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2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삶의 목적은 구름위 만에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

 

애덤 어윙은 나름 근면한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의 보편 타당한 인간성을 믿으며 자신도 그것에 기반을 두고 살아왔지만 그가 방문한 야생(?)의 세계에서 인간은 동물에 가까웠다약육강식의 자연이론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심지어 자신의 신뢰를 이용하여 자신을 도구화하는 친구(?)의 모습 등으로 죽어간다그리고 얼떨결에 구해준 한 오리모리족 청년을 통해 다시 살아나면서 인생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그가 꿈꾸던 노예해방은 현실의 역사에서 이루어 졌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재능이 있지만 성실하지 못한 작곡가이다방탕한 생활(도박여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네덜란드의 어느 시골에서 은둔해 산다는 은퇴한 작곡가를 찾아가 기생할 생각으로 그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그의 새로운 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선생의 재능과 자신의 재능을 살려내고 그가 원하던 방탕한 삶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듯 하다그러나 그를 도와주는 듯하던 노쇠한 작곡가가 실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쇠락하던 자기의 명성을 살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절망한다그런 와중에도 생의 마지막에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을 남긴다프로비셔의 삶을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그 가 전에는 한 번도 완성하지 못한 작곡을 해 낸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성공이고 가난과 실연으로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은 비극이다.

 

루이자 레이는 프로비셔의 친구였던 식스 스미스 박사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원자력 발전소와 정부 권력자들이 은페 하고자 하는 원자력 사업의 문제에 대한 특종을 잡게 된다물론 이런 거대 기업/관료 조직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데 결국에는 자신만은 살아남고 원자력 발전소의 심각한 결함은 밝혀진다성공인가?

 

실패한 출판업자(인생?) 티머시 캐번디시는 폭력배들과 채무자들을 피해 도피를 하던 중에 동생이 예약해 준 호텔에 묶게 되는데 그곳은 실상 치매 노인들을 수용하는 요양원이었다평생 어떤 것에도 성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그는 요양원 탈출에 온 힘을 쓴다요양원에서 만나 친구들과 탈출을 하고 의도 하지 않았던 책이 인기를 끌면서 그이 말년에 꽃이 핀다이 것은 확실히 성공이다맞는가?

손미-451은 파파송 회사의 배양탱크에서 태어난 복제인간클론이다단순히 어떤 인간의 DNA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기 싫어하거나 위험한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대체물리프리컨트 중에 하나이다또한 단순히 강제로 일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키는 일만 하다가 내구연한이 차면 해체해서 다른 자원을 재활용하는 말 그대로의 기계이다그녀가 어느 날 상승이라고 불리는 자각을 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권력이 짜 놓은 극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순응하여 그녀가 결과적으로 얹은 것은 처형을 당하는 것이었지만 대신 인간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자각의 과정을 남겼다이 역시 실패인가성공인가?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 시간인류문명이 사라질 규모의 전쟁 이후 외딴 섬에 사는 자크리는 어린 시절 자신의 부주의로 폭력적인 코나 족에게 아버지를 잃고 형을 노예로 끌려가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산다어느 날 전쟁 전 문명을 가진 메로님의 방문으로 인류의 조상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코나 족은 섬 전체를 약탈하고 결국 그는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하지만 그는 다른 섬으로 탈출하고 생을 이어갔다성공인가실패인가?

 

 

서로 다른 배경들과 다른 서로 사건들과 거기에 구술 방법과 문체 마저도 상이한 이 6가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했다인생이 늘 그렇듯이 성공이다실패다갈라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윤회가 된 대상이 어떤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아니거나 누군 인지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애초에 이 단락을 시작하면서 6명의 주인공들이 어떤 이유로 윤회의 굴레에 빠진 것이라는 전제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전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굳이 나열해 보자면 윤회의 주체들인 어윙프로비셔레이캐번디시손미메로님인데 캐번디시에서는 윤회를 의심해(?) 볼만한 증거(?)인 혜성 모양의 모반의 존재 여부나 이전 생의 기록을 본 순간 느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의 화자이며 그 어떤 목적으로 다가가는 주체인 자크리는 정작 윤회의 증거인 모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오히려 그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 가는 메로님이 그 모반을 가지고 있다윤회( 윤회가 그 윤회라면)라는 개념을 좀 더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결국 필자가 생각해 건데 이들의 겪는 윤회의 굴레는 우리가 아주 표피(表皮)적으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불교적 윤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전생에 이루지 못한 열반 또는 쌓은 업보를 완성하기 위해 다음 생을 사는 것이라기 보다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넘나 들며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흐름이 이들 사이를 흐르기 때문에 표면적이거나 심상적인 동질성이 부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현명한 해석이 아닐까 한다.

