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다음 글은 필자가 2010년 2월에  굿바이 사교육 를 읽고 쓴 글을 읽어 보고 엄청난 오타와 이상한 부분을 정리하면 재 구성하고 내용을 보강한 글이다.



 밖은 봄이고 여름인데...



어떤 학생의 유고시집에 나오는 싯구절에 지하철에서 살짝 눈물이 났다.

고등학생이 쓴 시인데 그의 유고시집에 실렸다그 친구의 유언대로 부모가 출판한 시집이다.

 

봄이라고 봄바람 살랑거리고 여름이라고 햇볕은 아른아른 거리며 가을이라고 형형색색으로 세상은 변한다시간은 자연이 정한 순리를 따라 제대로 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계절의 변화가 없다단지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공부의 계절'




대학가서 정말 해야 할 일

 

필자도 입시를 치뤘다. 고2, 고1, 중3 이렇게 일찍 시작하지는 않았다. 고3, 단 10여 개월만 바짝 공부를 했다. 물론 고 1때부터 방학 보충수업을  듣긴 했다. 학교는 소문난 돌머리 학교(학교가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공부 잘하던 친구들도 졸업할 때는 돌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 특이하게도 자율적인 학생 활동을 중시 했었다.)에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중압감은 없었다. 집에 늦게 가는 야자가 무척 싫긴 했지만 공부하는 시간 만큼은 집중했던 것 같다. 다만 성적이 워낙 낮아서 지원할 학교를 선택할 때 고민이 꽤 심해졌다.

 

내 성적으로는 서울 외의 소위 지방대 밖에 갈 때가 없었다. 그 때는 집안 상황은 전혀 고려치 않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지방의 사립대에 입학 했다면 등록금에 생활 비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겨우 찾아낸 학교는 춘천의 어느 국립대 그리고 공대 중 에서도 가장 낮은 점수의 학과였다. 필자가 대학을 가던 시절만 해도 웬만한 공대 출신이라면 취업걱정이 없었다. 지원한 학교와 과는 그 웬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점수 때문에 지원했고 막상 원서를 접수하러 기차를 타고 춘천을 가는데... 왜 그리도 먼지... ㅋㅋㅋ 죽을 맛이었다.

 

같이 간 친한 친구 9중에 나만 붙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붙은 사실을 몰랐다. 지방 대이다 보니 정보 입수가 안되었던 모양이다. 159명에 내가 하나 더 추가해서 160명이 전기에 붙었다.(그런 학교다. 그 정도 보내면서 무슨 공부 가르치냐 하겠지만 그 학교 나름 매력 있었다.) 졸업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갔더니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하나 더 있다. 그 과에 붙을지도 장담 못했던 터인데 시험 보러 갔을 때(당시는 선지원 후시험제도로 지원한 학교에서 정해진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았다.) 도와주신 다른 대학교 교수님을 통해 합격은 물론이고 장학생이 된 것이다. 사립대의 반 밖에 안 되는 학비에다 또 반 만 내면 된 것이다.

 

내 자랑이 되었지만 자랑을 하려고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반전은 입학을 하고 나서 일어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특별히 두각을 보이는 재능(그림과 사진 빼고)도 없고 잘 놀지도 못하면서 공부는 늘 중간이었다. 그런데 큰 시험은 이상하게 잘 치뤄냈다. 고등학교는 전교 20%로 입학해서 들어가서 첫 시험에서 반에서 45등을 했고 졸업할 때는 적어도 전교에서 10% 안에 들었다. 공부는 잘 못하는데 대학은 장학생으로 갔다. 지방 국립대의 별볼일 없는 과에 장학생이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가기 전과 1학기 지난 후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걸 스스로도 발견했다.


난 어눌해서 4-5명만 보인 자리에서도 말도 잘 못하고 뭔가 내어놓고 잘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1학기를 보내고 난 후 완전히 나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늘 자신감이 넘쳤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역 방송국도 들락거리고 동아리 행사에 쓸 비용 모금을 위해 기부금도 뻔뻔(?)하게 모집하고 다녔고  학내 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은 취업 준비를 하는 곳이 되었는데 사실 대학은 공부를 하는 곳이고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경험을 미리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간이다. 그 특권을 못 누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또 그 기회를 박탈해 버린(본의던 아니던 간에…)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돈 벌러 대학가니?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는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또 실행하여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해야 함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아이들의 대부분은 대학을 가는 이유가 매우 현실적이고 형이하학 적이다 그 목표는 나중에 남보다 더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관심이 돈과 관련되어 있다. 이건 어른들 특히 부모가 책임이 크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보다 잘나고 남 위에 군림하라고 가르치거나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생활한다. 그 도구는 잘 알고 있듯이 바로 돈이다.

