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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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님을 책읽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책읽기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신부님 책 <바보 ZONE> 출간을 접하게 되었다. 알게 된 순간 불현듯 바보의 순수함과 긍정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었고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읽은 기억이 있다. 100% 내 생각과 싱크로율이 일치되지 않았지만 거의 비슷한 관점으로 생각한 스스로에게 쓰담쓰담을 하며 만족스럽게 채웠던 기억이 있다.

<희망의 귀환> 이번엔 어떤 의미를 담아 놓으셨을까?
알 듯 말 듯
뭔가에 이끌려 책을 펼쳤다.
 
序(서)
프롤로그
 
Part 1 포옹하라
Part 2 춤추라
Part 3 심기일전하라
Part 4 즐겨라
 
에필로그
 
****************
 
모든 것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고마움과 감사도 잊은 채 내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미련으로 주저앉고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각을 한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피해만 주지 않는 범위에서 스스로 소신있게) 실천하고, 만들어 내고, 처한 환경에서 자족하며 살아가야 함이 마땅함에도 자의든 타의든 경쟁이라는 허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며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며, 비관함도 부족해서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경우도 많지 싶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다스리지 못해서 묻지마 범죄로 풀어내는 이들도 있으니
 
이 세상엔 과연 사람들에게 희망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희망, 꿈
참 미래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긍정의 에너지도 채울 수 있는 묘한 마력을 소유하고 있는 듯 싶은데 언젠가 부터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듯 싶다.
아니 옆에 있는데 존재 조차 인정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메마르고 강팍해 보이는 세상을 향해 저자이신 신부님은 말씀 하신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스페로 스페라 : Spero, spera)
 
그런다고 채워지지 않았던 희망이 어느 날 불쑥 갑자기 내면을 파고들며 자리잡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다고 희망을 알게 되고 어디에서 잡아다가 '너 내 마음에 꼭 있어야 해. 달아나면 안되는 거야.' 이런다고 그대로 있는 것도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스스로 되새기며 의지를 첨가 해서 그렇게 되도록 힘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역시 제목에 있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에 대해 담아 놓으셨다.
큰 주제를 마주하고 소 주제를 마주하며 '에이 이 책 내용은 신부님이니까 실천하실 수 있었을 거야.  내가 어찌 할 수 있을까?' 몇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늘 그렇듯 남의 이야기로 끝내 버릴 만한 글들로 빼곡히 채워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평범하게 상투어로 들리는 글귀나 문구들만 나열되어 있는 내용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Part 를 마무리 하시면서 괜찮다 괜찮다_ 다독이시는 문체로 여러가지 핑계와 이유, 난관을 제시하며 희망할 수 없는 당위성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시는 부분을 접하면 이런 생각을 조금은 배제할 수 있어 보였다.
 
'나만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서 일어날 수 없고, 내게만 희망이 없는 듯 하고...'
이런 생각을 조금은 떨칠 수 있어 보이니 말이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까지는 '너 죽고 나 살고'식의 경쟁 논리로도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3만 불 시대를 맞이하려면 이에 더하여 상생의 논리로 보강될 필요가 있습니다.  '너'가 죽으면 평균 소득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그 유기적 상관성 때문에 돌고 돌아서 결국 '나' 자신이 죽게 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전체의 부강을 위해서는 함께 윈-윈(win-win)하는 상생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이 길이 민족번영의 길인 동시에 '나' 자신이 사는 길입니다. -p.284-」
 
「사람을 한자로 인간(人間)이라 부른다.  이 단어에는 사람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  우선 인(人)은 서로 기대는 존재임을 가리킨다.  그 다음 간(間)은 '사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사람을 관계적 존재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예로부터 사람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  사람은 함께 살게끔 생겨먹은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홀로' 살도록 내몰리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다시 '함께'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p.274-」
 
 
「희망의 귀환!
희망을 잡고 보니 그것은 바다 건너 이야기 속 '큰 바위 얼굴' 이었다.
나 자신이 바로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다.
나 자신이 바로 내가 찾던 변화다.(중략)
나의 삶, 우리 사회에 변혁을 가져올 구원 투수는 지금 불펜에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  -p.312-」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몇 단어가 떠오른다.
 
-- 극기, 극복, 함께, 더불어, 자존감 ---
 
이것이 그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희망은 나를 이기고, 존중하고, 극복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공존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미 인생 중반을 살아온, 살고 있는 나라는 독자에게 희망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마도 100% 그대로 존재함에도 내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스스로에게 있는 희망의 끈을 꼭 붙들고, 부모의 입장으로 자녀들에게 이야기 하련다.
희망을 잃지 말라고~
꿈을 잃지 말라고~
 
혼자서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희망이 있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희망~~
이젠 놓치지 않을거야.
아니 너의 존재를 인정하고, 앞으로도 삶이 유지되는 동안 의지를 담아서 확인해 보고 인정해 줄거야.
 
너도 나 버리지 말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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