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브 (양장) 소설Y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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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영어덜트 소설이지만 왠지 모를 무거움이란...

성장과 회복, 우정과 인간관계를 계속 생각하는,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2057년 홍수로 물에 잠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물꾼 소녀 '선율', 기계를 제법 다룰 줄 아는 '지오' 인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탄생한 기계 인간 '수호', 만인의 삼촌인 '경', 말주변이 없는 '우찬' 그리고 이 홍수 난리 통에 살아남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가 쌓여 지금 이 순간이 된다. 지금 이 순간이 모여 미래가 되는 것처럼. 하루하루 현재를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소설의 설정이 홍수로 물에 잠긴 한국이든, 빙하기가 다시 시작이 되었든, 화산 폭발로 세상이 엉망이 되었든 인간이 살아가는 형태는 비슷하려나? 란 생각이 드는 소설이기도 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누군가를 아끼고 멀리하고, 죄책감을 갖거나 포기하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아직은, 큰 이변이 없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다이브>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문뜩 들었다.

문장을 꾹꾹 담아 읽게 된다. 그리고 영어덜트 소설임에도 한큐에 이야기를 다 읽어나갈 수 없다. 머릿속과 마음을 어지럽힌다. 왜였을까? 어쩌면 그 이유는 다른 상황이지만 우리도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소홀해서 추억을 읽어버린 건 아니야. 기계들이 너무 일을 잘했을 뿐이지. 그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계들이 너무 일을 잘하고 있는 요즘, 사람과 사람이 만나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혼자 멍하니 스크린을 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는 추억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보여주기식으로 추억을 조작하고 있는 것인지 혼동마저 올 때도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너는 문제가 뭔지 아냐?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야."

요즘도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순 말주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생각조차 없나? 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같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래서 옛말에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값은 다더니' 란 문장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정여울 작가의 <마흔에 관하여>란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예전에는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는 애써 참다가 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아예 피해 다녔다. 예컨대 성차별적인 발언을 아주 흥겨운 농담이나 되는 듯이 지껄이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는 곧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다시는 그 사람을 안 볼 수 있을지 소극적인 탈출 궁리만 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소심한가. 나는 이제 이렇게 대놓고 말한다. "방금 그 말씀은 듣기가 좀 불편하네요.(...) 상대방의 얼굴은 순간 일그러지고, 분위기는 일시에 찬물을 끼얹는 듯하다. 그래도 괜찮다. '불편함'보다는 '옳지 않음'이 더 무서운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상황에 맞게, 말해야 하는 능력은 우리 모두 키워야 한다. 제대로 말을 하려면 그전에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생각하는 시간을 '사색'이라 말한다면, 우리는 그 '사색'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고 바쁘게 하루하루를 헤쳐나가기에 더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문제점이 하나둘 수면 위에 올라오며 사회가 이런 모습으로 형성되어가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우리 딸, 착하지?

부모님이 원하는 게 채수호인지, 예쁘고 착한 딸인지 항상 궁금했다.

우리가 너한테 많은 걸 바랐어?

부모라면 한 번쯤 해봤을 말이다. 필자 역시 착한 딸로 살아주길 바라는 부모님 덕분에 착한 여자 콤플렉스로 10대, 20대, 그리고 30대를 살았다. 지금 40대엔 떨쳐버리는 연습 중이고.

그런데 혹 나는 우리 아이에게 똑같은 것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주 자주 나의 과거를 꺼내온다.

아이와 나는 다른 인격체다. 나의 착한 아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바른 어른으로 성장하면, 그뿐이다. 밥벌이는 마음이 곧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워본다.

"내가 좋아서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행복하게 살 이유가 없잖아.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해지려고, 남을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고 하나둘 성취해 내면 살아야겠다. 강하게 이 마음이 밀려온다.

어머니는 예전이었으면 그냥 죽었을 텐데, 기술이 쓸데없이 좋아져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했다. 살아야 할 사람이나 죽어야 할 사람이나. 나는 그게 쓸데없이도 아니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여전히 그래.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을 끝마치고서는 내심 홀가분했던 것도 사실이었어. 슬픈 만큼 마음이 가벼웠고, 그래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 모는 게 끝났는데도 세상이 더 끔찍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어. (pg 181)

중풍과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를 11년간 간호하고 보내드린 한 사람이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그녀도 나이가 들며, 몸이 하나둘 아파질 때마다 죽을 만큼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최대한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지금도 검소하게 생활하신다.

필자 역시 그분의 사상을 본받아 그렇게 살려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도 '슬픈 만큼 마음이 가벼웠기'마음을 경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긴 병 앞에 장사 없다고.

이 문단에서 내 친할머니와 우리 엄마, 그리고 나의 노년을 생각하게 된다.

왜 살아야 해?

누구를 위해서 그래야 하는 거야?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자문하게 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질문이 튀어나오겠지.

죽지 못해 사는 거야~ 숨이 붙어 있으니까.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 소명을 갖고 살자.

살고 싶으니까.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너희(아들, 딸)를 위해서. 아니, 아니야, 나를 위해서.

그러니 너희들도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남에겐 관용을 베풀면서. 그러면 되는 거야.

툭툭 던지는 질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소설이다. 지금이나 미래나, 재앙이 오거나, 지금이 재앙이거나, 결국 우리는 살아나가겠지.

우리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더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영어덜트 소설답게 아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생각과 진한 감동을 주는 <다이브>를 만났다. 한동안 등장인물이 내 안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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