 

가계가 거덜 날 정도로 사교육에 경쟁하는 듯 지출을 하다 보니 가정이 행복하기 어렵다. 모든 우선 순위가 아이의 교육이고 수입의 만은 부분이 교육에 우선 지출이 되다 보니 다른 가정 생활에 필요는 무시된다. 가정은 행복을 이루는 곳이 아닌 교육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곳으로 전략한다. 그러니 사교육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으로 애를 가지는 않겠다는 부부들이 많아지는 그 현상까지 생겼다. 더 나아가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할 바 에야 아예 결혼 안 한다는 병리적인 사회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망국의 신 내림이 사람들 사이에 전염된 것도 이런 삐뚤어진 사고방식과 행동들  때문이다. 그럼 왜 모두가 복사한 듯 이런 사고를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현재 뭐가 제일 고민이고 앞으로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조사대상 중 55%가 대학에 가는 것이 지금은 가장 큰 문제이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단다. 이웃나라 일본고등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강점과 단점이 고민이라는 응답이 대학가는 것과 비슷하게 나왔고 중국 학생들도 돈이나 입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학생들 보다는 덜 차지했다. 미국 학생들에게서는 입시에 대한 고민은 1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이다. 공부도 돈을 위한 도구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나 누구를 위한 삶은 돈이라는 욕망에 다 가려져 있다는 느낌에 필자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돈 없으면 개 고생하고 돈 없으면 천대 받는 사회가 지금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돈이 없는 어른이 되면 어떨까?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신들의 가정 때문이다. 부모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심지어 목숨도 끓는다. 그걸 보고 자란 청소년이 생각하는 돈은 엄청난 힘이다. 그 힘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 힘이 있어야 행복도 사고 가정도 지킬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은 어찌되면 당연한 결과일 수 도 있다. 심지어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 사이에서도 돈은 역시나 중요했다. 그들의 풍요로움과 가정의 안정이 돈이 기초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대학입시가 사생결단 전쟁터가 된 것은 이 돈, 우리의 사회의 중심이자 목표인 이 돈을 벌기 위한 준비 단계로 대학을 보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을 나와야 좋은 회사(돈 많이 주고 덜 힘든…)에 취업할 수 있다는 설정에 맞추어 이 후의 일생의 계획을 획일화 시킨다. 제 아무리 좋은 인성을 갖고 좋은 분위기의 가정에서 살아도 일단 이 일류 병에 빠지면 너나 할 것 없이 한 방향으로 달려 가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난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용이 나온 개천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개천 출신 용들은 나름 우리사회에 이바지 한 바도 인정된다. 개천에서 난 용들이 타고 올라간 것은 공부라는 여의주를 물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서울대의 학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가난한 집안에서 대학을 보내려면 서울대에 입학하여 학비 부담이라도 줄여야 했다. 부자 집 아이들은 서울대 갈 성적이 안되면 연/고대, 이화여대를 가면 되었다. 소위 명문 사립대이고 이 학교 출신들도 미래가 보장(?) 되어 있었다. 선택이 폭이 넓으니 굳이 서울대를 고집할 이유가 적었다. 서울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은 국립대의 힘이 아니다. 학비 싼 대학을 가야 했던 용들 덕분이다. 악착같이 공부한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의 평균 성적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입학 후에 더 악착같이 공부하였고 각종 등용문(사시, 외시 등등…)통해 신분상승을 하였다. 그들이 70~90년대 우리나라의 성장에 큰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아버지, 큰 형님 세대에서는 공교육 범위에서도 대학 입학은 물론 신분 상승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성적을 낳고 투자한 돈이 연봉을 낳는 시대이다. 일단 대학 학비가 물가 인상률을 고려한다고 해서  천정 부지라 할 정도로 열심히 인상 되었다. 전액 장학금인 포스텍이나 카이스트를 제외한 국립대의 등록금도 일년에 400~500만원 선이다. 그러니 사립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90학번이다 공대임을 고려해도 필자의 동기들이 낸 입학금은 평균 80만원선 이었고 필자가 마지막 낸 등록금 고지서의 원 청구액은 83만원 이었다. 당시의 사립대 등록금은 약 두 배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다녔던 국립대의 등록금은 22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물론 소득 규모는 분명히 달라졌다. 문제는 이제는 공교육 만으로 대학가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공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이외에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 비용을 들이고 그래야  적절한(?) 수준의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다.