 

 


 

인류의 구름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저 구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내가 찾는 그 곳그 것이 있지 않을까꽤 철학적인 명제로도 보인다또 종교적으로 볼 때도 큰 의미가 내포된 듯해서 보고 듣기에 좋다하늘을 물로 보고 구름을 하늘 물위에 뜬 징검다리로 본다면 유대교의 교리와도 비슷하고 건너가보면 그것이 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불교의 교리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와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 느낄 수도 있다.

 

인류가 찾아야 할 것 즉 구름 길을 따라 건너 건너 가서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손미 451이 유일회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완성하고 재판에서 선언한 교리에 정리가 되어 있다그리고 그것은 어웡의 일지 마지막에 저자가 어웡의 입을 통해 주저리 주저리 풀어서 실천 과제로 말하고 있다인류가 선사시대에도 과거에도 늘 평안(평화안녕 등등)하게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을 해왔다인류에게 평안만이 바로 행복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찾아낸 방법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것이었다생물학적으로 약한 신체구조를 가진 인류는 역사 이전 시대에는 포식자나 먹이 감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그 행복과 평안추구 했고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 넘는 뇌를 가진 후에는 물질과 권력을 쌓으면서 그것을 평안으로 추구했다.

 

친구의 신뢰를 이용해 친구의 가방에서 돈을 훔치려고 위험한 항해와 불편한 거짓 행동까지 하고 같은 처지임에도 자기 보다 약한 원주민을 정복하여 자신의 평안(?)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는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고 자존심을 짓밟았다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까지도 속였다그리고 더 커진 평안에 대한 목마름은 이제 자신의 동족과 자신의 삶의 터전도 팔아버릴 기세로 달려든다결국 어느 날 동족을 노예로 부리는 것도 성이 안 찼는지 동족을 죽여 내 배를 채우기까지 할 것이다.그렇게 멸망으로 치닫다가 문득 잠시 돌아보면 주위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공포스런 고요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문명이 거의 사라진 전쟁 후 외딴 섬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까지도 당장에 먹고 마시고 싸버릴 것으로 소모하는 코나 족이 있는 것을 보면 구름 끝에 무엇이 존재할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이가 광야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그들은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가슴 속 깊이 아직 희망을 가진 어떤 이들의 마음을 열 힘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그들이 하나라도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고 불씨를 다시 살릴 기회가 있는 것이다그 업보 때문에  어윙프로비셔레이캐번디시손미매로님자크리 가 그들의 힘겨운 삶을 열심히 살다가 죽은 것이다그리고 그들 사이는 어떤 경로 이건 희망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그 들이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고 구름의 길을 보면서 누군가 그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내가 걸어갈 길이고 또 누군가 걸어갈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것들을 느낄 수 있다그 들은 우리 중에 어떤 이었을 것이고 어떤 이 이며 어떤 이 일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인류는 결국 하나에서 시작된 개별적 존재이면서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속 가능한가?

 

지금은 알 수 없다나라는 작은 존재로는 인지 할 수 없다만일 내가 하루 하루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남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언젠가 내 주변은 내가 배설한 분비물과 내가 죽인 것들의 흔적만이 남아 침묵의 세상이 될 것이다반대로 내가 나의 친구들과 나의 자녀를 위해 나의 배 채우기를 조절하며 산다면 인생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내 가내 가족이 내 민족이 그렇게 한다면 그 지속 시간은 조금 더 조금 더 연장될 것이다그 후에는그 후에 어찌 될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내 생각 밖의 것까지 고민하면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그래서 아름다우니 그 인생을 즐기는데 그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

 

지금 남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남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내 안에 탐욕이 있다는 증거이다남과의 비교에서 만족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비교 후에는 반드시 절망하고 욕망한다그리고 그 결단(決斷)은 남을 밟고 올라서서 기어이 내가 꼭대기에 서서 나보다 높은 이가 없게 하고자 할 것이다욕망으로 사느냐 아니며 남겨두고 외치며 사느냐의 선택은 스스로 할 수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그 책임이 언제 지워질 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사람들은 알 수 없다사람들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스스로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는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