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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평점 :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인, 피, 원한... 이런 소재들이 싫다. 무섭고 끔찍하다. 그래서 책으로도 영화로도 굳이 만나지 않는 성향인데 이번에 《초크맨》을 읽고 서평을 쓰려니 지금도 혈압치수가 높아지는 듯 하다.
참 잘 쓴 소설이다. 이야기의 구성과 문장의 표현이 매력이 넘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총 39개국에 계약될 만 하다. 한국어판 표지도 소설 《초크맨》을 너무 잘 표현해주었다. 아이들이 그린 귀여운 그림 같은 이 분필 그림 위로 피 튀기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연상해야한다니...
이야기는 1986년의 사건과 30년이 지난 2016년을 오가며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모두 소설의 화자인 에디의 기억을 더듬는 형식이다. 엔더베리라는 장소적 배경 안에 참 많은 사건들이 말그대로 스릴 넘치게 일어났다. 1986년 지역 축제가 열리던 날 일어난 댄싱 걸(일라이저)의 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에드와 교사 핼로런, 그리고 다섯 명의 패거리(엄마인 내눈에 맘에 들지 않는 녀석들) -메탈 미키(미키 쿠퍼), 호포 (데이비드 홉킨스), 뚱뚱이 개브, 에디 먼스터(에디 애덤스), 니키(니콜라 마틴)- 와 그 가족들의 사건, 특히 미키 형 션 쿠퍼의 죽음, 호포의 개 머피의 죽음, 해나의 임신, 마틴 목사 사건... 그리고 2016년의 에디와 하숙인 클로이, 미키의 죽음, 그리고 패거리 친구들에게 전해진 분필과 초크맨 그림...그중 단연 가장 큰 축이 된 숲속에서 발견된 소녀의 잘려진 시신, 그리고 사라진 머리...바로 댄싱 걸의 살인사건이다. 말그대로 엔더베리에 간헐적으로 일어나던 일이 마침내 '최악의 사태'로 벌어진 것이다.
"한 소녀의 머리가 황갈색 낙엽 더미 위에 놓여 있었다. 아몬드 모양의 눈은 차양처럼 우거진 단풍나무와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나뭇가지 사이를 머뭇머뭇 뚫고 숲속 땅바닥 위로 금가루를 뿌리는 햇살을 쳐다보는 건 아니었다.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딱정벌레들이 동공 위에서 종종걸음 쳐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어둠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소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대감에 손가락을 떨며 그녀의 머리칼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차가운 뺨을 쓰다듬었다. 그런 다음 그녀의 머리를 들어서 너덜너덜하게 찢긴 목에 들러붙은 몇 장의 낙엽을 털고, 분필 조각이 몇 개 들어 있는 배낭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마흔이 넘은 에디의 눈으로 읽혀지는 현재 시점과 지극히 '어린아이'스러운 열두 살 에디의 눈으로 기억하는 과거 시점을 너무 잘 섞어 놓았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 메시지는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예단하지 않고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읽으면 더더욱 재미있는 소설이다. 미키가 남긴 단서 '머리카락'이란 메모를 보니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 더 생생해진다.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
소설은 스릴러이기도 하면서 등장인물들이 30년이란 세월동안 성장해 온 모습을 그려내주는 부분에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부모형제와 얽힌 각기 다른 사연들 속에서 그들은 그럼에도 성장했다. 친한 친구들이지만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참 많다. 몰랐던 것도 많다. 에디가 사실대로 모든 것을 말했다면(그가 말했어야할 건 한 두개가 아니다)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소설 속 에드는 보통내기는 아닌 게 분명하다. 많은 사건들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잔잔한 어조와 태도를 보이는 점, 특히 죽은 댄싱 걸을 대했던 태도를 볼 때 그랬다. 아무튼 '에드'와 '초크맨'을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딸이 생일 선물로 받은 분필로 집앞에 함께 그려놓은 그림 덕분에 탄생한 소설이라니 더 놀랍다. 에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짓말과 비밀'이 한데 뒤엉킨 소설이었다.
"이제 그리운 추억 여행을 떠나야 하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햇빛이 아른거리는 오솔길을 걸으며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이 길은 웃자란 거짓말과 비밀이 한데 뒤엉켜서 어두컴컴하고, 움푹 파인 구멍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길에 초크맨이 있다." p.247
"개브도 션의 자전거를 훔쳤을 때 그렇게 될 줄 몰랐다. 나도 핼로런 씨의 집에 반지를 두고 나왔을 때 그렇게 될 줄 몰랐다." p.326
결말을 이제 다 알게 된 이상 《초크맨》을 처음 부터 다시 읽어내려 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럼에도 왠지 충분히 스릴넘칠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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