 

필자의 조카는 공부에 취미도 없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보습학원을 다닌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도 힘들고 다들 다니는 학원을 안 보내 자니  부모와 본인 모두 불안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대부분의 학생을 둔 가정의 사정이다.

 


 

망국의 징조

 

사교육 시장의 급성장과 사교육 관련 기업/학원 재벌까지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마당이다. 아이들의 상황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한 달에 단돈 10만원이라도 사교육에 쓰지 않는 집안은 인간문화재 취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올곧은 생각으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도 옆집 엄마의 주제넘은 내정간섭(?)에 손발을 들고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골목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해졌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놀이방 >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최소 12~13년간 아이들은 교육기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영어학원에 음악, 미술, 체육학원에 다닌다.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 과정의 선행학습에 본격적으로 영어학원에 다닌다. 고2가 되면 이젠 죽어라 입시준비다. 이 때쯤 되면 학교에서도 0교시에 야자, 주말과 일요일까지 보충수업을 한다. 최근에는 우등 반 아이들 수업에 외부 강사를 데려다가 수업하는 학교가 있다는 괴담(?) 돌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에 시달리고 부모들도 같이 입시전쟁이다. 학교도 대학진학 성적으로 서로 경쟁을 한다. 그러니 외부 강사를 몰래 데려다가 아이들의 시험 보는 기술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열성적(?)인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 포트폴리오를 직접 짜기도 하며 생활비의 반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한다. 옆집이 그러니 가랑이 찢어지는 우리집도 똑같이 따라 한다. 사교육비가 생활비 보다 많아 월 100만원 단위의 빚을 져가면 사교육을 시키는 집 이야기도 방송이 되었다.

 

보통 가정의 수입은 45세 전까지는 늘다가 이후에는 한 동안 정체되다가 50세가 되기 전에 줄기 시작한다. 회사의 중역까지 가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잠시 급격히 상승하더라고 언제 급격히 떨어질지 모르니 결국 수입은 중년기부터 점진 적으로 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부모들이라면 45세쯤 되면 추가적인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이미 없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45세에 아이가 고등학생이라고 한다면 이 시기가 수입의 정점인데 아이에게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교육비가 들어가니 월급으로는 부족하여 모아둔 돈까지 사용하는데 짧게는 1년, 길게는 4-5년 전부터 집중 지출을 했다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는 재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부모의 고난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7번의 등록기간이 남았다. 사립대 기준으로 하면 학기에 400원이 넘기 때문에 등록금 이외 비용까지 하면 4~5000만원은 더 들어간다. 거기에 해외연수라도 다녀오면 한 회당 최소 4-500만원은 더 들어간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1-2년은 취업을 위해 또 공부를 해야 한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1-2년은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혹시 등록금을 대출 받았다면 이제부터 긴 기간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제 끝이야~ 아니다 또 산이 남아있다. 30대 안되 결혼을 한다면 비용은 부모가 대주어야 한다. 전세금 대출에 결혼비용까지 줄줄이다.

 

조기교육이 빠르면 빠를 수록 가정이 아이를 결혼시키기 까지 드는 비용이 어마 어마해진다.. 필자가 12년 전 처음 재정 컨설팅을 받으면서 제시 받은 자녀 양육비는 대학졸업까지 1억 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충 계산해봐도 3-4억이 나온다. 이런 에너지와 돈을 사교육에 쏟아 붇고 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나면 그 가정은 빚더미에 앉는다. 그 빚을 자녀가 사회에 나와 다시 갚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자녀들이 취업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또 취업을 해도 88만원을 받는다는 '88만원 세대'에 그 동안 들어간 교육비는 갚지 못할 사채 같은 것이다.

 

