킬 수도 있다.
트리거는 생산적일 수도 있고, 비생산적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서의 긴장감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각 개인의 트리거에 대한 현명하게 대처하고, 행동 변화의 성공과 실패에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서도록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를 분석해 본다.
"우리는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자신의 행동에 관한 한 선택권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런류의 자기계발서 혹은 리더십 관련 도서를 읽다보면 자기 관리, 자기 계발은 정말 쉬운것 이 아니구나를 느낀다.
그럼에도 <환경, 시도, 체계, 변화>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배워 본 <트리거>는  좀더 바른 방향으로 변화되어가기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그 어떤 모습을 위해 행동하도록!! 방아쇠를 당기도록!! 도전해 주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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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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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가 내리는 날에 이 책을 읽었다.
딸아이가 몇 페이지 읽더니 엄마가 딱 좋아할 책이란다.
맞다. 어쩌면 꼭 나에게 던지는 듯한 제목부터가 그랬다.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밥에 붙들려 꽃 지는 것도 몰랐다."
아.... 그러고싶지 않다.
저자는 자신에게 신나는 즐거움, 슬픈 즐거움, 괴로운 즐거움,

지루한 즐거움, 무서운 즐거움을(저자의 표현) 주었던

시 51편을 독자들에게 배달 해준다.

딩동~~
문앞에 '시'만 배달해주고

 휙~ 가버리는 배달부가 아닌,

시를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시의 맛이 어떤지,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을 뭐라 이야기하는지...

저자의 말로 한편 한편의 짧은 산문을 선사해준다.


"시를 읽고 쓰는 것도 우는 방법의 일종이다.
시는 감정을 절제시켜 겉으로는 평온하고 즐거우면서도
속으로는 마음껏 울게 하는 속울음의 형식을 갖고 있다.
좋은 시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한껏 울게 해주면서도
전혀 울지 않고 평온하게 독백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삼십대 초반 회사를 다니면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시인.

저자가 말하는 시인은 무엇일까.

시는 무엇일까.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의 말을 잃지 않는 사람,
굳어져 딱딱한 고정관념이 없이 말랑말랑한 새 말을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시는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이다.
내 안에는 지치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는 끊임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는 내가 내 안의 수많은 나에게 하 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개해 준 51편의 시도 좋았지만,
진짜 좋았던 건  김기택 시인의 글이었다.
다시, 시로 숨 쉬고 싶게 해준 책.
사유의 맛과 힘을 이 가을의 첫자락에 선물해 준 책.
시인은 가을 냄새는 차고 비리다고 했는데,
이 책을 만난 나의 가을 냄새는 설레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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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천로역정 - 이동원 목사와
이동원 지음 / 두란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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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순례자는 자기가 가야할 궁극적인 본향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 본향이 하늘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궁극적인 본향을 알지 못하고 인생 길을 가고 있다면 우리는 순례자가 아니라, 방황하는 나그네에 불과할 것입니다. 나는 순례자인가 나그네인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p.13)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학력은 일정 기간의 수업을 마치면 학위가 수여되고 인정된다. 또 오랜 현장 경력은 스펙이 되고, 자랑이 된다.
그러나 신앙의 여정은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인정되는 것도, 자랑거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신앙의 길을 출발한지 언 20년이 지났다. 어떤 이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이겠고,어떤 이에 비해서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20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그 어떤 자랑도 경력도 되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주님 앞에 나 자신을 점검하고 단련해야할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한 <순례자>일 뿐이다.

성경 다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기독교고전 <천로역정>은 바로 한 순례자의 이야기이다.
오래전 청년 때 읽고는 그 깊이와 은혜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작품인데, 이번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읽고싶어지는 책이 되었다. 이동원 목사님은 <천로역정>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경기도 가평에 천로역정 순례길를 조성하면서 1년에 걸쳐 천로역정으로 강해설교를 하였다. 천로역정을 좀더 쉽게 천천히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신앙의 길을 잠잠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고난보다는 축복을, 가난보다는 부함을, 약함보다는 강함을 좋아하는 본성이 언제부턴가 흐물흐물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았는지...두렵고 부끄러웠다. 마치 본향이 없는 사람처럼, 이 땅에만 만족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들. 나는 천성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인지, 방황하는 나그네에 불과한 자는 아닌지 물어본다.
 


<천로역정>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적 영성을 '구원의 영성', '성화의 영성', '완주의 영성' 세가지로 요약해주면서 주인공 크리스천의 순례길 여정을 통해 고난, 전도, 좁은 문, 십자가, 믿음, 겸손, 절망, 천국 등의 이해를 돕고 있는 책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순례길에서 깨닫게 되는 <구원>의 은혜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십가가를 지는 것은 철저한 자신에 대한 죽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면 그것이 바로 다시 사는 삶, 부활의 길이 됩니다. 순례자 크리스천은 결국 혼자 순례의 길, 구도의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내 남편이, 내 아버지가 천성에 도달한 소식을 접한 가족들도 <천로역정> 2부에서 순례의 길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가 지불을 피하는 사람들, 십자가를 피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선물은 보장되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먼저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야합니다." (p.50)
지금의 교회는 넓은 길을 걸어가길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의 설교는 넓은 길을 가도록 응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나는 넓은 신앙의 길을 가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이 가신 길과 천로역정의 주인공이 걸어간 순례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니었다. ​
참된 순례길을 걸어가기를 도전하는 책,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다시금 읽고 신앙의 기본을 점검하도록 독려해주는 책이 되었다.
더불어 나의 믿음이 어떤 고난에도 변치 않기를,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배반하는 자 되지 않기를, 사랑하는 교우들이 일평생 믿음 잃어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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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젊은 시절부터 니체가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점에서는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의 탐탁찮음은 40년 이상 니체를 읽고 연구한 저자와 빗대어 말할 수는 없다. 그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정작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철학은 다소 어렵기도 했고, '신은 죽었다' 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린 기독교에 반하는 그의 사상을 일단 부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의 글에 따르면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일본에서도 '싸우는 철학자'로 통한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와닿게 된다. 그렇게 니체도 이 책의 저자도 왠지 닮은꼴이다.

