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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 상 -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ㅣ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3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4년 7월
평점 :
병자호란과 중동전쟁에 이은 해당 시리즈의 3번째 편이다.
흔히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다. 다소 구태의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으로도 보이는 이 말은, 실은 익숙한 가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지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임용한이 바로 그렇다. 신작이 나왔을때 꼼꼼하게 따지고 어떤책일지 비교해 볼 필요도 없이, '아 나왔구나, 믿고 볼수 있겠다'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그런 느낌이다.
개인적으론 저자가 조선사 전공인만큼 과거 삼국시대 및 고려등 여타 시대상을 다룬 저서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리란점은 넉넉히 짐작할수 있거니와, 종종 지적되곤 했던 사소한 오류들도 크게 없으리란 기대심리를 주는 임진왜란 편이었다.
임진왜란을 다른 모든 저서에서 뺄수 없는 몇몇 인물이 있지만 그중 한명을 꼽으라면 이론의 여지 없이 이 분을 언급할것이다. 바로 '이순신'
늦은나이에 무과에 급제한 칠전팔기의 오뚝이, 북방 변경을 지키던 무관으로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 전란이 임박했을때 많은 기대를 받으며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였으며,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고 삼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통제사의 지위에 올랐으며, 그 전장의 마지막 또한 자신의 목숨으로 장식한 살아있는 호국의 화신 등등.
그야말로 지칭하는 호칭이 너무나 많고 한국인이라면 모를수가 없는 참군인의 표본이다.
하지만 그 만큼 지나친 신성화와 관념화가 우리에게서 이순신과 그의 조선수군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방해해 왔던것은 아니었을지 한번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난중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흡사 소설과도 같은 흡입력으로 우리에게 당시의 상황을 천천히 설명해준다. 이 기록은 어떠한 내용이었으며, 왜 이런 기록이 남았는가 등등. 그리고 우리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왔던 부분에 대해 되 짚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한 예로 영화나 미디어등을 통해 우리에게 묘사된 조선수군의 전투는 장쾌하게 왜선을 들이받고 무너뜨리는 거북선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삼도수군의 최전선에서 철갑을 두른체 용머리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조선의 수호신. 하지만 저자는 이 이미지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조선의 선박은 평저선으로, 충각이나 도선을 주로하던 고대 그리스의 선박과는 구조적으로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단병접전에서 현저한 약점을 보이던 조선군이 왜군에게 오히려 도선을 건다? 생각해보면 분명한 모순이다. 그동안 이 모든 괴리감을 단순히 '철갑을 두르고 가시로 무장한 거북선'으로 애써 무시했지만 사실 이는 전략적으로 생각할때 있을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 모순의 시작으로 '당파' 흔히 우리가 충파전술이라 부르는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전술의 잘못된 이해를 지적한다. 당파를 사전적 어휘 그대로 해석해서 '들이받는' 전술이 아닌, 적선을 대파시켰다는 일종의 관용어구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순한 의견개진이 아닌 난중일기와 실록 전반에 걸친 기록 대조를 통해 저자의 가설을 독자에게 친절히 설명해주는것이다.
이순신이 등장하면 항상 같이 논하여지는 인물들, 선조와 원균에 대해서도 최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다. 제왕학 교육을 통해 당대 조선이 제공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선조가 왜 그리도 이순신에 관하여는 편협한 모습밖에 보여줄수 없었는지(심지어 유래없던 승진을 지시한것은 본인이었다)논한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제대로 된 상비군과 야전군을 제도적으로 억눌러온 조선에서 전시 특수상황이란 기류를 타고 삼도의 수군전력을 통솔하게된 야전군 사령관을 견제하는것은 지극히 타당한 조치였다는것. 심지어 전란이 길어지며 이순신이 양성한 조선수군이 그대로 군벌화될 가능성또한 있었으며 둔전병+해당 지역의 백성들 또한 이순신의 지지기반이 될 가능서이 점차 커졌다는것.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이순신은 삼남지방의 군권과 민권을 모두 장악한 말 그대로 총독과도 유사한 권력을 지닐것이고, 이런 강력한 군사집단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이미 고려말에 태조 이성계 본인이 몸소 증명한 바 있다는것.
즉, 단순한 시기 질투(물론 그런 감정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의 문제가 아닌, 선조에게는 문자 그대로 종묘사직의 안위가 달린 중대사였다는 느낌이다.
이렇듯 임용한 선생의 저서는 언제나 새로운 시각으로 기존에 익숙한 문제를 바라볼수 있게 해준다. 계속되고 있는 시리즈의 차기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저자의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