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권오섭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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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당시 국민학생이라 불리던 10세 전후에는 동요 이외에 딱히 알던 노래가 없었다. 가끔 TV에서 듣게 되는 유행가는 있었지만 즐겨 부를 만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까지 아직 음악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음악 때문에 충격을 받은 일이 생겼다. 6학년 가을 운동회 때 여자애들이 준비하던 매스게임(단체로 리본을 들고 율동을 하는 것이었다.)에 사용된 음악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어서 너무 놀랬다.

바로 아바의 'Super Trooper'였다. 아바의 곡의 사촌 형의 LP판으로 한 번 들었었지만 기억하기 있지 못하다가 운동회 준비를 통해 이 후 계속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련하게 처음 들었던 때의 느낌이 기억난다. 나중에 당시 친구들의 많은 수가 여러 경로로 아바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필자가 소유한 최초의 것은 LP도 아닌 새것도 아닌 중고 테이프였다. Super Trooper’와 ‘Honey Honey’가 포함된 아바의 앨범이었다. 이 테이프가 늘어나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까지 들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퀸이 대세였던 것 같다. 필자의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오신 소니 공 테이프를 하나를 주는 조건으로 퀸을 녹음해준다는 친구에 말에 필자는 또한 번 벽을 느끼게 되었다. ‘퀀이 뭐냐?’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님이 ‘포터블카세트’를 사주셨다. 당시에는 음향기기를 사면 데모용 매체를 하나씩 주었는데 당시 금성사는 척 멘지오니의 ‘Feel So Good’를 대우전자는 가제보의 ‘I Like Chopin’이 포함된 데모 테이프를 주었다. 이 두 테이프를 시작으로 필자는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중학교 시절부터 듣기 시작했다. 좀 빠르게 팝을 듣기 시작한 친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것이었는데 일단 늦게 시작한 만큼 흡수는 빨랐다. 우리 세대라면 거의가 해보았을 일들 예를 들면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어주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나만의 앨범 만들기. 레코드 점에 원하는 곡을 적어서 테이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 등등… 

대학생이 되어서야 집에 LP가 생겼다. 동생이 직장에 다니면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도 중고앨범을 몇 장 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기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더 좋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의 첫 LP는 정작 선배가 사주었다. 척 멘지오니의 ‘Children of Sanchez’ 앨범이었다. 그 형은 군대가 가기 전날에 이걸 사주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또 당시에는 CD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플레이어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역시 테이프 구입이 더 많았다. 필자가 처음 구입한 CD는 수전 베가의 ‘Tom Dinner’였다. 플레이어가 없어서 4년 후에야 들어볼 수 있었다.

둘째 동생이 음반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집에는 음반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CD는 물론이고 LP도 많이 늘었다. 필자도 직장에서 월급날 팀 동료들과 음반을 하나씩 사서 돌려 듣는 습관이 생겼고 집의 한쪽 벽에는 아예 CD LP만 놓는 장이 들어섰다. 동생은 잠깐 플로스레시브와 해비메탈 담당을 한 후에는 앨범의 대부분이 이들 장르였다. 대부분의 난해한 음악이었고 뉴트롤스, 쉐이드를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재즈음반도 꽤 수집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동생의 재즈 음반중에서 괜찮은 곡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GRP(데이브그루신, 리리트너, 펫메시지) 레이블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필자는 클래식, OST, , 가요를 주로 수집했는데 말랑 말랑한 음악을 싫어하는 동생이 본의 아니게 음반을 정리하면서 내 OST들을 팔아 버리기도 해서 약간의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필자의 책은 사실 이전에 몇 권의 입문학과 정치 관련 책을 읽고 나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든 책이다. 옴니버스 형식의 책 구성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뭐하기 좋은 음악 100선’ 이런 식의 선곡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 없이 잡아든 책이다.

 

저자는 소위 486 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아날로그 문화의 전성기를 겪은 분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요즘 20대는 알 수도 없는 정치적인 격동기를 겪었고 경제적으로는 늘 부족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의 혜택을 충분히 겪은 세대이다.

저자가 지금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충분히 흡수한 순전히 아날로그적 감성과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하는 앨범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서 이런 문화적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소개된 앨범 중에 딱 만반 좋아한다. 필자는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호텔 캘리포니아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반 정도는 그냥 기계적으로 읽어나갔다.

그러나 나머지 반은 나름 필자도 좋아하는 곡이고 또 그 중에 반은 매우 좋아라 하는 곳이라 그 부분을 읽을 때는 느낌이 좀 더 다르다. 또 그 중 반은 본가 CD장에 지금도 있고 CD_R 어딘가에 MP3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은 지금은 거의 안 듣는다. 정확히는 요즘 음악을 잘 안 듣는데 그래도 이 곡명들을 보거나 듣는 것 만으로도 이 곡과 관련된 나의 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최근 요행하는 곡들이 20년 정도 지난 후에 어떤 이들의 추억으로 남고 누군가는 여전히 계속 들으면 꼽십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건 아날로그 감성이 가지는 강점 중에 하나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먹고 자라고 디지털 감성을 만들어온 세대로서 그 문화적 풍부함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한다아날로그 감성을 모르는 세대라면 선배/부모들이 듣던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보면서 가슴이 따스했던 그 들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볼 것으로 감히 조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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