니체의 생각에도, 저자의 생각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면에서는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착함, 연약함, 선량함 등에 대한 비판이 왜 나왔을까 생각해보면서 일단 접근해보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기독교에 반하는 사상을 내놓고, 말년엔 정신병으로 생을 마감한 니체. 니체는 왜 그토록 '약자=착한 사람'을 싫어했을까? 니체가 말하는 약자의 정의를 풀어쓴 대목이다.

"약자란 '나는 약하니까'라는 이유를 뻔뻔스럽게 내세우면서 그것이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정당한 이유라고 믿는 사람, 자신이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이라는 점에 대해 전혀 부채감을 느끼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당연하다는 듯 내보이며 약자의 특권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p.33)

저자는 현대 일본에서 나타나는 신형 약자들을 니체의 약자 비판과 연결해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비판한다.

"그리하여 현대 일본에서는 기괴하고 흉포한 응석을 부리는 약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모두 그들의 약함을 무기로 삼은 강함에 벌벌 떨고 있다." (p.64)

책을 읽는 동안 <착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까지 거세게(?)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착함과는 다른 착함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되면서 좀더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착함, 약함은 어떤 것일까?
사도 바울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였던 그 약함,
예수님이 가르쳤던 사랑의 계명은 현대 일본 사회와 19세기 독일 사회에서 나타난 '약함', 착함'과는 다른 자기부정, 자기희생이다.
니체가 혐오했던 <약함>은 나약함이라고 하면 더 맞지 않을까? 그 약함을 기독교 전체로 규정짓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저자가 니체의 책을 평생 독파하면서 내린 결론을 보자.
"나는 니체의 착한 사람 공격이나 동정심 비난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약함, 비열함, 선량함을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가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유대인스러운 요소에 대해 증오했던 것처럼." (p.21)

어쨌든 니체가 말하는 우리 안에 있는 그 <착함>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 <착함>으로 포장되었던 실제하는 약함, 비열함, 선량함을 벗겨보게 하는 책. 스스로 약함을 자랑 삼고, 집안으로 숨어들어가는 이들, 자살을 선택하는 일본 사회가 좀더 강해지길 바라는 저자의 외침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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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젊은 시절부터 니체가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점에서는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의 탐탁찮음은 40년 이상 니체를 읽고 연구한 저자와 빗대어 말할 수는 없다. 그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정작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철학은 다소 어렵기도 했고, '신은 죽었다' 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린 기독교에 반하는 그의 사상을 일단 부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의 글에 따르면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일본에서도 '싸우는 철학자'로 통한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와닿게 된다. 그렇게 니체도 이 책의 저자도 왠지 닮은꼴이다.

니체의 생각에도, 저자의 생각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면에서는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착함, 연약함, 선량함 등에 대한 비판이 왜 나왔을까 생각해보면서 일단 접근해보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기독교에 반하는 사상을 내놓고, 말년엔 정신병으로 생을 마감한 니체. 니체는 왜 그토록 '약자=착한 사람'을 싫어했을까? 니체가 말하는 약자의 정의를 풀어쓴 대목이다.

"약자란 '나는 약하니까'라는 이유를 뻔뻔스럽게 내세우면서 그것이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정당한 이유라고 믿는 사람, 자신이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이라는 점에 대해 전혀 부채감을 느끼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당연하다는 듯 내보이며 약자의 특권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p.33)

저자는 현대 일본에서 나타나는 신형 약자들을 니체의 약자 비판과 연결해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비판한다.

"그리하여 현대 일본에서는 기괴하고 흉포한 응석을 부리는 약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모두 그들의 약함을 무기로 삼은 강함에 벌벌 떨고 있다." (p.64)

책을 읽는 동안 <착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까지 거세게(?)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착함과는 다른 착함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되면서 좀더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착함, 약함은 어떤 것일까?
사도 바울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였던 그 약함,
예수님이 가르쳤던 사랑의 계명은 현대 일본 사회와 19세기 독일 사회에서 나타난 '약함', 착함'과는 다른 자기부정, 자기희생이다.
니체가 혐오했던 <약함>은 나약함이라고 하면 더 맞지 않을까? 그 약함을 기독교 전체로 규정짓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저자가 니체의 책을 평생 독파하면서 내린 결론을 보자.
"나는 니체의 착한 사람 공격이나 동정심 비난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약함, 비열함, 선량함을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가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유대인스러운 요소에 대해 증오했던 것처럼." (p.21)

어쨌든 니체가 말하는 우리 안에 있는 그 <착함>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 <착함>으로 포장되었던 실제하는 약함, 비열함, 선량함을 벗겨보게 하는 책. 스스로 약함을 자랑 삼고, 집안으로 숨어들어가는 이들, 자살을 선택하는 일본 사회가 좀더 강해지길 바라는 저자의 외침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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