 교육 관련해만 생각해도 대책이 없을 가정이 많은데 우리나라 개별 가구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많은 가구가 이미 빛을 내어 집을 사둔 상황이다. 적게는 몇 천에서 많게는 4-5억 이르는 빚을 내어 더 큰 집을 마련하였다. 집값이 오르면 그 차액으로 빛을 갚겠다는 꿈을 가지고…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끝이 보이는 이 광풍에 부채질을 했다는 것이다.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재 학교의 서열화를 통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와 보수적인 교육계의 생각에는 커다란 착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앞에서 이야기한 '교육불패'의 신화이다. 우리나라는 50년도 안 되는 고도 성장 중에 세계최고의 교육열에 힘입은 바 크다.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 세대가 지난 시절의 성공신화가 과연 통할까? 그 시절에 통하던 기술, 이론은 거의 다 새로운 것을 바뀌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산업사회는 마감되고 정보문화의 시대이다. 우리가 마구 성장하던 산업, 제조시대에는 배운 대로 하면 한 대로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걸 배운 대로 해서는 새로운 정보와 문화가 나오지 않는다. 정보와 문화의 수명은 매우 짧아 그 것을 가르치겠다고 교과서를 만드는 동안 철이 지나 버린다. 패션 유행을 생각해 보라 지금 유행하는 것을 보고 그것만 만드는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면 그 공장은 어떻게 될까? 짓지도 못하고 부도가 난다. 공장을 지을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직접 재봉 틀을 잡고 고객 하나가 원하는 고가의 옷을 주문 생산해야 한다.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가내 수공업으로 대응한다. 구시대의 생각으로 보면 가내 수공업은 퇴보이지만. 이제는 그런 식의 대응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  전시대에는 가내 수공업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하는 것이고 대량생산으로 왕창 돈 버는 것이 살길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획일화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이제 고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는 놈, 그저 그런 놈으로 갈라놓고 따로 가르치려 한다. 원래 잘하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 보낸단다. 대학생들의 학력이 낮아진 이유가 평준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대학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보내면 대학생들이 학력이 다시 높아진다는 단세포적인 생각이다.   정말로 뭘 몰라서 이런 주장하는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공부할 놈들만 공부 시키고 공부 못하는 놈들은 노동력만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거기에 5세~6세 과정 이야기에서는 그 속내가 들어난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등 가정 형편상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 하니 아이들을 1-2년 일찍 취학 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필자가 주장 했듯이 이렇게 되면 교육비가 늘어난다. 그 늘어난다. 학교를 일찍 들어간다고 해도 저학년 들은 일찍 귀가 하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 오후 시간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 더 힘든데 교육비는 더 든다. 이런 뻔한 상황인데도 강력하게 주창했던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매우 궁금해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이런 제도들은 결국 부자와 권력층 자제들 즉 왕자/공주님들을 처음부터 분리하여 부와 권력의 세습을 위한 장치들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공부만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신분상승이 되는 사회는 아니다. 돈이 돈을 벌고, 부모의 학력이 자제의 학력이 된다. 즉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다음 세대에 물려지면서 계층이 계급이 될 위험성이 높은 사회로 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과 눈이 보이지 않는 힘들이 그런 사회 분위기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 대학의 입학시험은 대학에서 인재를 키우기 보다는 실력과 정보력을 요하는 시험방법을 채택하여 대학에 이바지 할 인재를 뽑는다. 이건 대학이라는 기관이 인재를 키우는 곳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우리의 대학 입시는 이미 공부 잘하고 취업되기 쉬운 인재들을 뽑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그 파도에 태워서 아슬아슬한 서핑을 시키고 있다.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거칠어 진다. 어떤 아이들은 파도를 멋지게 타고 해변으로 돌아오지만 어떤 아이들은 파도가 치기도 전에 물에 빠져 버린다. 파도를 보자 마자 물로 뛰어드는 아이들이 종종 TV를 통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족쇄를 부셔라~

 

사교육의 족쇄를 빨리 부셔버려야 한다. 본인과 자녀 그리고 나를 부축이던 옆집 아줌마 까지도...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서울대 생인데 1년을 취업 못하고 있던 어떤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는 갔지만 가난한 집안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학점이나 영어 같은 간판을 못 갖춘 학생이다. 안타까웠다. 지금 세상이 이렇다. 집안이 가난하니 서울대 간판을 가졌어도 대기업 취업이 안 된다. 이 학생은 2년의 방황 끝에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다. 물론 이 학생이 기대 치를 많이 낮추었다면 취업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 생이 삼수를 해서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식에서는 난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학생에게 눈을 낮추어라 말한 자격이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썩어빠진 교육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걱정하며 인생을 개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번째 파도가 친 후에 서핑보드를 놓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파도는 더 거셀 것이다. 파도를 이기고 보드를 타고 해변으로 돌아오는 서핑은 좋은 스포츠이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힘든 상황을 잘 이기고 있다고 대견해 하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자신도 알고 있듯이 아이들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고 이 상황이 대학만 들어가면 끝나는 단기 전이 아니라 인생을 끝에서 아이들 스스로 평가할 그들의 인생이라는 점을 그리고 우리가 교육관련 재벌이나 권력이 만들어 놓은 공포 속에서 인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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